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오는 4월 지주회사 체제로 공식 출범한다. 하지만 오너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정점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를 매듭짓기 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기업분할의 관문은 통과했지만 짧게는 향후 6개월, 길게는 2년간 지주회사가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 수두룩해서다.
◇ 지주회사로 부상하는 로보틱스
28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지난 2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현대중공업을 4개사로 분할하는 내용의 분할계획서 안건이 97.9%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의결권 주식 5978만주 중 3946만주(66.01%)가 참석, 이 중 3867만주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3일 등기를 마치면 현대로보틱스를 정점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로 본격 전환된다.
즉, 현대로보틱스가 로봇·투자 등의 사업부문을 가지면서 동시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에 따른 지주회사로 새롭게 설립된다. 지주회사 아래에는 존속법인 현대중공업(조선·해양·플랜트·엔진·특수선)을 비롯, 신설 자회사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전기전자)·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기존 자회사 현대오일뱅크(정유)· 현대글로벌서비스(조선기자재 A/S) 등 5개 사업 자회사를 두게 된다.
로보틱스는 지주회사 요건 중 ▲자산총액 1000억원(올 7월부터 5000억원) 이상 ▲자산총액 중 자회사 지분가액 비중 50% 이상 ▲부채비율 200% 이하의 경우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분할 후 로보틱스의 총자산은 4조3883억원, 부채비율은 95.2%다. 또 오일뱅크 지분 91.13%도 소유하게 돼 총자산 중 자회사 지분가치(3조7685억원) 비중도 85.9%에 달하게 된다.
◇ 정몽준 이사장의 지배강화 시나리오
향후 2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해소해야 하는 자회사 소유지분 요건(상장 20%·비상장 40%) 역시 무리 없이 해결 가능하다. 현재 현대중공업의 자사주 13.37%는 모두 로보틱스로 귀속된다. 이에 따라 로보틱스는 자사주의 투자주식 전환에 따라 중공업, 일렉트릭앤에너지, 건설기계 3개사의 지분 13.37%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다. 즉 3개 자회사 지분을 6.63% 확보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로보틱스는 지주회사 전환시 흔히 쓰는 방법으로, 지주회사 주주들이 보유한 사업 자회사 주식을 현물출자받고, 댓가로 지주회사 주식을 주는 공개매수 절차를 진행하면 3개 자회사의 지분 20% 이상을 깔끔하게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완료하면 오너 정몽준 이사장도 안정적인 지배기반을 갖추게 된다.
현재 정 이사장은 현대중공업 지분 10.15%를 소유 중이다. 특수관계인을 합치면 21.34%다. 현대중공업이 인적분할로 쪼개지는 만큼 지주회사 로보틱스의 경우에도 정 이사장은 21.34%를 갖게 된다. 분할후 중공업 등 3개 자회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3개사 지분으로 현물출자·공개매수를 통해 지주회사 지분을 확 끌어올릴 수 있다.
◇ 주목받는 로보틱스 지분 8%의 향배
하지만 지주회사 로보틱스에게는 녹록치 않은 걸림돌 또한 도사리고 있다. 최대 관건은 손자회사의 100% 증손회사외 계열사 주식소유 금지, 증손회사의 계열사 주식소유 금지 요건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중공업(보유지분 94.92%)→삼호중공업(42.34%)→미포조선(7.98%)→중공업으로 연결되는 조선 3개사 순환출자구조가 지배구조의 핵심축이다. 따라서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삼호중공업과 미포조선은 각각 로보틱스의 손자회사, 증손회사가 된다.
이에 따라 삼호중공업은 미포조선 지분 100%를 소유해야 한다. 반면 현 지분율이 42.34%인 까닭에 미포조선 지분 57.66%를 매입해야 한다. 하지만 매입 비용을 감안할 때 현실성이 낮아 어떤 식으로든 보유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또 미포조선이 가지게 되는 로보틱스, 중공업, 건설기계, 일렉트릭앤에너지 지분 각각 7.98%도 매각해야 한다.
지분 정리를 마쳐야 하는 시기는 로보틱스 설립 후 2년의 유예기간 뒤인 2019년 4월 까지다. 특히 분할 후 미포조선이 새로 갖게 되는 지주회사 로보틱스 지분 7.98%는 2014년 7월 도입된 공정거래법상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규정에 따라 분할후 6개월 이내인 오는 10월 1일 이전에 처분해야 한다. 매각 향방에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지주회사체제 내의 금융사 지배 금지 규제에 따라 현재 미포조선이 보유한 하이투자증권 지분 85.32%도 처분이 이뤄져야 한다. 다만 하이투자증권의 경우에는 지난해 6월 마련한 자구계획에 따라 현재 매각을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