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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워치]가시밭길 걸어야 할 정승일 사장

  • 2021.06.14(월) 13:00

적자 예상 한전…탄소중립 내세운 사장
공기업 한계…원가연계 요금 정착 관건

최근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발표한 '2030세대가 입사하고 싶은 기업' 순위에서 한국전력이 공기업 중 가장 높은 4위를 차지했습니다. 1~3위는 카카오와 삼성전자, 네이버입니다. 한전의 뒤는 구글코리아와 근로복지공단, 인천공항, 현대차 등이 있습니다.

그럴 만하죠. 한전의 자산은 연결재무제표 기준 200조원이 넘습니다. 현대차나 SK 등과 견줄만하고 LG와 롯데, 한화보다도 크죠. 일반적인 구직자라면 대기업 사원이 되는 것을 꿈꾸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원과 사장은 다른가 봅니다. 최근 한전은 신임 사장의 공모절차를 어렵게 진행했는데요. 지원자 부족으로 공모기간을 한차례 연기한 끝에 정승일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새로운 수장으로 맞이했습니다.

한전 사장 공모를 지원자 부족으로 연기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뭅니다. 과거 선임 사장들은 항상 경쟁 끝에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죠. 2012년 조환익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은 문호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 부회장과 경쟁을 벌인 끝에 19대 한전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2018년 김종갑 지멘스 대표는 송인회 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과 오영호 전 코트라 사장, 한진현 무역정보통신 사장, 조석 전 한수원 사장 등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20대 한전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한전 사장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 한전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크게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죠. 적자회사의 경영자만큼 괴로운 자리가 있을까요.

금융투자업계 "한전, 올해 적자 입을 것"

지난 5월17일 한전은 연결재무제표 기준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571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8% 늘었다고 공시했습니다. 매출액은 15조753억원으로 지난해보다 0.1% 줄고 당기순이익은 1184억원으로전년 동기 대비 120.9% 늘었습니다. 

준수한 실적이지만 1분기는 이미 과거입니다. 문제는 미래죠. 금융투자업계는 한전이 호실적을 발표한 날 연간 기준으로는 결국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을 일제히 쏟아냈습니다. 

한전의 1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나온 금융투자업계의 보고서는 총 10개입니다. 이중 4개의 보고서가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습니다. 2곳은 이미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제시했습니다. 매수의견은 총 3곳. 한 곳은 투자의견을 내지 않았고요. 금융투자업계에서 '중립'의견은 사실상 매도의견으로 통하죠. 한전의 주식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매수 의견을 낸 곳이라고 해도 한전의 향후 실적이 좋으리라 전망한 게 아닙니다. 한전의 자산규모에 비해 현재 주가 수준이 낮기 때문에 매수할만하다는 의견을 준거죠. 실적 측면에서는 최근 보고서 모두 한전의 연간 적자를 전망했어요.

돈 써야할 곳 늘어나는데 수입은 못늘려

한전이 올해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 이유는 수입을 늘리기가 쉽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한전은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앞장서서 수행하는 공기업입니다. 태양광과 풍력 등에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다양한 형태로 비용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60GW(기가와트) 규모의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가동할 예정인데요. 이중 40GW가 한전과 한전의 자회사 몫입니다. 여기에 투자해야 할 비용은 120조원 규모나 됩니다. 한전의 현금창출력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죠. 한전은 지난해 영업활동과 투자, 재무 활동 등으로 총 2194억원의 현금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지출규모가 커지더라도 수입이 안정적이라면 우려는 적겠죠. 하지만 한전은 수입을 늘리기가 어렵습니다. 

정부는 올해 2분기부터 전기요금에 연료비를 연동하는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시장원리에 따라 발전원가가 오르면 전기요금을 올려받고, 발전원가가 낮아지면 전기요금도 낮춰주겠다는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말이 바뀝니다. 지난 2분기에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전기요금을 올려야 했지만 코로나19로 국민들의 사정이 어렵다며 정부가 적용을 막았습니다. 한전으로서는 뒷목을 잡을 이야기죠. 금융투자업계가 한전의 연간 적자를 예상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문제입니다. 

한전 희생 당연하다는 분위기

상황이 이런데도 한전의 목줄을 쥐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은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한전에 부담을 주는 정책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전은 내년 개교를 목표로 한전공대 설립도 추진하고 있는데요. 전남 나주에 설립하는 에너지분야 특화 대학입니다. 한전공대 설립 비용은 약 6000억~8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중 절반 이상이 한전의 부담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정부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판교-기흥-화성-평택-온양의 서쪽과 이천-청주의 동쪽이 경기도 용인에서 연결되는 'K-반도체 벨트'를 조성합니다. 510조원이 넘게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입니다. 

문제는 제조시설의 전력 인프라 구축에 포함되는 전력설비의 절반을 정부와 한전이 부담하겠다고 한 겁니다. 공기업인 한전 입장에서는 '반항' 한 번 못해보고 정부의 발표를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부처는 물론 정치권도 한전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전은 코스피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있는 기업인데 상장기업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부의 많은 규제 속에 놓여있다"며 "정부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는 발언을 남겼습니다. 규제를 완화해 한전의 수익성을 회복시켜야한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대해 당내 강성 당원들이 '여당의원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발언'이라는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이 의원은 변호사면서 환경운동가 출신이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발전에 대한 공적기금 투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소신을 펼쳐왔습니다. 나름 에너지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 의원 마저도 한전의 수익을 걱정할 정도지만 정치권에서 화답해주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공기업 사장 한계 뚜렷해도 희망은 있어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정 신임 사장의 한계도 뚜렷해 보입니다. 취임사를 살펴보면 수익성을 회복하겠다는 얘기는 없거든요. 대신 탄소중립에 앞장서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한전입장에서 탄소중립에 나서겠다는 얘기는 수익성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한전의 탄소중립 시행이 왜 한전에 적자를 가져올까요. 한전이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건 한전의 5개 석탄화력 자회사의 기존 사업을 축소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얘기라서입니다.

이미 탄소중립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상당합니다.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남동발전은 1447억원, 서부발전은 859억원, 동서발전은 441억원, 남부발전은 74억원, 중부발전은 2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각각 기록했습니다. 총 적자 규모는 2848억원입니다. 이 회사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비교적 저렴한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원료가격이 비싼 LNG발전 규모를 늘려왔습니다. 결국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이 떨어진 것이 적자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올해는 자발적 석탄상한제도 실시해야 합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맞춰 석탄발전기의 연간 석탄발전량 상한을 조정하는 제도입니다. 가동률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연히 수익을 내기 힘들어집니다.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정부 정책을 거슬러야 합니다. 공기업 수장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 결국 정 사장이 탄소중립을 취임포부로 내세운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뿔이 난 것은 한전의 주주들입니다. 최근 열린 정 사장의 취임을 결정하는 임시주총에서도 현장을 찾은 일부 주주는 한전의 수익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 사장은 자리에 없었지만 한전의 수익성 회복을 위해 원가연계형 요금제 도입을 성공한 김종갑 전임 사장은 주주의 말에 공감하며 발언을 경청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희망도 있습니다. 3분기에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정 신임 사장의 첫번째 시험대로 여겨집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경제회복이 최근 정부의 가장 큰 화두기 때문입니다. 전기요금을 올리는 정책은 기업과 국민들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내년에는 대선도 앞두고 있죠. 

최근 한전의 투자의견을 낮춘 금융투자업계는 한목소리로 어렵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긴 이릅니다. 정 사장의 능력을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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