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유족들이 고인의 뜻에 따라 공익사업에 활용해달라며 지난해 말 LG그룹 산하 공익재단에 50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아들인 구광모 회장 등 유족들은 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으나 LG복지재단 이사회 회의록이 공시되면서 기부 사실이 알려졌다. LG복지재단 20억원을 비롯해 LG연암문화재단과 LG상록재단에 각각 20억원과 10억원이 기부됐다.
지난해 12월19일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복지재단 이사회에서 이 같은 기부사실을 보고 받은 재단 이사들은 "고 구 회장의 고귀한 뜻이 담긴 기부금인 만큼 공익사업을 위해 잘 사용해달라"는 당부를 사무처에 남겼다.
LG복지재단은 구본무 회장이 2015년 제정한 'LG의인상' 시상과 어린이집 건립,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저신장아동에게 성장호르몬을 지원하는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최근 별세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비롯해 총 97명이 의인상과 위로금을 받았다.
고인은 재단 규정상 지원이 어려우면 스스로 사재(私財)를 털기도 했다. 그가 별세하기 8개월 전인 2017년 9월 강원도 철원에서 전투진지 공사작업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병사가 인근 사격장에서 날아온 유탄에 맞아 숨진 일이 발생했다.
구본무 회장은 숨진 병사의 아버지가 빗나간 탄환을 어느 병사가 쐈는지 밝히거나 처벌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 분의 깊은 배려심과 의로운 마음을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사재 1억원을 전달했다.
LG그룹 총수 일가의 선행은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시대인 1942년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백산 안희제 선생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부탁하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돈 1만원을 만들어 백산 선생에 건넨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80㎏ 쌀 한가마 가격이 25원 남짓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쌀 400가마를 살 수 있는 돈이다.
LG그룹 2대 회장을 지낸 구자경 명예회장은 서울 종로구 원서동 소재 지하 1층, 지상 3층 사저를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국내 최초 전자도서관으로 꼽히는 LG상남도서관이 원래는 구자경 명예회장이 27년간 지내온 집이다.
그는 선친이 별세하고 자식들도 분가하면서 큰 집에서 적적하게 사느니 도서관으로 활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1993년 LG연암문화재단에 기부를 결정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원래 교육자 출신이다. 교사생활을 하다가 선친의 부름을 받고 1950년 회사일을 맡았다. 그런 만큼 교육분야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학교법인 LG연암학원을 설립한 뒤 충남 천안에 연암대학교, 경남 진주에 연암공과대학교를 세웠다. 1995년 그룹 회장직에서 떠난 뒤 버섯재배에 공을 들이는 등 여느 재벌 총수답지 않은 행보를 보여 화제를 모았다.
50억원의 마지막 기부를 하고 간 구본무 회장도 생전 자연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1997년 자연환경과 생태계 보존을 위한 공익재단인 LG상록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다. 상록재단은 경기도 곤지암에 위치한 화담숲을 운영하고 있다.
화담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으로 고인의 아호(雅號)다. 이곳에서 종종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사업구상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평소 숲을 좋아했던 그의 뜻에 따라 지난해 5월22일 화담숲 인근에 조용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