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견 건설사 호반건설이 대한항공 지주회사인 한진칼 주식을 장외에서 대량으로 사들였다. 한진칼 경영진과 수년간 경영권 분쟁을 벌인 사모펀드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을 한꺼번에 사온 거래였다.
눈길이 가는 것은 이 거래 사흘 전 호반건설 자회사인 호반이 먼저 한진칼 주식을 장내에서 사들였다는 점이다. 호반건설의 한진칼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소식이 시장에 알려져 한진칼 주가가 오르기 전, 호반이 먼저 한진칼 지분을 매수한 것이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드는 대목이다.
이번 거래가 '미공개 정보 이용행위 금지'하는 법을 위반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지분 인수 배경에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어서다. 다만 위법 여부를 떠나 '호반건설의 한진칼 주식 매입' 정보가 시장에 알려진 뒤에 호반이 주식을 사는 신중함이 필요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필 계약 사흘 전에…
호반건설이 한진칼 주식을 샀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지난달 28일이다. 이날 두 회사가 나란히 밝힌 공시를 종합해보면 호반건설은 지난달 21일 사모펀드 KCGI 산하 '그레이스홀딩스 외 특수관계인 6개사'(이하 KCGI)와 장외 주식매매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을 통해 호반건설은 KCGI가 보유한 한진칼 주식 940만주를 5640억원에 매입했다. 주당 6만원 꼴이다. 또 KCGI가 가진 한진칼 잔여 주식 161만4917주와 한진칼 주식을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 80만주에 대한 매도청구권도 획득했다.
호반건설이 매도청구권까지 모두 행사하면 총 1181만4917주(17.35%)를 확보하는 대형 거래였다. 거래 대금만 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계산된다. 호반건설은 "단순투자"라고 공시했지만 시장은 경영권 분쟁의 변수가 생겼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공시가 뜬 다음 날 한진칼 주가는 전거래일보다 6.23% 올랐다.
호반건설의 한진칼 주식 매입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호반건설보다 더 빨리 한진칼 주식을 산 회사가 있었다. 바로 호반건설이 지분 45%를 보유한 호반이었다. 호반은 골프장 운영과 부동산 개발업을 맡고 있다.
지난달 18일 호반은 한진칼 주식 5만2000주를 장내 매수했다. 증시거래시간(9시~15시30분)에 호반이 직접 장내에서 한진칼 주식을 매수했다는 얘기다. 주당 취득가는 5만6889원으로 총 30억원어치다.
호반건설이 KCGI와 블록딜을 맺기 사흘 전에 호반이 한진칼 주식을 장내에서 사들인 것이다. 두 거래 사이에 주말이 끼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거래일 만이다.
문제는 이 같은 거래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샀냐'는 의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황상 호반이 '호반건설과 KCGI의 주식거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증권거래법 188조를 보면 '상장법인의 업무 등과 관련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아니한 중요한 정보를 직무와 관련해 알게 된 자와 이들로부터 이 정보를 받은 자는 이 법인이 발행한 유가증권의 매매 기타 거래와 관련해 그 정보를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이 이를 이용하게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업무상 얻은 정보로 주식 하지 말라'는 얘기다.
공교롭게 호반이 한진칼 주식을 매입한 지난 18일과 호반건설이 KCGI와 주식매매계약을 맺은 지난 21일 한진칼 주가는 각각 3.6%, 5.38% 올랐다. 당시는 시장에 '정보'가 알려지기 전이었다.
이에 대해 호반건설 관계자는 "호반이 한진칼 주식을 장기보유하기 위해 매입했다"라고만 해명했다.
호반, 공시 뒤에 샀어야
하지만 호반의 한진칼 주식 매입 시점만을 두고 내부자거래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정황만으로 (내부자거래) 혐의를 두기는 쉽지만 입증이나 실제적 진실을 알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지분을 팔았거나 큰 차익을 취하지 않고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호반건설에선 어차피 한진칼 지분을 사니 우리가 주식을 보유하는 동안, 자회사도 같이 우호적으로 지분을 더 가지기로 한 것일 수 있다"며 "거래를 통한 이득을 보기보단 전체적인 인수합병(M&A) 맥락에서 이렇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호반건설이 한진칼 지분 인수를 두고 "단순 투자"라고 설명하고 있는 만큼, 경영권을 염두에 둔 계열사간 공동 지분 인수로 해석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성 교수는 다만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고 한 것처럼 (호반의 한진칼 지분 인수 거래가) 없었으면 깔끔했을 것"이라며 "아니면 호반건설이 한진칼 지분 취득한 것을 공시한 뒤에 호반이 한진칼 지분을 샀어야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