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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전기차 '팀 코리아', 이재용이라는 바퀴

  • 2020.07.21(화) 14:54

전에 없던 조합이다. 재계 '빅4'가 이런 동맹을 구축한 적이 있었을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잇달아 만났다. 정부 차원 행사 외에 따로 볼 일이 거의 없었던 4대 그룹 총수는 전기차를 중심에 두고 사업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재계는 선대(先代)부터도 치열했다. 서로를 경계, 반목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했다. 해방 이후 정부 주도의 산업 근대화와 재편 과정에서 한정된 자원을 자기 몫으로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했다. 삼성과 현대가 각각의 주력인 자동차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고,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국난을 거치며 그룹간 이른바 '빅딜'이 이뤄지면서 관계는 더 소원해졌다.

재계 수장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런 배경속에 결집력을 잃었다. 과거에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초대, 1961~1962년)과 정주영 현대 창업회장(13~17대, 1977~1987년), 구자경 LG 회장(18대, 1987~1989년), 최종현 SK 회장(21~23대, 1993~1998년) 등이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IMF 이후 재계 빅4에서 이 자리를 맡은 적이 없다.

이들이 다시 마주 앉게 된 배경에는 현대차가 주축이 된 '전기차 시대'라는 큰 그림이 있다. 엔진을 단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가 저물면서 새로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움직임은 세계적으로 이미 시작됐다. 여기에는 완성차 제조 능력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효율적 배터리를 충분히 공급하는 능력이 필수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100만대의 전기차를 팔아 세계 시장 점유율 10%를 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펼치고 있는 '그린 뉴딜'의 한 축이다. 현대차가 LG(LG화학), SK(SK이노베이션), 삼성(삼성SDI)을 우군 삼아 각각 동맹을 맺은 것도 그래서다. 앞서나가는 테슬라와 어깨를 겨루려면 배터리 업체와의 협력이 절실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세계 최고 배터리 3사가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긴밀히 협력해 세계 시장 경쟁에서 앞서 나가겠다"고 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이미 테슬라, GM, 폭스바겐 등 등 유수 전기차 제조업체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수준의 배터리 생산기술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탄력을 잃어가는 한국 산업계에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오른쪽)

하지만 이런 사업 구도에서 삼성의 입지는 아직 크지 않다. 배터리 사업 후발주자이자 전장사업도 아직 수지를 맞추지 못하는 단계다. 특히 삼성은 반도체 초격차의 소멸과 스마트폰 시장 포화 등 주력사업이 겪는 위협 속에 새 먹을 거리를 찾고 있었다. 2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를 답방 형태로 찾은 것에는 이런 사업적 위상 측면도 있다.

이날 이 부회장을 위시한 삼성전자의 김기남 부회장,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전영현 삼성SDI 사장,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등 일행은 남양연구소에서 현대차의 차세대 친환경차와 UAM(Urban Air Mobility, 도심항공 모빌리티), 로보틱스(robotics) 등 현대차그룹의 미래 신성장 영역 제품과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나눴다.

전기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산업 트렌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총수간 교류와 협업이 윤활유 이상의 역할을 해야한다. 10년 이상 멀리 봐야하는 사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임기 한계를 가진 전문경영인이 내리기 어렵다.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장 사장도 최근 가진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내년 전망도 어둡다"며 "전문경영인의 노력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불확실성 시대에 대규모 투자와 인재 영입 등을 추진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 역할은 이재용 부회장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처럼 재계 빅4의 '팀 코리아'가 만들어졌다. 이제 막 첫 단추를 꿰는 단계다. 하지만 그 한 축인 삼성은 또 다시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결심을 앞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와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의혹을 품은 검찰의 수사는 외부 전문가들의 반대 권고에도 기소로 이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이 부회장과 이 사건에 대한 '불기소', '수사종결'을 권고했다. 하지만 아직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권고를 무시하는 부담을 지더라도 이 부회장을 기소해야 한다는 검찰 내부의 의지는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최종 결정에 어떤 변수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아쉽다. 물론 죄가 있다면 그 무거움을 감당해야 하는게 맞다. 하지만 과거에도 5년 넘게 삼성의 발목을 잡았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재점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례없이 뭉친 한국 재계 '빅4'의 불꽃이 허무하게 사그라든다면 그 아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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