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친환경'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면에 '환경오염' 요인이 있음에도 말이다. 배터리가 대량 폐기되면 환경문제가 야기돼서다. 이같은 친환경 전기차의 역설을 해결하려면 폐배터리 재활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에선 관련법 미비로 산업 활성화 조차 어렵다. 비즈니스워치는 국내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유럽·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방안을 집중 분석하고, 친환경 전기차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브뤼셀=김동훈 백유진 기자] 유럽연합(EU)이 배터리 기본법(basic act) 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부터 재사용, 원재료 재활용에 이르는 해당 산업 모든 단계에 대응하는 법안을 만들어 EU 역내에서 '배터리 순환경제'를 구축한다는 복안이다. ▷관련 기사: 국내언론 첫 인터뷰 'EU집행위 배터리 정책' 들어보니
EU 역내에서 니켈, 코발트, 리튬 등을 재활용하면 배터리 원재료 공급 불안과 가격 불안정성을 해소해 전기차·배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전기차·배터리·재활용 공장을 EU 역내에서 운영중인 한국 기업들은 이같은 정책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관심이다.
예컨대 배터리 원재료 재활용을 위해 생산하는 중간 가공품인 '블랙매스'와 관련, EU가 앞으로 반출 금지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어서다. 중국은 이미 블랙매스의 반출을 금지하면서 자국내 순환경제 구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비즈니스워치는 이와 관련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베를레이몽(Berlaymont) 빌딩을 찾아 EC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EU, 16년된 배터리 규제 수정…기본법 도입 밝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관계자들은 우선 배터리 규제 변화에 대해 "EU의 배터리 관련 법적 규제는 2006년에 수립됐다"며 "16년이 지나면서 시장과 기술의 변화에 따른 업데이트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했다.
'탄소배출제로'라는 정책의 큰 방향성은 변함이 없으나, 기술 발달에 따른 변화가 야기하는 가까운 미래를 위해 예측 가능한 법안을 갖추겠다는 얘기다.
특히 그는 "구체적 내용을 말할 수 없지만 앞으로 수개월에 걸쳐 배터리 시장 관련 상위법, 즉 기본법(basic act)을 도입할 것"이라며 "규제를 안정화해 EU 역내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배터리 기술 관련 법안을 추가해 기본법을 보완한다는 구상이다.
EC가 내놓을 법안 가운데 국내 배터리 소재 재활용 기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사안도 있다.
유럽이 '블랙매스'의 반출을 금지할 것이란 소문이 국내 업계에 도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블랙매스는 배터리를 분쇄해 검은색 가루 형태로 만든 중간 가공품을 뜻한다. 블랙매스에서 니켈,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원재료를 추출할 수 있다.
국내 다양한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한 분야이기도 하다. 지난달 말 포스코홀딩스는 블랙매스를 만드는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폴란드 브젝돌니 지역에 준공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 GS에너지, 성일하이텍 등이 고객사, 협력사다. 그런데 EU가 블랙매스의 역내 반출을 금지하면 이들 사업은 EU 역내에서만 가능한 셈이다. 사업 규모,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
이에 대해 EC 관계자들은 "EU 시장에서 생산돼 폐기되는 배터리는 EU 역내에서 재활용되도록 하는 게 관련 규제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블랙매스의 역외 반출 금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며 "만약 EU 역외에서 배터리가 재활용된다고 해도 역내와 마찬가지의 조건에서 재활용되도록 법적 원칙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이 완성되기 전인 까닭에 벌써부터 블랙매스의 완전 수출 금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EU 역내 재활용을 원칙으로 하되, 역외에서 재활용되는 경우도 EU가 정한 기준에 따르도록 관리·감독을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EC는 역내외 기업에 대한 차별도 없다고 했다. 이들은 "EU 역내외 모든 경제 주체에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EU 회원국별로 재활용 공장 건설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지역별 수준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도 국내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기업들은 폴란드·헝가리 정부 등 개별국 지원 조건에 따라 공장 건설을 결정하고 있고, 이에 대한 지원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일 경우 EU의 승인 과정을 거친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 공개하라"
배터리 재활용 시장 활성화를 제한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히는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 관련 정책 변화도 눈길을 끈다.
BMS는 배터리 전압과 온도 등 이상 여부를 감지하는 시스템이다. BMS는 완성차·배터리 제조사 고유의 기술로 구현됐고, 이에 따라 이들은 BMS 외부 공개를 꺼린다. 그 결과로 배터리를 재사용·재활용을 위한 검사와 진단도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심지어 국내에선 폐배터리를 검사·진단하는 비용이 폐배터리의 가치에 육박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배터리 재활용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현저히 떨어진다.
EC 관계자는 이와 관련 "유럽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배터리 제조사, 완성차 기업과 논의 끝에 BMS를 공개하는 조치가 공익을 위한 일이라는 점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며 "합법적·사업적 이해 관계가 있는 제3자가 BMS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같이 마련된 새로운 규정은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EC 측은 배터리 재활용 시장의 주체는 '민간'이므로 규제를 서둘러 도입해 민간투자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내놨다. 달리 말해 규제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얘기다.
EC 관계자는 "새로운 규제가 도입될 때까진 시장이 멈춰 있을지도 모른다"며 "유럽연합이 규제를 최대한 빨리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흔히 신사업 분야에선 구체적 규제가 존재하지 않아 향후 어떤 규제가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라 에너지 공급 차질·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 배터리 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단기적인 문제이길 바란다"며 "그러나 장기적으로 탄소배출 제로가 우리의 미래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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