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천 위에 무심한듯 브랜드 로고 하나를 박아 넣은 가방이 당시 대학생이었던 기자의 눈에 하나둘 띄기 시작한 건 2012년 무렵이었다. 가방 곳곳 묻어있는 얼룩과 흠집들이 마치 오래된 앤티크 가구에서 풍기는 세련된 느낌을 줬다. 당시 옷 좀 입는다는 '트렌디'한 학생들이 선두주자로 매고 다니는 모습도 구매 욕구에 기름을 부었다. 하나 장만하고 싶어 가방을 가지고 있던 친구에게 가격을 묻자 "20만원이 넘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낡아빠진 천으로 만든데다 화학품 냄새까지 나는 이 가방이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었길래 그렇게 비싸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 더욱 경악스러웠다. 바로 '쓰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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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쁜 쓰레기'를 제조한 회사는 1993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가방 제조 회사 '프라이탁(FREITAG)'이다. 재활용품에 디자인이나 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기업의 시초인 프라이탁은 트럭 덮개를 가방 몸통으로 삼고, 자동차 안전벨트, 자전거 고무튜브를 이용해 가방끈과 부자재로 사용한다.
5년 이상 사용된 폐기물을 재료로 수작업을 통해 새로운 제품으로 부활시키는 이 기업은 전 세계 350여 개의 매장에서 매년 40만 개의 제품을 판매해 연간 5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다. 각각 다른 천 자재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다 보니 모든 가방은 한정판이 됐고 그 점이 구매자에게 희소성을 준다는 강점으로 작용했다. 최대 100만원대를 호가하는 이 브랜드는 유일무이하다는 점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매출이 올랐다.
국내 업사이클 시장 규모도 빠르게 성장했다. 5년 전 10개 내외에 불과했던 국내 업사이클링 업체는 2016년 150개까지 늘었고, 2014년 당시 40억원 규모로 추산됐던 시장은 4년 만에 200억원 규모로 5배 가까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소각을 앞둔 폐우산에서 나온 천을 가지고 지갑, 가방 등을 생산하는 큐클리프(CUECLYP)'도 이 바람을 타고 탄생한 국내 기업 중 하나다.
큐클리프는 각 구청의 재활용 선별장에서 폐우산의 천을 분리해 제품 원단으로 사용한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우산이 망가져 버리기가 아까웠던 우연정 디자이너(큐클리프 공동대표)가 우산 천으로 방수가 되는 파우치를 만들었던 경험이 우연히 창업으로 이어진 경우다. 우연정 대표는 홈쇼핑 벤더회사 MD였던 이윤호 대표(아래 사진·32)와 함께 새활용을 뜻하는 영단어 'Upcycle'의 단어 철자를 재조합해 큐클리프라는 기업명을 만들었다. 폐기물로 만든 업사이클 원단과 자재를 통해 버려진 물건의 '두번째 쓸모'와 의미를 찾는다는 목적에서 Upcycle 이라는 단어 철자를 임의로 재조합해, 'CUECLYP' 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재해석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14일 큐클리프는 대림 문화재단과 함께 디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업사이클 제품을 직접 제작해보는 '업사이클링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전시장 홍보에 사용됐던 폐현수막을 가지고 러기지 택과 여권케이스를 직접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 이후 이윤호 큐클리프 공동대표를 만나 업사이클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이윤호 큐클리프 공동대표(사진=배민주 기자 mjbae@) |
- 오늘 만든 제품을 보니 '폐기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던데
▲ 버려진 것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세척에 많은 공을 들인다. 폐우산으로 만드는 제품들도 최대한 오염이 안된 부분을 선별해 만든다. 아무리 새활용(업사이클)이라는 좋은 목적을 가졌어도 일단 예뻐야 한다. 그래야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
- 프라이탁에는 100만원대를 호가하는 제품도 있다. 폐기물로 만들었는데도 가격이 높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소비자가 명품을 비싼 가격을 주고 사는 이유는 그 브랜드 가치에 있다. 비록 재활용품을 사용해 만들었지만 우리도 명품처럼 제품 뿐만 아니라 우리 제품에 깃들어 있는 가치를 함께 판다고 생각한다. 또한 재료 선별, 수거, 세탁 그리고 건조 과정부터 디자인까지 수작업으로 들어가는 공정을 감안하면 마냥 높게 책정된 가격이라고 하긴 어렵다.
▲ 이날 진행된 행사에서 선보인 여권케이스와 러기지택 |
- 2016년 창업 이후 3년이 흘렀는데 매출 규모는 어떤가
▲ 이제 운영을 원활하게 할 정도에 들어섰다. 요즘 재활용 대란 흐름에 힘입어 제품 반응이 좋아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업사이클링 문화가 활성화돼있는 대만 등 해외 주문도 많은 편이다. 재활용해 사용할 수 있는 소재가 무궁무진한 만큼 앞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해보고 싶은 게 많다.
- 폐기물로 만든 제품을 사람들이 굳이 고가의 돈을 주고 사는 게 아이러니하다
▲ 소비자 인식 변화가 가장 큰 배경이다. 과거에는 폐기물, 쓰레기 하면 고물상을 떠올렸지만 요즘 젊은 소비자들은 다르다. 일단 빈티지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일본에서도 대형 빈티지 숍의 인기가 높지 않은가. 무조건 '업사이클 제품은 착한 제품이다'라는 인식에서 라기보단 정말 예쁘고 유니크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구매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이대가 있는 고객은 예뻐서 구경하다가 폐기물로 만든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면 고개를 젓기도 한다. 이 또한 차차 변화하지 않을까 싶다.
- '제 2의 프라이탁'을 꿈꾸는가
▲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기업'으로만 보이고 싶지는 않다. 착한 기업이라고 제품을 사달라고 어필하는 건 소비자에게 너무 무겁다. 우리의 사업 롤모델은 프라이탁보다는 '파타고니아(Patagonia)'에 가깝다.
친환경 아웃도어 기업인 파타고니아가 했던 광고 중에는 '우리 제품은 안 사셔도 좋습니다(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내용이 있다.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만들어도 제작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에 쉽게 제품을 사고 버리기보다는 기존 제품을 수선해서 오래 입으라는 메시지를 담은 거다. 당장의 이윤이나 매출보다는 파타고니아처럼 책임감있는 기업 윤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목표다. 기업이 가진 '스토리텔링'에 소비자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파타고니아와 프라이탁이 입증했다.
▲ 폐우산 원단으로 큐클리프에서 제작한 지갑 |
- 향후 목표는
▲ 최근에는 폐소파시트에 관심이 많아졌다. 소재도 좋은 데다 면적이 넓어 활용도가 높다. 비슷한 사례로 업사이클링 브랜드 중 하나인 '모어댄'에서는 차 가죽 시트로 가방을 제작한다.
또 요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섬유로 제작한 의류와 신발도 나오는데 이런 소재를 사용한 가방과 의류 제작까지 분야를 넓혀보고 싶다. 나아가서는 재활용품으로 제작한 신소재 개발이나 업사이클링 자재 유통업에도 도전하고자 한다. 단순히 제작에만 머무르기에는 업사이클링 시장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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