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출시된 3세대 제네시스 G80는 올해 상반기에도 내수 판매량 3만566대, 월 평균 5000대 넘게 팔린 인기 차종이다. 제네시스는 이렇게 잘 나가는 G80에 더 힘을 주고 있다. 이달 들어 파생모델로 전동화 모델과 스포츠 모델을 거의 동시에 새로 선보였다. 특히 전기차(EV)의 등판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제네시스 첫 전기차이자, 하이브리드를 건너뛴 제네시스의 첫 친환경 차량이다. 누구를 겨냥했을까?
지난 7일 현대자동차가 미디어 대상 시승회를 연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에서 'G80 전동화 모델, electrifiid G80(이하 eG80)'를 처음 만났다. 이미 많이 본 G80의 고급스러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면 접촉을 최소화한 시승 절차에 따라 바로 옆에 댄 그랜저가 움츠러들어 보일 정도다. 제네시스는 이제는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정도의 수입차엔 꿀리지 않는 '하차감'을 인정받는 수준에 올랐다.
eG80의 외양은 내연기관 G80과 거의 다르지 않다. 위풍당당한 정면의 크레스트 그릴, 브랜드 정체성을 세운 '두 줄'의 쿼드램프로 품격을 갖췄다. 겉보기에 전기차라서 다른 건 하늘색 친환경차 번호판, 방열이 필요 없어 공기역학만을 고려해 막아놓은 라디에이터 그릴, 자세히 봐야 겨우 보이는 그릴 오른편의 충전구 정도다.
폭(1925mm)이나, 높이(1465mm), 앞뒤 바퀴 사이 길이(3010mm)는 모두 내연기관 G80과 같다. 차 전체 앞뒤 길이인 전장만 10mm 긴데(5005mm), 전면 그릴과 후면 범퍼가 각각 공기저항을 줄이고 배기구를 없애며 좀 더 도톰해진 때문인가 싶었다.
차 안에 앉아서도 전기차라 느껴지는 이질감은 거의 없었다. 그저 제네시스 G80 풀옵션 내부장치들이 뿜어내는 고급스러움이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 구동되는 중앙부의 14.5인치의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화면), 입체감 있게 주행정보가 구현되는 12.3인치 클러스터(계기판), 전자식 변속 다이얼이 눈에 어지럽지 않게 자리잡고 있었다. 값나가 보이는 재질의 여러 인테리어 요소와 조화로웠다.
시승 코스는 청평 북한강 변의 한 호텔을 다녀오는 왕복 75km가량의 구간이었다. 시동은 걸려 있었지만(정확히는, 전원이 켜 있었지만) 엔진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 상황이 익숙지 않았다. 스타트 버튼을 눌러 시동을 껐다 다시 켜니 최신 IT(정보기술) 기기 같은 효과음이 들렸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니 아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차체가 정말 묵직하다는 걸 실감했다.
이 차의 공차중량은 2265kg. 엔진이 달린 G80 최고사양(가솔린 3.5터보 AWD, 19인치 타이어)보다 300kg가량 무겁다. 배터리 무게가 한몫했으려니 했다. 물론 가솔린 G80도 기름을 가득 채우면 한 70kg 가까이 중량이 늘어난다.
eG80에는 국산 전기차중 가장 큰 87.2kWh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가 탑재돼 있다. 내연기관 차에 있는 모든 사양을 갖춘 무거운 대형 세단이지만 주행거리를 427km까지 뽑아내려니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을 거다. 주행거리가 비슷한 현대차 아이오닉5나 기아 EV6의 롱레인지 모델(각 72.64kWh, 77.4kWh)보다 20%까지 큰 용량이다. eG80에 설치된 파우치형 전지는 SK이노베이션이 납품했다.
2톤이 훌쩍 넘는 차였지만 가속 패달을 밟으니 반응은 꽤 민첩했다. 고속도로 구간에서 다른 차들을 뒤로 제치면서 기민하게 차로를 변경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 차는 최대 출력 136kW, 최대 토크 350Nm의 힘을 내는 모터를 전륜과 후륜에 각각 달았다. 합산하면 최대 출력은 272kW(370PS), 최대 토크는 700N·m(71.4kg·m)다. G80 가솔린 3.5 터보(380PS, 54.0kg·m)보다 노면을 잡아채는 힘이 더 낫다.
특히 동력 전달이 단순한 전기차라 순발력이 더 좋게 느껴졌다. 나중에 놀랐던 건 주행방식을 '스포츠 모드'가 아닌 '컴포트 모드'로 놓고도 가속 성능에 만족했다는 것이었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고서는 목이 뒤로 훅 젖혀지는 '급발진급' 급가속 성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제로백이 4.9초란다.
제동 성능도 안정적이어서 믿음이 갔다. 따로 조작해 보지 않았지만 이 차는 브레이크 모드도 선택할 수 있는데 '스포츠'를 선택하면 더욱 민첩한 제동능력을 발휘한다는 게 현대차 관계자 말이다. 승차감은 그만이었다. 쭉 뻗은 고속도로와 이리저리 굽은 경춘국도 등을 달리는 내내 노면음이나 주행진동이 거슬린 순간이 전혀 없었다. 그저 고요했다. 누군가 운전대를 잡게 하고 뒤에 타 '성공한 인생' 기분을 내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동승이 제한돼 그러지 못했다.
반환점에서야 알아챈 전기차라 달랐던 몇가지가 있었다. 다른 매체 기자가 운전석 좌석 포지션이 좀 높지 않냐고 해 그런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차내 바닥이 내연기관 차보다 5cm 남짓 높았다. 차 문턱과의 차이가 그랬다. 차체 아래 깔린 배터리의 두께 때문이지 싶었다. 1열 좌석 하단 레일이 낮은 것도 차 안 바닥이 높아진 걸 상쇄한 설계라 생각됐다. 상대적으로 바닥이 높고 좌석이 낮아 앞뒤 모두에서 무릎이 좀 더 세워지는 느낌이었다.
내연기관 차가 아니라 뒷바퀴에 동력을 연결하는 축이 없다보니 뒷좌석 발판 가운데가 툭 튀어나온 것도 없었다. 2열에 3명이 앉는다면 가운데 사람 다리를 덜 어정쩡하게 할 개선이다. 하지만 기존 내연기관 플랫폼을 활용한 전기차라 적재함엔 한계가 있었다. 뒷좌석 아래쪽에 후륜 모터가 자리잡고 있다보니 공간이 깊숙하게 확보되지 못했다. '아재'들의 트렁크 기준인 골프가방 4개는커녕 2개도 빠듯하지 싶었다.
공인 전비는 4.3km/kWh인데 복귀 때 찍힌 실전비는 5.1km/kWh였다. 기본형 단일 모델인 eG80은 차값만 8000만원이 넘는다. 풀옵션을 거의 채운 시승차는 국가보조금 379만원을 받더라도 1억원에 육박했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받아도 9000만원은 훌쩍 넘는다. 가솔린 3.5 풀옵션보다도 조금 더 비싸다. 하지만 이 차 구입을 고민하는 사람 중에 그 정도 가격 차이에 마음 쓰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테슬라와는 또 다른 최고급 전기차의 등장이다. 재무적 여유를 갖춘 오피니언 리더,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고위 관료나 기업가, 성공한 창업자들이 파란 번호판을 단 eG80을 눈여겨보고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