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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워치]전기요금 동결…'에너지믹스' 정책에 역행

  • 2021.06.25(금) 08:00

에너지정책 시행 최전선은 결국 한국전력
탄소중립도 돈 필요…부담 쌓이면 결국 폭탄

"후크선장이 화석연료를 독차지하자 일곱 난쟁이와 백설 공주는 추위에 부들부들 떨어야 했습니다. 공해로 인해 네버랜드 하늘은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후크선장이 화석연료값을 올리는 바람에 네버랜드 주민들은 추위와 에너지난에 시달렸데요. 결국 피터 팬은 네버랜드 친구를 위해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 모험을 떠났습니다."

모두들 피터 팬과 백설 공주, 후크선장 등 동화 속 주인공들을 알고 계시지만, 이들이 에너지를 두고 갈등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을 겁니다. 위 대사는 한국수력원자력이 만들어 배포한 애니메이션 '네버랜드를 구하라'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입니다. 주인공은 피터 팬과 힘을 합쳐 원자력 에너지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화석연료 에너지를 쓰던 후크선장을 몰아냅니다. 

원자력 에너지는 한수원이고, 화석연료 에너지는 석탄화력 발전사를 말하는 것이겠죠. 재미난 홍보영상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한수원이나 석탄화력발전소나 모두 한국전력의 자회사입니다. 이런 홍보는 석탄화력발전소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적절하게 섞어야하는 이유 

에너지 업계의 이해관계는 복잡합니다. 한수원과 다른 한전의 석탄발전 자회사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한 부모 밑에서 나온 자식들이라도 각자도생은 당연합니다. 이들뿐 아니라 LNG와 신재생에너지 등 모든 에너지원별로 서로 치열하게 점유율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에너지원별로 장점과 단점이 나뉩니다. 가격은 석탄화력이 싸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신재생에너지가 유리합니다. 원전은 온실가스 배출이 없지만 사고가 날 경우 피해가 가늠이 안 될 수준입니다. LNG는 가스배출은 적지만 신재생에너지 못지않게 비싼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각 에너지원 간의 경쟁을 발전적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은 일명 '에너지믹스'라고 부릅니다. 에너지믹스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공급원을 사용하면 효율이 높아지고 오염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온실가스도 없고 사고위험도 적은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게 목표이긴 합니다. 그런 시대가 올 때까지는 각 에너지를 적절하게 섞어 쓰는 '묘수'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만 남겨두기 위해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가 그중 하나죠.

최근 원전수출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과 체코 원전 시장 공략 등의 소식이 전해지자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도 쏟아집니다. 국내에서는 탈원전을 하자면서 해외에는 원전을 팔겠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에너지믹스 정책의 일환이라며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정부의 주장에 문제가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국내에서 가동하는 원전을 줄이는 한편 원전산업 종사자들을 위해 아직 원전수요가 늘고 있는 국가를 대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이런 에너지믹스 정책에 의심이 가는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바로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입니다.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

수십년 값싼 전기 의존…이젠 상황 달라져

수십 년 전부터 한전은 전기요금에 원가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한전은 기꺼이 적자를 감수했습니다.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전국 방방곡곡에 전기선을 깔아줬죠. 아무리 굽이굽이 산 넘어 시골이라도 전기가 필요하다고 하면 전신주가 놓이고 전깃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요금은 도심에서 받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전은 국제유가가 내려가면 원가가 내려가 수익이 쌓이고 반대로 유가가 오르면 적자를 보는 상황이 수십 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이라는 뜻의 '천수답식' 경영입니다. 전기는 정부의 저렴한 행정서비스였습니다. 전기를 사용한 대가는 요금이라기보다는 세금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았죠. 국내 산업의 눈부신 발전은 값싼 전기에 의존한 덕이 큽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적극적인 에너지믹스가 필요해졌거든요. 온실가스 배출이 더는 두고 보기 힘들 정도라는 전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는 이제 국제적인 규제나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단위의 탄소세와 탄소국경세 제도가 속속 도입되면서 관세장벽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무역을 위해서 상품이 제작되는데 얼마만큼의 탄소가 배출됐는지 표시하는 '탄소발자국' 마크를 요구하는 나라가 늘고 있습니다. 기업 간의 거래에서도 사용하는 에너지를 모두 재생에너지를 통해 만들자는 RE100 캠페인 가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한전이 빠질 수 없는 이슈입니다. 한전은 국내 기업에 쏟아지는 모든 전기 생산의 대부분과 전력망 계통연결의 10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전이 적극적인 에너지믹스정책 실천에 앞장서지 않는다면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와서 한전을 대체한 민간 에너지기업이 등장하길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이에 수년 전부터 전력업계에서는 전기요금에 원가를 반영하자는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부터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했습니다.

원가 상관없이 동결…한전 적자 불가피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한 이유는 돈 벌어서 정부나 주주에게 배당이나 많이 주려는 게 아닙니다. 제도 도입을 주도한 김종갑 전 사장은 원가연계형 요금제의 도입 이유를 '투자재원을 확보해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재생에너지 설비에 투자하고 각종 제도 마련을 위한 용역도 진행해야 합니다. 가동을 멈춰야 할 석탄화력 발전 설비의 매몰비용도 한전이 부담해야죠.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2분기와 3분기 전기요금을 원가와 상관없이 동결했습니다. 코로나19와 물가 상승으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만약 전기요금에 원가를 연동했다면 3분기 전기요금은 지난 분기보다 1kWh당 3원을 올려야 했습니다. 월평균 350kWh의 전기를 쓰는 4인 가구일 경우 월 1050원이 오르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원가와 상관없이 전기요금을 동결한 결과, 올해 한전은 연간기준 적자가 확실한 상황입니다. 3분기 요금 발표날 한전의 주가는 7%나 떨어졌죠. 투자자들은 정부와 한전 이사진을 상대로 배임책임을 묻겠다며 집단소송도 준비한다고 합니다.

역대급 환경 변화…말라가는 한전 주머니

한전이 적자 좀 보면 어떻냐고요? 적자가 처음도 아니니 이번에도 괜찮을까요? 환경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역대 최고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P4G 정상회의,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 등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0월에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강화해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빨리 움직였습니다. 최근 각국이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보면 영국은 2010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58% 줄이겠다고 합니다. 미국은 49%, UE는 46% 수준입니다. 일본은 42%, 캐나다는 41%를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한 규제도 살벌합니다. 프랑스는 4시간 이하의 단거리 비행노선을 폐지하고 에너지등급이 낮은 주택은 임대사업을 금지할 방침입니다. 공립학교는 채식메뉴를 정기적으로 내놓아야 합니다. 육가공 산업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죠. 스웨덴은 아예 멀쩡히 운영하던 공항까지 폐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고 합니다.

우리는요? 지난해 우리가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따르면 2010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8% 줄이는 게 고작입니다. UN이 거절한 수치죠. 결국 10월이면 적어도 40%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목표치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작 대책을 시행해야 할 한전은 주머니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한전 주식에 대한 투자손실도 문제지만 에너지믹스에 대한 투자재원 마련이 어려워졌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탈원전 정책도 같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원전은 온실가스 배출이 없습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우리와 달리 원전을 탄소중립 정책의 한 축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설 계획이 없습니다. 원전의 비중은 2024년 이후 감소가 예정됐습니다. 다른 나라와 우리의 에너지믹스 정책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입니다. 이에 대한 부담도 결국 한전의 몫입니다. 

또 석탄화력발전소는 당장 내년부터 가동을 크게 줄여야 합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맞춰 연간 석탄발전량 상한을 조정하는 '자발적 석탄상한제'를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새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나온다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겠죠. 석탄발전의 가동률 저하에 따른 부담도 결국 한전의 몫이 됩니다.

사정이 이러니 전기요금 동결 발표 이후 전력업계에서는 정부가 폭탄돌리기에 들어갔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런 비판이 오해는 아닌 거 같습니다. 전기요금도 제때 못 올리면서 수십년 뒤를 내다보는 정책을 집행할 수 있을까요.

그 결과가 단지 한전만의 피해도 아닙니다. 한전이 버거워할수록 결국 온실가스 배출을 막기 위한 규제 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한전의 부담은 곧 우리 국민의 부담입니다. 만약 우리도 프랑스처럼 에너지등급이 낮은 주택의 임대사업을 금지하겠노라면 이해해 줄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대신 전기요금 안올렸잖아'라는 해명이 통할까요?

기업은 또 어떤가요.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730억원을 벌어들인 현대제철은 1571억원 규모의 온실가스 부채를 새로 떠안았습니다. 물건을 잘 팔았지만 탄소배출을 줄이지 못해 규제에 따라 적자를 입습니다. 탄소배출과 관련된 규제가 강화된다면 이런 기업의 수익구조는 더 나빠집니다.

이런 폭탄이 터지는 시기가 이번 정권인지 다음 정권인지는 국민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폭탄은 폭탄입니다. 살살 맞아도 죽습니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모든 경제주체가 에너지전환에 대한 부담을 나눠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작은 부담을 덜어준다고 고마워 할 일이 아닙니다. 충격이 작을 때 미리 대비하는 묘수가 필요합니다. 전기요금 인상 불발이 아쉬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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