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친환경'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면에 '환경오염' 요인이 있음에도 말이다. 배터리가 대량 폐기되면 환경문제가 야기돼서다. 이같은 친환경 전기차의 역설을 해결하려면 폐배터리 재활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에선 관련법 미비로 산업 활성화 조차 어렵다. 비즈니스워치는 국내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유럽·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방안을 집중 분석하고, 친환경 전기차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
#"테슬라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독특한 위상과 정체성이 있어요.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혁신, 친환경이란 정체성이죠. 예전에는 성공한 엔지니어가 벤츠·BMW를 샀다면 요즘엔 테슬라. 내연기관차 주도권을 잃은 미국에서 테슬라가 탄생한 것도 한 몫 했어요. 전기차로 바뀌는 분위기, 확실합니다."(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 관계자)
#"이 지역은 암, 선천적 장애, 생식계통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진 화학 물질이 있습니다."(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테슬라 프리몬트 공장 앞 경고 문구). "배터리 원재료 리튬은 폐에, 니켈은 알레르기·간에, 카드뮴은 암·신장·뼈에, 납은 신경발달·신장·심혈관·생식계통에 각각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세계보건기구)
전기차 급성장…배터리 공장도 지속 확대
요즘 전기차는 핫하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환경 정책을 점점 강화하고,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어서다.
미국 정부는 지난 5월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30억달러(3조8000억원)의 인프라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를 목표로 오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계획했다. 또 배터리 관련 '기본법'(basic act) 제정을 추진하는 등 각종 법안을 쏟아낼 방침이다.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완성차는 대체로 오는 2030년부터 50% 이상의 신차를 전기차로 바꾼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들은 중국 CATL, 한국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세계적 배터리 제조사들과 합작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안정적 공급망을 갖추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EC 관계자는 "모든 EU 회원국이 지지하는 정책이 탄소 배출 감축이고, 이에 따라 전기차를 더 많이 내놓게 하려는 대대적 움직임이 있다"며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려면 결국 전기가 해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순수 전기차) 판매량은 435만대로 전년보다 65% 성장했다. 오는 2030년 전기차 판매 규모는 5489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내연 기관차 판매량 대비 57% 수준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다.
배터리 제조사들 역시 투자를 확대하며 시장 성장에 대응하고 있다. SK온은 헝가리 이반차에 3조3100억원을 투자해 3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CATL은 헝가리에 연간 생산능력 100기가와트시(GWh)에 달하는 공장을 짓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투자액은 73억4000만유로(10조1000억원)에 이른다.
김두홍 SK온 유럽경영관리 유닛 PL은 "전기차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대비하면 배터리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여러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계속하고 있어 전기차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독성 물질 어쩌나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라 폐배터리 방출량도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는 전세계 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가 2020년 111억달러(약 14조2600억원)에서 2030년 666억달러(약 85조5800억원)로 6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활용 시장 성장은 전기차의 친환경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러나 폐배터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폐배터리 재활용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폐배터리 방전→해체→열처리→파분쇄 과정을 거쳐 블랙매스(검은색가루)를 만드는 것까지가 '전처리'다. 이 블랙매스에서 니켈, 코발트 등 핵심 원재료를 추출하는 것이 '후처리' 과정이다.
후처리 단계는 황산에 블랙매스를 녹인 뒤 원재료 특성에 반응하는 다른 물질을 넣어 필요한 것만 걸러내는 공정이 있는데, 여기서 주의가 필요하다.
설거지할 때 깨끗한 그릇만 남기려면 물을 많이 써야 하고 이불을 털면 먼지가 날려 폐에 들어오듯, 원재료만 뽑아내는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다양한 화학 물질이 새롭게 발생하고 오폐수도 나온다. 폐배터리는 그릇이나 이불과는 다른 화학 제품이다. 환경 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중소기업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후처리 공정을 포함한 공장을 건설하지 못하고 블랙매스만 생산한다고 밝히는 이유도 현지 환경 규제와 시민단체의 반대 때문이다. 전처리 공장을 지을 때도 규제 탓에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포스코, 성일하이텍이 이런 경험을 했다.
기술적 한계로 모든 원재료를 추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처리 공정에서 유실되는 원재료, 후처리에서 추출하지 못하는 원재료의 규모는 해당 업체가 정확히 밝히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재활용되지 않는 물질의 규모를 알 수 없을뿐 만 아니라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코트라 상하이무역관은 중국 광파증권 보고서를 인용, 배터리 소재인 양극재는 중금속을 포함하고 있어 부적절하게 회수·폐기하면 중금속으로 인한 토양 오염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전해액 구성 성분 자체나 전환 생성물은 유해 물질로, 일부 물질은 부식성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육불화인산리튬(Lithium Hexafluorophosphate)은 물과 반응하면 염화수소 물질이 생겨 환경오염을 초래한다.
폐배터리가 제대로 재활용하지 않고 폐기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트라 멜버른무역관에 따르면 현재 호주에선 폐배터리의 10%만 재활용되며 나머지 90%는 쓰레기 매립지로 간다.
김홍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순환자원연구센터장은 "배터리 셀에서 재활용하는 비중이 100%는 아니다"며 "재활용 비중이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60%라면 나머지 40%도 재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시장에선 니켈, 코발트와 같이 돈 되는 금속을 주로 재활용하는데 케이스, 기판, 냉각팬, 전기 연결선 같은 것들도 재사용 또는 재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배터리는 전기를 품은 특성 탓에 화재·폭발 위험이 있음에도 재활용 공정을 자동화하기도 어렵다. 완성차 브랜드 배터리 대부분이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만큼 안전 위험뿐 아니라 인체 유해성이 늘 도사린다.
국내의 경우 정부 주도로 폐배터리를 관리하고 있으나, 앞으로가 문제다. 현재는 환경부가 설치한 미래 폐자원 거점수거센터에 폐배터리가 의무적으로 수거돼 검사·보관·판매가 이뤄지는 구조인데, 2021년 이후 등록된 전기차부턴 민간 업체도 폐배터리를 처리할 수 있다.
이는 시장에 기회가 열리는 셈이기도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업체들이 난립하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 테슬라 공장 입구에 '인체에 해로운 화학 물질이 있다'는 경고 문구도 유심히 봐야 한다. 배터리 자체에 유해 물질이 있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소 'CSIRO'의 조사를 보면 배터리는 제조 과정에서 여러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데 신체 접촉시 독성으로 인한 호흡곤란,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등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내놓은 '어린이와 전자 폐기물 처리장'(Children and Digital Dumpsites)' 보고서에도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된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에 따르면 배터리에서 배출되는 독성 물질은 납, 카드뮴, 니켈, 리튬 등이 있다. 리튬은 폐, 니켈은 알레르기·간, 카드뮴은 암·신장·뼈, 납은 신경발달·신장·심혈관·생식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WHO의 설명이다.
WHO는 "특정 물질의 노출은 즉각 어린이 건강과 발달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됐을 때 만성적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전기차의 경우 현재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전기차와 같은 신생 전자제품에서 파생되는 전자 폐기물의 영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폐배터리를 재활용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재활용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철원 성일하이텍 전무는 "재활용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가 더 심해진다"며 "전문 업체에서 안전하게 재활용을 해야 환경 문제도 해결하고 자원 회수도 가능하다. 이를 무단 폐기하면 배터리의 충전 상태를 확인할 수 없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유독 가스 방출로 환경 오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성 측면에서도 재활용 필요
일반적 전자 제품 폐기물 관련 피해는 선진국보단 후진국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WHO는 "전자 폐기물이 중·저소득 국가에서 증가하는 반면, 선진국의 폐기물은 자국의 재활용법을 피할 목적으로 해외로 운송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배터리에서 니켈, 코발트 등 값비싼 배터리 원재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원재료의 글로벌 수요는 전기차 시장 성장과 함께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SNE리서치를 보면 리튬 수요만 지난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2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 관계자는 "공장 시설과 소비 지역의 위치는 환경과 윤리를 떠나 임대료, 인건비 등 경제적 논리에 좌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런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것을 보면 자국 중심주의로 돌아가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 광산에서 원재료를 찾는 것과 비교하면 재활용의 경제성이 더욱 부각된다.
석준호 포스코홀딩스 이차전지소재사업담당 리더는 "니켈은 땅속에 묻혀있을 때 함량이 1.2%밖에 안 되는데, 이는 쉽게 말해 1%를 캐기 위해 99%를 쌓아야 하는 셈"이라며 "전세계 전기차 비즈니스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재활용을 통한 원료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배터리 원재료를 일부 국가가 과점하고 있는 실정을 고려하면 재활용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실제로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국인 콩고의 코발트 광산 약 70%는 중국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튬 매장량의 80%가량도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 중국 등 4개국에 집중됐다.
니켈의 경우 비교적 고루 분포됐으나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불안에 대한 우려로 톤당 가격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가격 변동성이 컸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배터리 원재료 경쟁이 심화되면서 재활용은 중요한 사안이 됐다"며 "모든 것을 재사용해 최대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배터리를 제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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