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협업을 위해 자기주식(자사주)을 교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회사 금고에 보관된 자사주를 협업할 상대 회사에 처분하는 방식으로, 자사주를 활용하면 협업을 위한 추가 투자재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가안정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원래 자사주 취득 목적과 다른 이유로 자사주가 대거 시장에 다시 풀린다는 점은 소액주주들에게 달가운 소식이 아닐 수 있다.
늘어나는 자사주 '지분 혈맹'
지난 23일 LG화학과 한화, 고려아연은 일제히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교환 안건을 승인했다. LG화학과 고려아연이, 한화와 고려아연이 각각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사업제휴를 위해 자사주를 교환한 것이다.
자사주 맞교환은 각자 보유한 자사주를 시간외매매를 통해 처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화가 보유한 자사주 543만6380주(7.25%)를 고려아연에 1568억원에 파는 동시에 고려아연이 보유한 자사주 23만8358주(1.2%)를 1568억원에 사는 것이다. LG화학도 방식은 똑같다. LG화학 자사주 36만7529주(0.52%)와 고려아연 자사주 38만4897주(1.94%)를 서로 2525억원에 사고 판다.
자사주를 활용한 사업협력은 최근 늘고 있다. 지난 10월 현대차그룹과 KT는 7459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교환했다.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네이버는 2017년 미래에셋대우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2020년 CJ그룹과 6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각각 교환했다.
주주환원정책이라더니…
자사주는 말 그대로 한 회사가 보유한 자기 회사주식을 말한다. 기업이 배당가능이익 한도에서 자유롭게 자사주를 취득하도록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자사주를 취득하는 목적은 대부분이 주가안정과 주주환원이다. 자사주를 매입한 만큼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이 높아지는 원리다. 자사주엔 의결권도 없다.
지난 9월 기준 고려아연의 전체 발행 주식수 중 자사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6%(119만5760) 수준이다. 한화와 LG화학의 자사주 비중은 각각 8.8%(656만8817주), 0.5%(36만7529주) 가량이다. 고려아연과 한화는 이번 맞교환을 통해 대규모 자사주 대부분을 처분하게 됐다. LG화학은 자사주 전량을 맞교환했다.
이번 맞교환으로 회사 금고에 보관중인 자사주가 시장에 다시 대거 풀리게 된다. LG화학 656만8817주와 한화 543만6380주다. 특히 고려아연은 지분 맞교환과 함께 금융회사와 국제원자재거래회사에 처분하는 자사주까지 포함하면 자사주 전량 119만5760주(6%)이 시장에 다시 풀린다. 2~3년 가량 의무보유기간이 있지만, 맞교환되는 자사주는 유통주식수에 다시 포함되니 주당순이익은 떨어진다.
시장에 주식이 대거 풀리면서 주가는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5%대 급락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한화 주가도 소폭(1%대) 떨어졌다. 반면 처분된 자사주 물량이 많지 않은 LG화학은 2%대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국내 상장기업의 자기주식 처분 실태' 보고서를 보면 2020년 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처분된 자사주 3억5000만주 중 2억2123만주(63%)가 '운영자금 확보 및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서였다. 제휴·인수합병(4904만주), 임직원보상(4410만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주주환원을 위해 처분된 자사주는 911만주에 불과했다.
이 보고서에서 강소현 연구위원은 "전략적 제휴나 기업 합병 과정에서 자기주식이 경영진이나 지배주주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될 경우 소수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