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친환경'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면에 '환경오염' 요인이 있음에도 말이다. 배터리가 대량 폐기되면 환경문제가 야기돼서다. 이같은 친환경 전기차의 역설을 해결하려면 폐배터리 재활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에선 관련법 미비로 산업 활성화 조차 어렵다. 비즈니스워치는 국내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유럽·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방안을 집중 분석하고, 친환경 전기차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철강 사업에 주력하던 포스코그룹이 최근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에도 진심이다. 포스코가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을 시작한 시점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스코는 2010년 리튬 생산기술 개발에 착수하고, 염수와 광석 모두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확보한 바 있다. 이제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사업뿐 아니라 호주·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광산과 염호를 확보해 리튬, 니켈, 흑연 등을 얻는 등 전기차 배터리 원료 사업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포스코가 배터리 소재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의 환경 규제에 따라 고객사인 완성차 브랜드들이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면서다. 배터리 무게 부담이 있는 전기차는 경량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전기차용 강판 개발을 시작했고, 연이어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도 병행했다.
12년 지속사업에 대한 재무적 성과도 나타났다. 포스코는 올해 양극재 사업 매출만 1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2012년 양극재 회사인 포스코ESM 출범 첫해 매출이 12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포스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배터리 소재를 만드는데만 신경쓰는 게 아니라 폐배터리에서 니켈, 리튬, 코발트 등 원료를 추출하는 재활용(리사이클링) 사업까진 나선 것이다. 단순히 폐기하면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자원을 재활용하면서 돈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원자재 수급난과 함께 니켈, 리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경제적 이득도 상당하다. 특히 글로벌 전략 자원으로 꼽히는 원료들을 국내에서 재생산한다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사업이다. 포스코는 전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전기차 대중화와 함께 성장, 오는 2040년 28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에서만 폐배터리를 확보하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해외로도 눈길을 돌렸다.
포스코는 지난해 3월 폴란드 법인 'PLSC'(Poland Legnica Sourcing Center)를 설립했다. 배터리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불량품(스크랩)을 블랙파우더(Black Powder=블랙매스)로 가공하는 공장이다. 블랙파우더는 리튬이온 배터리 스크랩을 파쇄하고 선별 채취한 검은색 분말로, 니켈·리튬·코발트·망간 등을 함유하고 있다.
최근 준공을 마친 폴란드 공장은 당초 올 9월 가동이 목표였으나 현지 사정을 고려해 연내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연간 스크랩 1만톤(블랙매스 기준 7000톤)을 처리하는 규모를 갖출 예정이다.
지난해 5월에는 블랙파우더에서 니켈, 리튬 등을 추출하는 '포스코HY클린메탈'도 설립했고, 율촌산단에 이차전지 리사이클링 공장을 착공했다. 올해 완공 목표인 이 공장은 연간 1만2000톤 규모의 블랙파우더를 처리할 수 있다. 포스코스룹은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 공장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석준호 포스코홀딩스 이차전지소재사업담당 리더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만나, 배터리 재활용 사업 현황과 미래 계획을 자세히 들었다.
-포스코가 배터리 소재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 대기업의 글로벌 신사업은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유행처럼 추진됐다. 포스코의 배터리 소재 사업은 그렇지 않다. 배경은 이렇다. 미국과 유럽의 환경 규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이슈가 2010년 무렵 시작됐다. 자동차 연비에 대한 규제도 그때 시작됐다. 완성차들은 내연기관차의 경량화, 전동화를 고민했다. 완성차에 강판을 공급하는 포스코 입장에선 심각한 문제였다. 고객사들이 차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다른 소재를 채택하고, 철강을 사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래서 방향성을 어떻게 정했나
▲당시 경영진을 비롯해 사내에선 경량화, 전기차 가운데 어디에 베팅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다. 결론은 다 한다는 것이었다.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 회사 인수에 나서고 리튬, 양·음극재 개발도 동시에 진행하는 식었다. LS·보광 등에서 양·음극재 관련 기업과 사업부도 추가로 인수했다.
-다소 이른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수년 뒤 테슬라가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전동화로 정리가 됐다. 결과적으로는 전기차 시대가 열렸다. 우리가 10여 년 전에 세웠던 전략들이 적중하게 된 셈이다. 2015~2016년 당시 연간 1000억원 단위 투자를 했다면 이후엔 조 단위 투자로 전환했다.
-철강 사업자 입장에선 과감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당시 임원들이 매일 모여 토론한 결과다. 현재 경영진으로 있는 분들이다. 오래전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많은 토론과 검토를 거친 과정이 있었기에 현재도 조단위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더 과감하게 배터리 사업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토론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경영 철학이 있다. 우리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객사들과 윈윈하는 것이 철학이므로 배터리나 전기차로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은 제로다.
-쉽지 않은 과정도 있었을 것 같다
▲지금은 포스코케미칼로 합병된 회사, 그러니까 2012년 양극재 회사인 '포스코ESM'이 처음에 생겼을 때 첫 해 매출이 12억원이었다. 대기업에서 자회사를 세웠는데 매출이 12억짜리 자회사가 나온다면 사실 신사업이라고 볼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비즈니스를 10년 이상 끌고 왔다. 올해 양극재 매출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딱 10년만의 성과다. 실존적 고민과 함께 오래전부터 추진된 사업 개발, 전략적 접근 없이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양극재 외에 다른 배터리 소재 사업의 경영 성과는 어떨까
▲소재 가격이 변화하기 때문에 매출 목표를 정확하게 설명드리기는 어렵다. 2030년 기준으로 양극재는 61만톤, 음극재는 32만톤, 니켈 22만톤, 리튬은 30만톤가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소재 사업을 하면서 함께 추진한 것인지, 아니면 사업을 하다보니 필요성을 느낀 것인지
▲함께 추진한 사업이라고 보는 게 맞다. 니켈은 땅속에 묻혀있을 때 함량이 1.2%밖에 안 된다. 광산과 염호에서 배터리 원료를 얻고 있지만 이런 것만으로는 전세계 전기차 생태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쉽게 말해 1%를 캐기 위해 99%를 쌓아야 하는 셈이다. 비즈니스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재활용을 통한 원료 확보가 필수적이다.
-배터리 재활용은 친환경 사업이라는 측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는다
▲환경을 위해 재활용한다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배터리 재활용의 경제적 가치가 굉장히 높다. 폐배터리 1톤짜리가 들어오면 중간재로 만들 수 있는 양이 400kg 이상은 나온다. 한쪽은 1.2%에서 시작하고 다른 한쪽은 40%로 시작한다면 배터리 재활용은 분명히 경제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비용도 낮출 수 있다. 전세계 전기차가 500만대 규모에서 5000만대 수준이 될 때도 전기차 구매자들이 가격 부담 차이가 없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리사이클링 부문은 본격화하진 않은 상황이다. 전기차 시장이 초기 단계인 까닭에 수명을 다한 배터리 규모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스크랩 위주로 재활용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앞으로도 10년간은 투자를 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재활용 생태계가 본격 가동되는 시기는 오는 2030년 이후부터로 예상한다. 그때부터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상황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면 꽤 앞선 준비를 하는 셈인데, 그럴 이유가 있는지
▲한국에서 전기차 폐차는 1년에 2000대 정도 나오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배터리를 그냥 쌓아둘 수 없다. 폐배터리를 얼마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기준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누군가는 안전하게 배터리를 회수하고, 안전하게 이송하고, 안전하게 해체해서 재활용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가 이뤄질 때까지 장기간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도 10년 이상 투자하는 것은 부담일 수도 있겠다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특정한 나라에만 있는 원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가령 코발트는 전세계 물량의 절반이 콩고에서만 나온다. 흑연은 중국에서 주로 채굴된다. 그리고 일부 국가에선 블랙 매스 반출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온 패배터리를 재활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니켈도 뽑고, 리튬도 뽑고, 코발트도 뽑게 된다. 그럼 더이상 중국의 흑연, 콩코의 코발트, 인도네시아의 니켈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나라 스스로 순환 경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 블랙매스 반출을 제한하면 글로벌 재활용 사업에는 차질이 예상되겠다
▲현지에서 최대한 리사이클링을 하는 방식, 현지에서 양극재까지 만드는 옵션 등도 설계해야 한다.
-폴란드에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지을 때 현지에서 환경 문제를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나
▲처음에 공장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지역 환경단체, 인근 주민, 지자체를 상대로 공정 콘셉트와 공정을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그러면서 주민 동의를 구했다. 그런 뒤에도 주민들이 다시 한번 공정 관련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난 6월 말에 설비를 준공했다. 이후에도 폴란드 정부에서 약속한 기준대로 시공됐는지 확인한다.
-재활용 관련 기술 개선도 필요한 것으로 안다. 배터리는 폭발 위험이 큰 탓에 어려움도 많다고 들었다
▲배터리 해체부터 난관이다. 완성차마다 배터리 구조가 다른 까닭에 배터리 재활용 공정을 자동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완성차들이 배터리를 재사용, 재활용하기 쉬운 구조로 차를 만들면 어떨까 한다. 포스코는 제철 기술과 접목하는 방안을 개발하고 있다. 배터리 팩이나 모듈을 고로에 넣고 녹여서 목적 광물을 뽑는 프로세스를 개발중이다. 어떤 회사들은 물속에 배터리를 넣어 방전시키거나 파쇄하는 과정을 거쳐 블랙 매스를 만든다. 그런 작업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수작업이 거의 없으니 더욱 안전하다.
-추가적인 해외 공장 설립 계획이 있나
▲있다. 다만 이를 현지 기업과 협력할지, 조인트벤처(JV)를 할지, 장기 계약을 체결할지, 직접 운영할 것인지 등은 케이스마다 다를 것이다.
-배터리 재활용은 철강 사업과 어떤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일단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기술 측면의 시너지가 발생한다. 두 번째는 철강 생산 인프라를 배터리 재활용에도 활용할 수 있다. 다음은 이런 사업을 통해 완성차 고객을 상대로 배터리 소재, 모터, 차체에 대한 토탈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배터리 재활용과 관련 제도적 개선점은 어떤 게 필요할까
▲재활용 관련 관계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환경부다. 어떤 건은 국토부, 어떤 건은 환경부가 담당하는 식이다. 통관, 환경 기준 등을 다루는 종합 전략이 하나 수립되면 좋겠다. 기존 기준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두번째는 앞으로 10년 이상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므로 관계 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도 필요하다.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통해 국내에서 니켈, 코발트, 리튬을 생산한다는 것은 전략 광물의 생산 체계를 내재화할 수 있는 뜻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굉장히 전략적인 투자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거에 반도체 산업을 육성할 때처럼 생태계가 안정화될 때까진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 이는 장기적 투자 부담이 큰 벤처기업을 위해서 더욱 필요하다.
-현재는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배터리를 수거하는데, 중장기적으로는 민간 주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현재는 정부 주도로 전기차 배터리를 수거하지만, 나중에 시장 규모가 커지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기술이 없는 폐차장에서 400kg짜리 400볼트 배터리를 해체할 수 있을까. 대기업이 자금과 기술을 지원하고 협회, 기관 등도 협의해 안전하게 해체하고 재활용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향후 목표는
▲재무적 목표를 숫자로 말하긴 어렵다. 니켈, 리튬 가격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매출액 목표를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포스코는 2030년 기준 6만톤 규모 니켈을 재활용 방식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통상 2조~3조원을 투자하는 니켈 광산 개발 프로젝트가 3만톤 규모다.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조단위 투자가 필요한 광산 2곳을 개발하는 셈이다. 전세계에서 자원을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국내에서 전기차 배터리 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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