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2023년 마무리, R&D 조직 개편
현대차·기아가 연구개발(R&D) 조직을 손질합니다. 기업이 발전을 위해 R&D 조직을 개편하는 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현대차그룹 내부에서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기 때문인데요.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나온 발표라 그런지 더욱 떠들썩 했습니다.
현대차·기아는 '통합'을 위해 이번 개편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조직을 하나로 묶겠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R&D를 총괄하는 최고기술경영자(CTO) 산하에 각 부문을 두고 독자적으로 움직여왔죠. 각각의 전문성을 더 중시했던 건데요. 이런 구조는 하나의 시너지를 내기엔 어렵다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업계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 부문도 한 팀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핵심인 소프트웨어 부문은 최종의사결정자가 2명이었습니다. 그간 R&D를 총괄했던 김용화 CTO와 송창현 포티투닷 대표 겸 SDV본부장(사장)입니다. 각종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은 최종의사결정자 2명을 필두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와 포티투닷에서 각각 진행됐습니다. 연구는 해도 일관된 전략이 부재했다는 지적이 나올 법했죠.
현대차·기아는 "협업이 필요한 경우 각 조직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스타트업처럼 유연하게 연구개발을 수행하기 위함"이라며 각 부문을 따로 뒀던 배경을 설명했는데요. 결과적으로 보니 이 방식은 적합하지 않았던 겁니다. 한 해에만 5조원 넘는 비용을 R&D에 쏟았는데 조직이 융합되지도, 예상만큼의 발전도 없으면 과감히 칼을 대는 게 맞습니다.
왜 지금인가
사실 완성차업체가 R&D 조직을 손보는 건 해외에선 꽤 자주 있는 일입니다. 최근 1~2년 사이 속도가 더 붙었을 뿐이죠. 지금 완성차업계는 전동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조직 변화가 잦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보다 유기적인 조직을 구축해 기술을 개발하고 완성하는 건 모든 업체들의 청사진입니다. 현대차·기아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현재 글로벌 완성차업체 R&D 조직이 열을 올리고 있는 건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SDV) 개발입니다. SDV는 미래형 모빌리티를 완성할 기능으로 불리는데요. SDV가 탑재된 자동차는 긴급출동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도 원격으로 차량을 수리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성능 개선도 가능합니다.
SDV 기술로 얻는 이점은 상당합니다. 우선 차량 개발과 정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또 SDV로 확보한 데이터로 사용자별 맞춤형 신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때 확보한 빅데이터는 자율주행 기술에 활용할 수 있죠. 이 같은 다양한 경험들을 제공해 차주들의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데 한몫할 것으로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SDV 시장은 2020년 180억달러(약 22조원)에서 2030년 830억달러(약 112조원) 규모로 늘어납니다. 10년 만에 4배 이상 커지는데 아직 절대 강자가 없습니다. 완성차업체들이 R&D 조직에 변화를 거듭하며 SDV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와중 SDV 개발 선봉장으로 평가받던 포드 등 일부 업체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현대차·기아로서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입니다. 이번에 치고 나가려면 R&D 조직에서 성과가 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직을 원팀으로 통합하는 작업이 지금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1월 중순 세부안 발표
업계에서는 내년부터 SDV 시장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대차·기아는 2025년을 SDV 원년으로 삼긴 했지만 시기를 앞당겨도 좋을 분위기입니다. SDV 개발을 주도할 R&D 조직 세부 개편안은 내달 중순 이후 발표될 전망입니다.
개편 방향은 다가오는 1월 3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내놓을 메시지에서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전해집니다. 업계는 소프트웨어가 주축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기술 간 시너지 통해 SDV를 포함한 미래차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하고자 연구개발 조직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혁신 연구개발 전담 조직을 신설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