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다.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가성비'가 뛰어나기 위해서는 '품질'이 담보돼야한다. 자동차는 약 2만여 개의 부품이 조합돼 완성된다. 따라서 부품의 품질이 자동차의 품질을 결정한다.
현대·기아차의 부품을 책임지는 곳은 현대모비스다. 현대모비스는 현대·기아차에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 결국 현대모비스 부품의 품질 향상이 현재의 현대·기아차를 만든 셈이다. 현대모비스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조용히 성장해왔다. 현대·기아차의 가장 든든한 서포터이자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지금도 진화중이다.
◇ MK를 만든 '현대정공'
현대모비스의 시작은 1977년 설립된 현대정공이다. 현대정공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본격적으로 자동차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곳이다. 정 회장에게는 자신의 경영능력을 대내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첫 시발점이기도 했다. 정 회장은 현대정공을 중심으로 입지를 확보했고 결국 91년 '갤로퍼'를 출시하며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했다.
현대자동차서비스 말단 사원으로 경영 수업을 시작한 정 회장은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말단 시절부터 자동차 부품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이때 품질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는 후문이다. 아울러 모든 문제의 해답은 현장에 있다는 지론을 가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 정몽구 회장은 현대정공 사장 시절 '갤로퍼'를 출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룹 내에서 자동차 부문에 대한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자동차 산업에 대한 공부를 했다면 현대정공은 그가 그간 공부했던 것들을 펼쳐보인 장(場)이었다. 정 회장은 현대정공을 진두지휘하며 첫 작품으로 SUV를 준비했다. 당시 SUV는 국내 시장에서 세단에 밀려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기회가 있다고 봤다. SUV는 당시 현대차에는 없는 라인업이었다.
공채 1기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정 회장은 SUV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 미쓰비시의 1세대 '파제로'를 들여와 우리 실정에 맞게 수리를 진행했다. 그 결과물이 '갤로퍼'다. '갤로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쌍용차의 '코란도'와 아시아차의 '록스타' 만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시장에 '갤로퍼'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SUV에 어울리는 남성적이고 투박한 이미지와 강력한 주행성능을 바탕으로 출시 첫 해 1만6000대가 판매됐다. 이후에도 꾸준히 인기를 끌었고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정 회장은 미니 밴 '싼타모'를 선보이기도 했다. '갤로퍼'와 '싼타모'의 성공은 정 회장이 현대차를 완전히 가져올 수 있었던 근거가 됐다. 현대정공을 발판으로 현대차그룹 회장에 오른 셈이다.
◇ 성장 가도를 달리다
정 회장의 현대정공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기아차 인수 이후 지금껏 현대·기아차의 핵심 인사들은 현대정공 출신들이 많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 회장은 현대정공을 현대·기아차의 품질을 담당하는 위치로 끌어올리면서 많은 힘을 실어줬다. 현대모비스의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대·기아차의 품질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정 회장의 생각이었다.
정 회장의 지원에 힘입어 현대정공은 계속 성장했다. 현대차의 해외 진출과 맞물리며 현대정공의 기술력과 품질 확보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캐나다 부르몽 공장 철수와 미국 진출 초반 품질로 고전했던 경험은 기술력을 갖춘 부품사 확보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지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현대모비스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핵심은 '모듈'에 있다. 모듈은 자동차의 각 파트별로 해당 부품을 모아 한 덩어리로 만든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부품의 모듈화를 통해 품질은 물론 공정의 안정화까지 잡았다. 현대모비스의 모듈은 글로벌 업체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2009년에는 미국 크라이슬러 그룹으로부터 2조 5000억원 규모 섀시모듈을 수주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의 외형 성장과 더불어 현대모비스도 함께 성장을 거듭했다. 실적이 이를 대변한다. 지난 98년 378억원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은 2001년 1000억원을 넘어섰고 2007년에는 1조원을 돌파했다. 작년에는 영업이익이 3조원에 육박했다. 매출액도 98년 2조5000억원대에서 작년 36조원으로 성장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모비스의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며 "여전히 현대·기아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최근에는 매출처 다양화를 통해 외형적 성장은 물론 내실도 다지고 있어 향후 전망도 밝은 편"이라고 밝혔다.
◇ 지배구조의 핵심
현대모비스는 게속되는 성장과 더불어 그룹 내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다. 이 순환출자 구도를 해소하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숙제다. 그 정점에는 현대모비스가 있다.
정몽구 회장의 후계자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재 현대차 지분 1.44%와 기아차 지분 1.7%만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지분은 없다. 정 부회장이 향후 그룹 경영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율을 높여야 한다. 정 회장이 보유한 핵심 계열사들의 지분을 승계받으면 간단하지만 그 대신 적지 않은 증여세를 내야 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지분 매각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직까지 현대차그룹의 승계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아서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어떤 시나리오로 가든지 현대모비스가 키(Key)라는 점이다.
▲ 현대차그룹의 승계 시나리오의 핵심에는 현대모비스가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현대모비스를 장악해야만 현대차와 기아차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어서다. |
대표적인 것이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한 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다.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지주회사와 현대글로비스를 합병하는 구조다. 이럴 경우 정 부회장은 합병회사의 지분 17.1%를 확보할 수 있다.
또 다른 시나리오에서도 현대모비스가 핵심으로 등장한다.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교환해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꼽힌다. 결국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를 장악해야 현대차와 기아차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투자증권은 "현대차그룹은 계열사의 내부 지분율이 높지만 정의선 부회장이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지배구조 개편의 전제는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간 순환 출자 해소와 정 부회장의 핵심계열사 지배력 확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