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자사주 소각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호반그룹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LS그룹과 한진칼이 나란히 자사주 카드를 꺼냈다. LS는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하고, 한진칼은 자사주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한다.
두 방식 모두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가 우호세력에 넘어가면서 의결권이 되살아나, 경영권 방어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소각하는 방향으로 바꾸자는 정책적 흐름과는 역행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지난 16일 LS는 이사회를 열고 교환사채 발행과 자사주 처분 안건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자사주로 교환해주는 650억원 규모 교환사채를 대한항공을 상대로 발행하기 위해서다. LS는 오는 9월 만기가 돌아오는 산업은행 차입금 1005억원을 갚기 위해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하지만 교환대상 주식이 자사주이고, 사채 인수자가 대한항공이란 점을 보면 '경영권 방어'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선 대한항공을 LS의 우군으로 판단하고 있다. LS는 호반과 해저케이블 기술을 탈취 분쟁을 벌이고 있고, 대한항공의 지주사 한진칼은 호반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18.46% 탓에 불편한 관계다. LS와 한진칼은 지난달 업무협약도 맺었는데 '내 적의 적은 친구'라는 관계가 형성되는 기류다.
보통 자사주를 우군에게 매각해 의결권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LS는 교환사채를 활용하는 구조를 짰다. 향후 원리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한항공 입장에선 자사주 직접 매입보다는 부담이 덜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진칼은 지난 15일 이사회를 통해 '자사주 출연 승인' 안건을 승인했다. 지난 2일 설립한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자사주 44만44주(0.66%)를 출연하기 위해서다. 회사 측은 직원 복지 향상을 위해 자사주를 출연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경영권 방어 목적이 숨어 있다고 보고 있다. 호반은 작년 3월부터 14개월간 한진칼 67만5974주(1.02%)를 479억원에 사들이며, 보유지분을 18.46%로 늘렸다.
현재 한진칼 지배구조는 조원태 회장 일가(20.13%)를 중심으로 △미국 델타 항공 14.9% △산업은행 10.58% 등이 우호지분으로 분류되지만, 대주주와 호반의 지분 차이가 1%p(포인트)대로 좁혀졌다 점은 부담이다. 이 가운데 한진칼이 보유한 자사주 일부를 확실한 우군인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면서 자사주 의결권이 되살아난 것이다.
경영권 방어에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은 한국 증시가 저평가받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다. 보통 해외에선 자사주를 소각해 주당 가치를 올리는 주주환원책으로 쓰고 있다. 미국과 독일, 영국 등 선진국은 자사주에 아무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소각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재명 후보도 '자사주 소각 제도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후보는 최근 주식시장 활성화 공약을 통해 기업지배구조 투명성 향상 방안 중 하나로 상장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하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