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수익 확대를 위해 의료기기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의료기기 사업은 제품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 등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시장 진입이 어려운 분야다. 그동안 다수 제약기업들이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의료기기 사업에 뛰어들긴 했지만 좀처럼 장벽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조직 재정비, 제품 라인업 강화, 의료기기 업체 투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료기기 사업을 키우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는 최근 의료기기 조직을 새로 정비했다. 한미사이언스의 의료기기 등 헬스케업 사업부문은 합병 전 한미헬스케어의 대표를 맡았던 임종훈 사장이 총괄을 맡는다. 의료기기 사업은 한미헬스케어의 주력 사업으로, 지난해 한미헬스케어의 전체 매출액 1047억원 중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표 제품으로는 수술시 장기나 신경이 서로 달라붙는 현상을 막아주는 유착방지제 '가딕스', 수술용 지혈제 '써지가드', 수술 후 피부봉합 치료재료 '리퀴밴드' 등이 있으며 총 33개의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의료기기 사업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300억원 대로. 경쟁력 있는 제품 발굴과 영업·마케팅 확대를 통해 향후 매출 500억원대 이상으로 의료기기 사업부문을 키울 계획이다.
유한양행과 종근당은 의료기기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의료기기 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유한양행은 지난 4월 웨어러블 의료기기 전문 스타트업 '휴이노'와 심전도 모니터링 AI 솔루션 의료기기 '메모패치'에 대한 국내 판권 계약을 맺었다. 메모패치는 최대 14일까지 측정한 심전도 데이터를 인공지능 기술로 분석해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하는 의료기기로, 심전도 측정, 분석 및 부정맥 등 심혈관 질환의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
앞서 유한양행은 의료기기 사업 확대를 위해 지난 2020년에만 휴이노에 80억원을 투자했고 지난해에도 휴이노의 시리즈C 투자에 참여해 50억원을 추가 투자한 바 있다. 또 유한양행은 지난 7월 휴이노가 지난 5월 설립한 자회사 휴이노에임에도 10억원의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휴이노에임은 인공지능 기반의 임상의사결정시스템(CDSS) 및 신속 대응 시스템(RRS) 구현 사업을 영위하는 휴이노의 100% 자회사다.
종근당도 지난 2월부터 자사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웨어러블 의료기기 및 플랫폼 전문 스마트업 '스카이랩스'의 반지형 웨어러블 의료기기 '카트원 플러스(CART-I PLUS)' 판매에 돌입했다. 카트원 플러스는 원격 모니터링을 위한 의료기기로 AI 기반 모니터링 플랫폼을 제공하는 원격환자모니터링(RPM) 디바이스다. 반지처럼 착용하면 24시간 생체신호를 측정할 수 있으며 기존 심전도 및 맥박수 측정 기능에 산소포화도 측정 기능이 추가됐다. 종근당은 스카이랩스에 지난 2020년 25억원의 브릿지 투자를 진행하고 '카트원 플러스'의 국내 판권 계약을 맺었다.
동아에스티도 올해 의료기기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의료기기 판매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 9월 의료기기 회사 '제이에스온'과 고주파 온열 장비 'Hiper 330'의 국내 독점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기기는 고주파 파동 에너지를 인체에 가해 각종 근골격계 염증과 통증을 완화하는 의료기기다.
아울러 지난 7월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메쥬’와 심전도 원격 모니터링 플랫폼 '하이카디', '하이카디플러스', '라이브스튜디오' 등 3종 제품에 대한 국내 판권 계약을 맺었다. 동아에스티는 의료기기 사업을 확대하면서 올해 3분기에 의료기기·진단 부문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이밖에도 의료기기 전문 자회사를 통해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제약사도 있다. GC녹십자는 GC녹십자엠에스를 통해 자체개발 당화혈색소 측정기기, 콜레스테롤 측정기기 등을 판매하고 있다. 동국제약은 동국생명과학을 통해 진단장비 및 의료기기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지난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루닛'과 협력을 맺고 영상의학 소프트웨어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JW홀딩스는 계열사 JW메디칼을 통해 영상진단 의료기기 사업을, JW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진단기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JW바이오사이언스의 경우 지난해 싱가포르 소재 분자진단 전문기업 원바이오메드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면서 기존에 면역화학과 임상화학 진단에서 분자 진단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다.
의료기기는 인지도와 브랜드파워가 있는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기존 제품을 계속 사용하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어 시장 진입장벽이 높다. 그럼에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의료기기 사업에 진출 및 강화하는 이유는 시장성과 경쟁력 때문이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지난 2020년 7조5316억원으로 매년 평균 5.1%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의료기기는 주요 수요처가 전문의약품과 같은 병·의원이고, 의료기기를 통한 진단이 의약품으로 처방이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같은 연계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보수적인 시장 분위기로 제약사들이 자체 개발하기 보다는 의료기기 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제품의 판권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의료기기는 일단 시장 진입에 성공하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매출이 보장된 시장"이라며 "인지도와 브랜드파워가 있는 제품들이 시장을 잡고 있는 만큼 개발 보다는 기존 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제품 라인업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