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업계가 미국 투자를 위해 투자단을 꾸린다. 미국 통상정책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워 일단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판단에서다.
주상범 한세실업 전무는 지난 20일 한국무역협회 주최 '美 통상정책 평가 및 전망 토론회'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어느정도 순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 일자리를 창출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며 "다음달 섬유산업연협회에서 미국시장진출 조사단을 꾸려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섬유산업연합회는 이달 28일까지 '미국 미래섬유스터디 및 상호투자단'을 모집중이다. 투자단은 20명 규모로, 대부분 섬유업체 임원들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단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와 대학을 방문해 투자방향와 산학연계활동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섬유산업연합회는 이를 위해 업계와 투자 관계자들과 만나 미국 현지 투자에 관해 협의 중이다.
지난달 성기학 섬유산업연합회장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도 롤리 주지사를 만나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투자에 대해 논의했다. 섬유산업연합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섬유산업 지원 내용이 확정되는 3월에 투자단을 꾸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김부흥 섬유산업연합회 부장은 "아직은 구체적인 투자규모와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 섬유업계, TPP 무산에 수출전략 변경 고심
섬유업계가 미국 투자를 모색하고 있는 가장 큰 계기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 무산될 가능성이 큰데 따른 것이다. 섬유업계는 TPP가 타결된 2005년, 섬유·의류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철폐될 것으로 예상해 베트남 투자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베트남과 미국은 TPP구성국으로 베트남에서 의류를 생산해 미국과 일본으로 수출할 경우 미국의 높은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 최대 의류시장인 미국은 자국 섬유산업 보호를 위해 섬유는 7.9%, 의류는 11.6%의 관세를 부과해왔다. 미국의 평균 제조업 관세는 3.5%다.
하지만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TPP탈퇴를 공식선언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업계에서는 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역을 물색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주상범 한세실업 전무는 "관세를 절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TPP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무산됐다"며 "미국을 포함해 중미, 아프리카 투자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베트남 정부는 성장을 위해 외국기업의 최저임금을 꾸준히 올려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며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면 미국에 직접 거점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강경 기조가 점차 수그러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손열 연세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인력자원이 풍부하지 않다"며 "조정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신승관 국제무역연구원장은 "(가공무역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방향은 실행가능성이 낮다고 본다"며 "미국 통상정책이 바뀐다는 것을 전제하면 우리나라 업체들이 미국 투자를 구두로만 약속해 놓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과 일본을 같은 내수 경제 생활권에 넣어 서비스 빅뱅을 실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