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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온달 '앱스틸라', 12년 만에 장군 된 사연

  • 2021.06.29(화) 15:58

SK케미칼, 2009년 호주 기업에 기술수출
SK플라즈마, 국내 독점 판매 계약…본격 판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평민의 신분으로 공주를 아내로 맞이해 왕의 사위인 부마(駙馬)에 오르고 무장으로 이름을 떨친 온달장군의 인물설화입니다. 전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국내 기업들은 자금력이나 경쟁력 면에서 아직 '바보온달'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달처럼 장군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장에서 승리하는 공을 쌓아가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바로 '기술수출'입니다. 신약을 온전히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금 등 부족한 부분을 대신 채워줄 '평강공주'가 필요합니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1~3상까지 진행하는데 드는 수조원의 신약 개발 비용을 감당하려면 규모를 더 키워야 합니다.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트렌드가 '기술수출'이었던 이유입니다. 기술수출을 하면 계약금을 받을 수 있고 성공할 경우 판매에 따른 로열티도 보장됩니다. 다만 성공이라는 과실을 따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중도에 계약이 해지되는 일이 많습니다.

드물지만 기술수출 이후 개발과 시판까지 성공한 사례도 있긴 합니다. 대표적인 제품이 SK케미칼의 혈우병 치료제 '앱스틸라'입니다. 앱스틸라(AFSTYLA)는 'Affinity Style Long Acting'의 축약어로 생체 내에서의 결합력이 높아 안정적이고 약효가 장기간 지속되는 혈우병 치료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SK케미칼은 지난 2009년 호주의 씨에스엘베링(CSL Behring)사에 전임상(동물실험) 단계에 있던 앱스틸라를 기술수출했습니다. 기술수출 규모는 계약금 250억원, 로열티는 매출액 대비 약 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SK케미칼이 호주 CSL베링사에 기술수출한 앱스틸라. /사진=CSL베링 홈페이지

CSL은 기술수출 계약 7년 후인 지난 2016년 미국식품의약국(FDA)와 캐나다에서 '앱스틸라'의 허가를 획득하면서 신약 개발의 최종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2017년에는 유럽의약국(EMA)와 호주에서도 시판허가를 받으며 글로벌 시장을 확대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앱스틸라'로 치료하는 A형 혈우병은 혈액응고에 관여하는 13가지 인자 중 8번째 인자의 결함 혹은 결핍으로 발병되는 선천적 출혈성 장애 질환입니다. A형 혈우병 환자는 대부분 남성입니다. 주로 근육, 관절, 내부 장기에서 출혈이 발생하거나 지속됩니다. 혈우병은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혈액 응고인자를 지속적으로 투여하면서 관리해야 합니다.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처럼 말이죠.

기존 치료제(3세대)들은 주 3~4회 주사투여를 해야 했습니다. 반면 앱스틸라는 주 2회 주사제형으로, 반감기(의약품의 목표 농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간)를 늘린 4세대 치료제입니다. 혈우병 치료제 시장이 3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가는 추세여서 시장성도 매우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이처럼 해외 시장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앱스틸라'가 12년 만에 다시 SK그룹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SK케미칼이 2015년 혈액제제 및 희귀난치성질환 전문 기업으로 분사한 관계사 SK플라즈마를 통해서입니다.

SK플라즈마는 최근 CSL 한국법인과 앱스틸라에 대한 독점 판매 계약을 맺었습니다. 앱스틸라 생산과 수입은 CSL이 맡고 국내 마케팅을 SK플라즈마가 담당합니다. 국내 시판허가는 지난해 1월 승인받았지만 최근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되면서 이제야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질 전망입니다. 

CSL이라는 평강공주를 만나 전장에서 승리한 첫 번째 사례가 된 셈입니다. 첫 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비록 '앱스틸라' 개발의 영광은 CSL에 돌아갔지만 SK플라즈마는 국내 판매 수수료를, SK케미칼은 판매액에 따른 러닝로열티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앱스틸라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자금력만 있다면 글로벌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모범 사례가 됐습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술수출은 지난해 10조원을 넘겼습니다. 4년 전인 지난 2017년 1조4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9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다만 기술수출이 대폭 증가했다고 해서 무조건 신약이 개발되는 건 아닙니다.

신약 개발은 '마라톤'으로 비유되곤 합니다. 신약 개발기간이 평균 10~15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앱스틸라 역시 기술수출 이후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7년이 더 걸렸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술수출한 물질들이 성과를 내기까지 수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윤호 SK플라즈마 대표는 "오랜 투자가 결실을 맺어 다시 한국에 돌아와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기술수출만큼 결실로 돌아오는 신약도 점차 늘어날 것입니다. 기술수출이 신약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한 단계 더 성장할 겁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수많은 전장을 경험하면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장군'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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