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백유진 기자] 국내 배터리 업계가 전세계적 자국 중심 정책 흐름에 따라 현지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을 필두로 한 배터리 제조사부터 배터리 재활용 기업까지 공급망 확보와 해외 거점 마련에 힘쓰고 있다.
미국·EU 현지화 속도, 비용 증가는 우려
정혁성 LG에너지솔루션 상무는 24일 경북 포항시 포항공과대학교 국제관에서 열린 '배터리 선도도시 포항 국제컨퍼런스 2022'에서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현지화를 더 강화하려는 분위기"라며 "현재 소재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 충족해야 관세를 면제해주는 규정을 EU(유럽연합) 의원들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최근 전기차 보조금 조건을 담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발표했다. 니켈,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을 북미 혹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추출·처리·가공하거나 재활용한 것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비율에 따라 보조금 규모가 결정된다. 내년까지는 40%를 충족하면 되지만, 2025년에는 60%, 2027년 이후에는 80%까지 높아진다.
유럽 역시 IRA와 유사한 원자재법(RMA) 시행을 추진 중이다. 아직 내용은 구체화 되지 않았지만 핵심 원자재가 역내에서 밸류체인을 형성할 수 있도록 현지화를 유도하는 법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현지화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자 LG에너지솔루션은 시장 내 여러 핵심 파트너 업체와 적극적으로 파트너십을 맺는 등 현지화 준비를 지속하고 있다.
먼저 내년 시행을 앞둔 미국 IRA에 발맞춰 북미 역내 배터리 핵심 소재·광물 조달 비중을 늘려 핵심 광물을 현지화한다는 전략이다. 향후 5년 내 북미 역내에서 양극재 63%, 음극재 42%, 전해액 100%, 핵심광물 72%를 현지화하는 것이 목표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배터리사 중 현지화 전략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이에 따른 비용 증가에 대한 우려감도 드러냈다.
정 상무는 "심화된 규제 때문에 결국 공급망을 현지에 갖춰야 하고, 이는 결국 투자로 연결돼 비용이 올라가 또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재활용 기업도 글로벌 진출 노려
배터리 재활용 기업들도 현지화 전략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아직 초창기라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크랩(불량품)'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현재 배터리 재활용 업체들은 향후 3~5년 후 폐배터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 스크랩 물량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다.
때문에 배터리 재활용 업체 역시 배터리 제조사가 자리한 지역 근처에 글로벌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 자국 중심 정책에 따라 스크랩의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도 현지화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형덕 성일하이텍 이사는 "이전에 비해 스크랩 이동에 대한 규제도 점차 타이트해지고 있는 분위기"라며 "이를 깨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재활용 기업인 성일하이텍은 오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2000만달러를 투자해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센터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인디애나주에도 리사이클링 센터 설립을 검토 중이다. 미국 조지아주와 인디애나주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국내 배터리 제조사의 진출이 활발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쏟아져 나올 스크랩 물량을 선점해 현지에서 처리하겠다는 전략이다.
50여년간의 제련소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폐배터리 시장에 뛰어든 영풍도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심태준 영풍 그린사업실 전무는 "5년 안에 미국 혹은 유럽 지역에 재활용 공장 설립 계획을 갖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쯤 지역을 구체화해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