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CES에서 이목을 끄는 분야는 뭐니뭐니해도 '로보틱스'다. 가전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LG전자를 비롯해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 등이 너나할 것 없이 로봇을 들고 나왔다.
시제품 수준이 아니라 완성 단계에 오른 야심작들을 전시하거나 발표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로봇 사업에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곳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들마다 미래 먹거리로 키우는 로봇의 쓰임새를 명확히 밝혔다. 현대차는 로봇이 가상세계와 현실을 잇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선언했다. 삼성·LG전자는 로봇이 단순히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존재를 넘어 동반자가 된다고 소개했다.
車 지운 현대차의 로봇 '비전'
로봇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곳은 정작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다. 현대차는 이번 CES 참여 테마를 로보틱스로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래지향적 솔루션을 발표했다.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CES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사가 개발한 로봇개 '스팟'을 데리고 나와 직접 발표를 하기도 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차가 인수한 로봇 기업이다.
현대차는 로보틱스 솔루션 '메타모빌리티'(Metamobility)를 강조했다. 얼핏보면 메타버스와 모빌리티의 합성어 같지만, 이 개념의 핵심은 로봇이다. 현대차는 모든 사물에 이동성을 부여하는 로봇을 신개념 모빌리티로 정의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로봇이 현실과 메타버스 세계를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접속 공간은 메타버스 플랫폼이지만, 현실에서 로봇을 통해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용자가 메타버스 속에 구축된 가상의 집이나 차에 접속한 뒤 현실에서는 로봇개를 산책시키거나 실제 자동차 내 로봇을 사용해 가상과 현실을 동기화할 수 있다. 스마트팩토리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동일한 공간을 메타버스로 구현하고 동기화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공장이라 해도 로봇을 통해 생산 라인을 돌릴 수 있다.
이는 조만간 네이버가 구현할 제2사옥 속 핵심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거울과 같이 현실과 평행한 공간을 메타버스에 만들어 조종한다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이다. 네이버는 현실 사옥과 동일한 메타버스 사옥을 구축, 가상 사옥에서 실제 건물에 있는 클라우드 로봇에 명령을 내려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이를 완성차 속에 적용해 '메타버스-로봇-자동차'를 연결시킬 계획이다.
현대차는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팩토리인 '메타팩토리' 구축에도 박차를 가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메타버스 환경 구축 및 실시간 3D(3차원) 콘텐츠 개발·운영 플랫폼 회사인 유니티와 손잡았다고 6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올해 말 완공 예정인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내부 스마트팩토리를 가상 현실로 그대로 구현한 가상공장을 세계 최대 규모로 구축하겠단 계획이다.
밥상 차려주고 사과 포장하는 그들
IT기업들도 그간 로봇 사업에 발 담근 성과를 과시했다. 온라인으로 개최된 작년 CES에서 가사로봇 '삼성 봇 핸디'를 발표한 삼성전자는 자체 기술을 녹여낸 진화된 로봇들을 선보였다. 이름하여 동반자(Life Companion) 로봇인 '삼성 봇 아이'는 조수 역할을 넘어 사용자와 같이 이동하며 상호작용하는 게 특징이다.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 기능을 갖춰 사용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현장에 있는 것처럼 조종할 수 있다.
'AI 아바타'도 눈길을 끌었다. 초광대역통신(UWB, Ultra Wide Band) 위치 인식 기술을 적용한 AI 아바타는 TV, 냉장고 등 사용자와 가까운 스마트 가전 디스플레이로 옮겨 다니며 조수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 부스에서는 삼성 봇 핸디와 삼성 봇 아이, AI 아바타가 사용자를 둘러싸고 밥상을 차려주거나 화상회의를 돕는 모습이 시연됐다.
삼성전자는 CES 현장에서 통신사 SK텔레콤과의 관계를 좁히기도 했다.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은 유영상 SK텔레콤 사장과 5G, AI, 메타버스 등 폭넓은 ICT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초고속 통신기술이 클라우드 등 로봇의 두뇌와 하드웨어의 연결에 중요한 부분으로 떠오르면서 로보틱스 분야의 협력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도 5G와 AI를 접목시킨 로봇들을 선보였다. 지난 CES에서 LG전자는 살균·셰프·서브·배송·안내 등이 각각 가능한 클로이 시리즈 5종을 발표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을 뽐낸 바 있다. 이번에도 가이드·서브·실내외 통합배송 등에 능숙한 클로이 3종을 발표했다. 특히 최근 각종 대형 행사장에서 상용화 검증을 마친 LG 클로이 가이드봇은 안내뿐만 아니라 전시 해설, 보안, 광고 등 복합적 기능을 갖춰 활용도가 높을 것이란 평가다.
두산로보틱스의 로봇 전시 테마는 '협동'이었다. 두산로보틱스 부스에서는 드럼 연주 및 스마트팜에서의 사과 수확·포장 기능을 갖춘 로봇들이 시연됐다. 올해 혁신상을 수상한 카메라로봇도 주요 협동로봇이다.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 공연 촬영 등에 특화된 기능을 갖춘 게 특징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이번 CES 전시 후 카메라로봇의 글로벌 판매에 돌입할 계획이다.
'로봇이 미래다'…2030년 310조 시장
산업 전반이 로봇 기술 투자에 '올인'하는 모습은 익숙해질 것으로 보인다. 로봇은 크게 삼성전자 등이 선보인 서비스형 로봇과 두산로보틱스의 협동로봇과 같은 산업형 로봇으로 분류된다. 팬데믹으로 비대면 시장이 활성화되자, 코로나19 환경에도 두 로봇 모두 수급이 크게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대기업들의 로봇 사업은 본 궤도에 오른 모양새다. 최근 삼성전자는 연말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로봇사업화 태스크포스(TF)를 정식 로봇사업팀으로 격상했다. CES에서 전시한 다양한 로봇들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수익창출에 나서기 위함이다. IT업계에서는 2017년부터 각종 로봇 개발사들을 자회사로 인수한 LG전자처럼 삼성도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스마트폰 사업을 접은 LG전자는 로봇 사업을 새 먹거리로 점찍은지 오래다. 지난 2018년 로봇사업센터를 설립한 뒤 로보스타를 인수하고 로보티즈, 아크릴, 보사노바로보틱스, 레다테크, 티랩스 등 다양한 회사에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향후 3년간 1억달러 규모를 AI 인프라 확보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만큼 로봇 기술 근간 확립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전체 로봇 시장 파이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2017년 245억달러 수준이었던 글로벌 로봇 시장은 연간 22%의 성장률을 기록, 지난해엔 444억달러 수준으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이 시장이 오는 2030년 최대 2600억달러(약 312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SK증권은 "팬데믹 이후 비대면 수요에 따른 서비스 로봇 출하가 증가했고 물류 로봇은 전자상거래 시장 급성장에 따라 아마존, 패덱스, 월마트 등 효율적 물류 관리를 위한 필수 로봇으로 자리매김했다"며 "로봇은 2030년 CES 행사의 예비 주인공"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