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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씽킹맵]"보고메일에 PPT? 놉!"…현대차 '정의선식' 변화

  • 2019.12.11(수) 13:00

사소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일하는 방식'
'스마트 모빌리티' '인간중심'…생존 위한 모토

재계는 안팎으로 변화의 시기다. 다가오는 2020년은 올해보다 더 간단치 않은 사업 환경에 놓일 것이라는 예상이 짙다. 주요 대기업 내부에도 세계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를 헤쳐내야 할 대기업집단 총수들의 머릿속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준비하는 CEO들의 경영 판단과 생각의 방향을 주요 열쇳말로 추려 들여다봤다.[편집자]

지난 10월 어느 점심시간, 현대·기아자동차 양재동 사옥 2층 대강당 '타운홀 미팅' 무대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올랐다. 그룹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고 있는 그가 운동화에 팔을 걷어붙인 셔츠 차림으로 나선 이유는 직원들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 전에 없는 풍경이었다.

직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그는 편안한 말들로 경영관, 회사의 미래를 풀어냈다. 이례적으로 본인 머릿속을 직원들에게 가감없이 보여준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낱말은 '변화'였다. 특히 그는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과 또 반드시 지금 바뀌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했다.

조직문화 변화

대표적인 게 '보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었다. 그는 최근 현대·기아차가 대면방식 수기 결재를 전자식으로 대체한 것에 대해 "메일로 내용은 전달하고 필요하면 전화나 화상으로 얘기하면 된다"며 "직접 만나 얼굴을 맞댔을 때는 글로 쓸 수 없는 깊은 얘기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보고를 효율화 하는 것부터 일하는 방식을 바꿔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메일을 보낼 때 뒤에 파워포인트(PPT) 파일을 붙이지 않았으면 한다"며 "핵심 몇줄이라도 뜻만 전달하면 된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리더들부터 추구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이 직접 이렇게 자리에 나선 것부터 그가 의미 있는 소통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전처럼 차만 찍어내면 되는 전통 제조업의 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창의성 발휘가 가능한 ICT(정보통신기술)기업 같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소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 현대차그룹에 필요한 모든 사업적 변화의 바탕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박혀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

현대기아차의 사업적 변화 지향점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공급업체(Smart Mobility Solution Provider)'로의 전환이다. 정 부회장이 작년 승진 즈음 인도에서 처음 이를 선포한 뒤 방향성이 명확해졌다. 그 뒤 정 부회장은 기회 닿을 때마다 '스마트 모빌리티'를 부르짖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에도 이를 위해 내년부터 2025년까지 61조여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투자 및 경영계획 발표는 이원희 현대차 사장이 했지만 큰 방향은 현대차뿐 아니라 기아차에도 공히 해당된다. 기존 완성차 사업을 고도화하는 '스마트 모빌리티 디바이스'와 플랫폼을 구축해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를 양대 축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로보틱스, 개인용비행체(PAV, Personal Air Vehicle) 등 미래사업 준비도 여기에 포함된다. 정 부회장은 이를 중심에 둔 변화를 이뤄 최근 2~3년간 겪은 사업 부진을 딛고 완성차업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당장 내년 영업이익률을 5%로 회복하고, 2025년에는 자동차부문 영업이익률 8%, 세계 시장 점유율 5%를 이룬다는 목표도 함께 내놨다.

지난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모빌리티 이노베이터스 포럼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연설하고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인간을 향한 진보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 사업 전반에 사회적, 인문학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사람(Human)을 중심에 둔 '인간을 향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라는 새 브랜드 비전을 최근 내놓은 이유다. 현대차그룹의 다양한 고객에게도, 또 그룹 구성원에게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과 맞닿아 있다는 '선택의 명분'을 제시하겠다는 차원이다.

그는 타운홀 미팅에서도 "사람과 사람을 이동시켜 공간적으로 만나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며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사람을 위한 것이지 단순 이동을 위한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여러분의 가족, 친구, 동료 같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 우리 사업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에게 '우리가 꽤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반응을 이끈 발언이었다.

정 부회장은 이어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그룹 포럼에서도 '인간 중심(Human-Centered)'의 미래 모빌리티 개발 철학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혁신적 모빌리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현대차그룹은 더욱 넓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간 중심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모빌리티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소차·전기차

이런 현대차그룹의 변화를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개발(R&D) 사업 결과물이 친환경 수소차·전기차다. 수소전기차는 일찌기부터 현대차그룹이 가장 힘을 줘왔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앞서나가는 성과를 내는 분야다. 현대차그룹이 완성차 업계에서 더이상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r)'에 머물지 않고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나아갈 수 있는 핵심 열쇠인 셈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전동화 차량 67만대(배터리 전기차 56만대, 수소전기차 11만대)를 판매해 글로벌 3대 전기차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이를 위한 전략 투자도 활발하다. 최근에도 스웨덴 연료전지 분리판 코팅 전문업체 '임팩트 코팅스', 이스라엘 수전해 수소 생산기술업체 'H2프로', 스위스 수소 저장·압축기술업체 'GRZ 테크놀로지스' 등과 전략투자 및 공동기술개발을 발표했다.

정 부회장은 기술 선도력이 저변 확대와 맞물려야 한다는 구상도 품고 있다. 작년 6월 독일 폭스바겐그룹과 전략적 동맹을 맺을 때, 그는 "이 파트너십이 글로벌 수소전기차 시장의 활성화는 물론 수소 연관 산업 발전을 통한 혁신적 산업 생태계 조성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피력했다.

지난 7월 경기도 화성시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에서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사진 중앙)이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맨 왼쪽)에게 넥쏘 절개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지배구조 개편, 그리고…

생존을 위한 사업적 변화에 절실한 정 부회장에게 또 하나의 작지 않은 고민거리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 이슈다. 작년 계열사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축으로 삼아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려 했다가 접은 경험이 있다. 미뤄졌지만 정 부회장이 올초 신년사에서도 사업구조 개편을 따로 언급할 만큼 그룹 경영에 중대사안이다. 올해를 지나 내년에도 이를 묵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 부회장이 그리는 방향으로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주들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선 현대·기아차 및 현대모비스 주주들을 만족시킬만큼 주가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사업적 수익성도 세계 완성차업계 수위권으로 끌어올려야한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중국에서의 깊은 판매부진에서 벗어나는 것, 새 활로인 동남아 시장을 뚫어내는 것 등이 이에 필요한 선결과제다.

부친에게 받은 숙제 역시 그의 머릿속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정몽구 회장 결단으로 그룹이 땅값 10조원을 들여 산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얘기다. 이 사업은 지난달 말 서울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아 내년부터 사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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