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 장비, 부품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부품은 소재와 장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졌다. 주로 후공정에 사용되면서 소재나 장비에 비해 '판'을 바꾸기는 어려운 구조이다보니 투자도, 관심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이런 흐름은 최근 확연히 바뀌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돌풍으로 인해 이 공정에 활용되는 부품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다만 HBM을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것과 달리 HBM에 들어가는 부품의 경우 일본과 대만 등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게 아쉬운 현실이다.

초라했던 마지막 관문 '부품'
반도체는 '장비'를 가지고 '소재'를 가공해 칩을 만들고 이 칩을 '부품'을 통해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이 중 칩을 조립하는 과정에서의 핵심이 반도체 '부품'이다. 다시 말해 칩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 사용되는 게 '부품'이란 얘기다.
반도체 공정은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뉘는데 웨이퍼 위에 회로를 그리고 웨이퍼 제작까지 진행되는 과정이 전공정, 웨이퍼에서 그려진 회로들을 하나씩 자르고 테스트해 외부와 접촉할 선을 연결, 패키징한 후 최종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후공정이다.
반도체 부품은 대부분 후공정에 활용됐기 때문에 과거 반도체 산업의 기초 경쟁력을 가르는 '전공정'보다는 주목도가 덜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반도체 부품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비용과 시간 투자 없이 일정 수준의 궤도까지는 올릴 수 있었고 경쟁이 크지 않았다"라며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이 크지 않다보니 최종 반도체 생산 기업이 직접 다루거나 오래된 협력사와의 협력을 이어온 경향이 컸다"라고 설명했다.
또 'HBM' 이야?
최근에는 '판'이 바뀌는 모습이다. HBM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다. HBM은 제조 공정의 특성상 '후공정'에서도 '전공정' 못지 않게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HBM은 패키징이라는 이른바 포장 공정 등 후공정역시 상당한 기술력을 갖춰야 높은 수율을 기대할 수 있다"라며 "따라서 HBM에 따로 쓰이는 부품 역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HBM과 함께 중요성이 확대된 반도체 부품은 크게 두가지다. 패키지 기판과 인터포저다. 이 중 인터포저는 삼성전자, TSMC 등 파운드리 기업이 직접 생산한다. 반도체 칩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인터포저 역시 맞춤형으로 제작돼야 하기 때문에 파운드리 등이 직접 제작하는 게 효율적이다.
패키지 기판은 반도체 칩과 시스템 보드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부품이다. 인터포저는 여러 칩을 하나로 묶을 때 사용된다.
반면 패키지 기판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패키지 기판을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제조 설비가 반도체 파운드리 등이 보유하고 있는 설비 기반이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전문 기업이 별도로 경쟁력을 키우는 게 산업 구조 상 유리하다.
이 관계자는 "HBM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에 사용되는 패키지 기판은 높은 기술력을 갖추지 못하면 반도체의 최종 수율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근 패키지 기판에서 경쟁력을 갖춘 협력사를 찾는 것도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부품도 갈 길 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우리나라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위상이 높지만 반도체 소재, 장비와 마찬가지로 부품 역시 세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도체 부품 중 리드 프레임, 본딩 와이어 등은 반도체 첨단 공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아 차별화 요소가 작다. 결국 기술력을 뽑내야 하는 부품이 패키지 기판인데 이는 외국 기업들에 비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은 높은 편이 아니다.
리드 프레임은 직접회로(다이)에서 외부로 신호를 전달하는 칩 패키지 내부의 금속 구조이며 본딩 와이어는 반도체 칩과 리드 프레임 사이를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부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패키지 기판을 만들고 있는 곳은 LG이노텍, 심텍, 대덕전자 등이 있다. 이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이 대만의 유니마이크론, 일본의 이비덴 및 신코전기공업 등이다.
반도체 부품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기업들은 과거 PCB 기판을 다루던 시절부터 이 사업에 대한 투자 등을 지속해온 반면 우리나라는 다소 진입이 늦었다"며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지원이 확대됐을 때에도 전공정 위주로 투자 혹은 지원이 이뤄지다 보니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다소 뒤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정부는 최근 내놓은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에서 보조금 확대와 금융 지원 등 부품에 대한 지원 확대를 포함시켰고 이를 통해 부품 역시 반전을 쓸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평가다. 반도체의 성능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유리기판 분야의 경우 기대를 받고 있다.
유리기판은 종전에 사용되는 패키지 기판 소재를 유리로 바꾼 것으로 기존 기판보다 더 좋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 부품이다. 아직은 가격이 매우 비싼데다가 양산이 이제 막 시작되긴 했지만 반도체 부품 시장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현재 삼성전기, SKC, LG이노텍 등 국내 기업과 인텔 등이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앞선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HBM 시장을 이끌고 있는 만큼 반도체 부품 역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매우 좋은 환경이 마련돼 있다"라며 "지금은 세계 탑티어 수준이 아닌 것은 맞지만 향후에는 이같은 평가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인데 특히 유리기판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