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전기 요금 원가주의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밝히면서 전기차 충전요금 인상 여부에도 관심이 모인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전기차 충전요금 5년간 동결'을 공약으로 내건 적이 있어서다.
만약 전기차 충전 요금에도 원가주의 원칙이 반영될 경우, 전기차 충전 요금이 기존 대비 3~4배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대로 공약을 이행하면 전기 요금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원가원칙=전기료 인상 불가피"
인수위가 전기 요금 원가주의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밝힌 건 지난 28일이었다. 김기흥 인수위 부대변인은 이날 "공급 확대 위주에서 수요 정책 강화를 통해 에너지 시장 기능 정상화를 기본방향으로 수립할 계획"이라며 "(전기 요금의) 원가주의 체제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인수위, 한전 독과점 깨되 요금도 올리겠다(4월28일)
인수위의 발표대로 전기 요금 원가 체제가 확립되면 가정, 산업 등 전 부문에서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현재도 원가 상승분을 전기 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는 탓에 한국전력은 매년 수조원의 적자가 쌓이는 중이다. 한전은 지난해 연결 기준 5조860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발표 당시 인수위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여 원가 인상분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하지만 당장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재개를 하더라도 정상 가동까지는 최소 10년이 소요된다. 윤 당선인 임기 내 원전 비중을 확대를 통한 전기요금 인상 억제가 어렵단 얘기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신한울 3·4호기의 가동 가능 시점은 2033년으로 돼있다"며 "기존 가동되는 원전을 통해 전기 생산 비중을 늘릴 순 있겠지만 제한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석탄, 천연가스 등을 통해 생산되는 전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원전을 통해 전기 요금 인상 요인을 억제하는 건 윤 당선인 임기 내 힘들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 요금 3~4배↑"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전기차 충전 요금 5년간 동결'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국내에 설치된 급속 충전기는 1kW(킬로와트)당 평균 290~300원 수준인데 이 가격을 5년간 유지하겠단 얘기다. 현재 전기차 충전 요금은 특례할인 제도로 운용돼 일반 전기 요금보다 약 20~25% 저렴한 가격에 충전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인수위의 원가 체제 확립 원칙이 전기차 충전요금에도 적용될 경우, 전기차 요금 대폭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특례 제도를 통해 전기차 충전요금이 할인 중인만큼 상승폭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유 교수는 "인수위의 발표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원가 원칙을 전기차 충전 요금에도 적용할 경우 요금이 현재대비 3~4배 인상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이 전기차 충전요금 5년 동결 공약을 이행할 경우도 문제다. 모든 부문에서 전기 요금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기차 충전요금에만 특례 할인 제도를 유지할 경우, 형평성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어서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원가 원칙에 의해 가정, 산업 부문에서 전기 요금이 정상화되면 전기차 충전 특례 할인 제도를 두고 형평성 문제가 들 수 있다"며 "한전의 재무구조가 나빠지고 있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선 부담자 원칙에 의해 모든 부문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 윤 당선인 측이 전기차 충전요금 5년간 동결 공약 철회를 할지에 대해선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가 '공약이 철회된 건 아니지만 원가를 추정해 반영하겠다'는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놓은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박주헌 경제2분과 전문위원(동덕여대 교수)은 브리핑 당시 "공약이 철회된 건 아니고 원가주의 체제로 넘어가면 전기차 충전에 대한 용도별로 원가를 잘 추정해서 그것에 따라 요금 체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속도조절 필요"
업계에선 전기차 충전요금이 인상되면 당장 충전업계의 수익성이 개선될 순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전기차 보급 확대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는 중이다.
충전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요금에도 원가체제가 반영되면 당장의 수익성이 개선될 순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내연기관차대비 연료비(전기차 충전비)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는데 요금이 인상되면 전기차의 구매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선 전기차 보급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도 "전기차 충전 요금 인상이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가면 굳이 고객들이 전기차를 찾을지 모르겠다"며 "차종별로 다르긴 하지만 보통 전기차 충전요금은 2만~3만원 수준으로 보면 된다. 전기차 충전 요금이 3~4배가 오르면 구매자들이 굳이 전기차를 찾진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전기 충전 요금이 인상되면 다른 방안을 통해서라도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는 "전기차의 경우 친환경이라는 대의적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전기차 요금 동결이 형평성 문제로 어렵다면 전기차 보조금 확대 등과 같은 제3의 대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기 충전 요금을 원가 원칙을 당장 반영하면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속도 조절을 해나가며 적정선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