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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언론 첫 인터뷰 'EU집행위 배터리 정책' 들어보니

  • 2022.09.20(화) 16:52

[친환경 전기차의 역설]
EC, '배터리 기본법' 제정 추진
"배터리 원재료 경쟁땐 재활용 중요사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위치한 벨기에 브뤼셀 베를레이몽 빌딩. /사진=백유진 기자

전기차는 '친환경'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면에 '환경오염' 요인이 있음에도 말이다. 배터리가 대량 폐기되면 환경문제가 야기돼서다. 이같은 친환경 전기차의 역설을 해결하려면 폐배터리 재활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에선 관련법 미비로 산업 활성화 조차 어렵다. 비즈니스워치는 국내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유럽·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방안을 집중 분석하고, 친환경 전기차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브뤼셀=김동훈 백유진 기자] "유럽연합(EU)은 앞으로 배터리 시장 관련 기본법을 만들 것입니다. 배터리의 재활용성, 재활용된 원재료 사용, 탄소 발자국, 성능 등 기술 분야 관련법을 제정해 기본법을 보완할 계획입니다."

배터리 재활용, 환경만을 위한 것일까

지난 8월25일(현지시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베를레이몽(Berlaymont) 빌딩에서 EC 정책담당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비즈니스워치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배터리 원재료 경쟁이 전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배터리 재활용은 진짜 중요하다"며 이같은 기본법 제정 계획을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이 주도하는 친환경 정책으로 전기차·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쏟아질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으면 오히려 친환경 정책이 의미를 잃을 수 있다는 시각에서 추진됐다. 이 문제와 관련, 국내 언론이 EC 관계자를 인터뷰 하기는 처음이다.

EC 관계자들은 "유럽에서 배터리 매립은 2006년 EC가 내놓은 '배터리 지침'에 따라 쭉 불법이었다"며 환경적 측면에서 배터리 재활용은 이들의 오래된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배터리 재활용 공장 설립으로 인해 오히려 환경이 파괴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환경 파괴는 배터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매립하면 일어나는 일"이라며 "재활용을 통해 리튬, 코발트, 니켈 등 배터리 원재료를 회수하는 것이 환경에 더 도움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유럽에서 배터리 재활용은 환경 문제를 넘어 경제 문제로 나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유럽연합 역내에는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 코발트, 니켈, 구리 등 광물이나 원료 등의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며 "유럽연합은 역내 시장에서 배터리를 재사용하고, 원재료를 회수해 재활용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고 했다.

향후 유럽연합은 배터리 원재료를 재활용하는 방안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오는 2030년부터 코발트 12%, 납 85%, 리튬 4%, 니켈 4%는 재활용한 원재료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2035년부터는 코발트 20%, 납 85%, 리튬 10%, 니켈 12% 등으로 기준을 강화할 예정이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늘어나는 규제들

이와 함께 EC는 제조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준수토록 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EC 관계자들은 "원재료의 조달과 제조, 교역이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해당 규제는 사회적, 환경적으로 용납되는 방식으로 제조, 조달했는지 기준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카드뮴과 납을 일정량 포함한 배터리에 대해 내년 7월부터 해당 화학 기호를 표기하도록 하고, 별도로 수거 처리를 하는지 명시하도록 할 예정이다. 오는 2027년부턴 배터리 수명과 충전 용량, 위험 물질 포함 여부, 수거 정보를 표기토록 하는 '라벨링'도 적용할 계획이다.

오는 2026년부턴 배터리 제조와 소비, 폐기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정보 등을 담은 '탄소 발자국' 라벨을 부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배터리 원재료의 공급망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배터리 처리와 재활용 정보 등을 담은 '배터리 여권'도 도입할 방침이다. 배터리 공급망에서 인권,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식별, 완화, 예방, 해결하려는 조치다.

EC 관계자는 "배터리를 제조할 때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하도록 하는 것도 정책 핵심 중 하나"라며 "스웨덴의 '노스볼트'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배터리를 대규모 생산한 곳인데, 이 공장 주변은 재생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고 했다.

노스볼트는 노르웨이 기업 '하이드로'와 합작사를 설립해 수력발전을 통한 에너지 공급 체계를 갖추고, 배터리 원재료의 재활용 시스템도 구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 셀 제조와 운송 과정에서도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EU 정책의 목표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뿐 아니라 재활용 산업 형성을 돕는 것"이라며 "따라서 민간투자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도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EU 역내 순환경제 구축도 목적

유럽의 배터리 시장에 대한 관심, 재활용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2017년 결성된 '유럽 배터리 동맹'(European Battery Alliance)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배터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EC 주도로 이 동맹을 결성하고, 역내 배터리 생산과 유통, 재활용에 이르는 밸류체인 구축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유럽에선 전기차가 약 114만대 팔렸다. 유럽은 같은 기간 전기차 247만대가 팔린 중국, 51만대 판매된 미국과 함께 세계 3대 전기차 시장인 셈. 하지만 같은 기간 전세계 전기차 판매 기업 1~3위는 BYD(중국), 테슬라(미국), 상하이자동차(중국), 배터리 판매 기업 1~3위는  CATL(중국), LG에너지솔루션(한국), BYD 등으로 중국, 미국, 한국 브랜드가 장악한 상태다.

EC 관계자는 "2017년 배터리 동맹 결성 당시 EC는 배터리가 21세기의 핵심 기술이 될 것이 분명하고, EU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한 축이 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며 "그러나 유럽 역내 배터리 생산 규모가 당시엔 매우 작았기 때문에 유럽연합과 회원국, 산업계가 함께 행동한 것이 유럽 배터리 동맹"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배터리 동맹의 실행 계획은 EU 역내 배터리 제조뿐 아니라 재사용, 원재료 재활용 등 배터리 시장 밸류체인 전체에 걸쳐 있는데, 이는 엄격한 기준과 윤리적 방식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콩고의 코발트 채굴 과정 등 안전성이 문제되는 경우가 이런 문제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베를레이몽(Berlaymont) 빌딩 앞에서 유럽연합(EU)기가 흔들리고 있다./영상=백유진 기자

글로벌 배터리 원재료 경쟁이 핵심 요인

배터리 소재 재활용은 리튬, 니켈,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소재를 보유한 일부 국가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대책이기도 하다. 중국은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국인 콩고에 대규모로 투자해 콩고 코발트 광산의 약 70%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튬 매장량의 80%가량도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 중국 등 4개국에 집중됐고, 니켈의 경우 비교적 고루 분포됐으나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불안에 대한 우려로 톤당 가격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가격 변동성이 컸다. 

이처럼 배터리 원재료를 재활용하는 방안의 필요성은 유럽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원재료 확보가 원활하지 않고 원재료 가격 탓에 비용이 커져 결과적으로 소비자 부담이 높아진다면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세계 배터리 시장은 이같은 원재료의 과점 상태에 따른 공급 불안정성, 가격 변동성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파악된다. 원재료 재활용 체계를 갖추는 것이 주요국 정부는 물론 관련 업계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EC 관계자들은 "유럽연합뿐 아니라 회원국 정책의 핵심은 순환경제의 구축, 즉 모든 것을 재사용한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최대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배터리를 제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라며 "전세계적으로 배터리 원재료 경쟁이 심화되면서 재활용은 진짜 중요한 사안이 됐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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