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은 높은 성장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바이오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은 전통 제약기업인 한미약품이 2015년 11월 글로벌 제약기업인 사노피에 총액 39억 유로(당시 4조8000억원)의 수출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바이오 벤처 기업들이 유가증권 시장에 도전하면서 '바이오'에 대한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미약품 이후 2~3년 간 국내 바이오 투자시장은 호황기였다. 셀리버리, 신라젠, 헬릭스미스, 에이치엘비 등 다수 바이오 신약 개발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이 때문에 '바이오 투자'라고 하면 대부분 바이오의약품, 바이오 신약 개발 기업을 떠올린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2021년 상반기 벤처캐피털(VC) 투자 동향 및 기술특례상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VC 신규투자에서 바이오의료 업종이 ICT(정보기술과 통신기술) 업종을 4년 연속 앞서고 있다.
올해 상반기 바이오‧의료 업종의 총 투자 금액은 8066억원으로 2018년 이후 최대 투자 업종으로 부상했다. 올 하반기 투자 금액까지 합산하면 올해 투자 규모는 지난해 총 투자 금액 1조1970억원을 넘어 역대 최다 금액을 경신할 전망이다.
문제는 기업명에 '바이오'라는 단어만으로도 투자자들이 현혹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술특례상장 25건 중 15건이 바이오‧의료 관련 기업이었다. 일반적으로 기술특례상장은 매출 없이 기술력의 비전만으로 성장 가능성을 판단해 상장이 이뤄진다. 사명에 '바이오'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더라도 다 기술특례상장 되는 것이 아니다. 바이오의약품이나 바이오 신약과는 관련이 없는 기업도 다수다.
실제로 '바이오'라는 사명을 오인해 잘못된 투자가 이뤄진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19년 SK바이오팜이 뇌전증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명이 비슷한 코스닥 상장사 SK바이오랜드의 주가가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SK바이오랜드는 화장품 재료 생산업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함정은 SK바이오팜 역시 바이오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SK바이오팜은 합성의약품 중심 연구개발 기업이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척추 관련 의료기기업체 서전텍(SurGenTec)을 국내 진단키트기업 수젠텍(SugenTech)으로 오인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투자자들은 서전텍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제품 허가를 받은 사실을 수젠텍으로 잘못 알았다. 이 탓에 국내 기업인 수젠텍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급등한 바 있다. 이밖에 면역항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신라젠을 호텔신라의 관계기업으로 알고 묻지마 투자에 나선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바이오' 사명을 앞세운 다수 기업들이 기업공개(IPO)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상장한 기업으로는 인바이오, 엔젠바이오, 신테카바이오 등이 있다. 엔젠바이오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정밀진단 플랫폼 기업이다. 신테카바이오는 유전체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 분석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신약 개발에 활용 가능한 기술을 갖춘 기업들이다.
반면, 인바이오는 살균, 살충, 제초제 등의 농약 및 비료 외 제조와 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는 회사다. 올해 상장한 바이오다인은 의료기기 전문 기업이다. 또 건강기능식품 기업인 '프롬바이오', 의료기기인 필러 전문기업 '바이오플러스' 등도 이달 상장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바이오의약품이나 바이오 신약 개발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바이오는 생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bios'에서 유래한 단어다. 국내 국가표준으로 제정된 바이오산업은 8개다. △바이오의약 △바이오화학 △바이오식품 △바이오환경 △바이오전자 △바이오공정 및 기기 △바이오에너지 및 자원 △바이오 검정 △정보서비스 및 연구개발 산업 등이다. 바이오기술은 여러 산업에 적용이 가능하고 의약품은 그 중 일부일 뿐이다.
바이오의약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만큼 시장 규모가 크고 향후 성장 가능성도 높아서다.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바이오의약품의 매출 비중은 2012년 20%에서 2019년에는 29%로 증가했다. 2026년에는 35%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연매출 10억달러 이상을 달성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 중 바이오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율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전체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48.1%가 바이오의약품이었다.
투자 용어 중에 '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이라는 말이 있다. 신약 개발 역시 '고위험, 고수익' 사업으로 꼽힌다. 이미 숱한 국내 바이오 벤처들이 임상 실패 등으로 난항을 겪었고 이는 투자 피해로 이어졌다. 단순히 '바이오'라는 기업명과 여론만 보고 '묻지마 투자'를 했다간 쓰디 쓴 결과만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