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금호석유화학이 98만1532주의 자기주식(자사주)을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6개월간 매입한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전량을 태워 없애겠다는 뜻이다. 지난 3월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할 당시 밝힌 자사주 취득 목적(소각용)을 곧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번달 현대모비스도 708억원 규모의 자사주(28만8000주)를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기준 보유중인 자사주(352만5735주)의 8.1% 수준이다.
잇단 자사주 소각
최근 기업 스스로 자사주를 소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사주는 말 그대로 회사가 매입한 자기회사 주식으로, 시장에 거래되는 주식수를 줄여 주가를 부양하는 주주환원정책 중 하나다. 하지만 매입한 자사주를 주가부양을 위해 소각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6월 발간된 자본시장연구원의 '국내 상장기업의 자기주식 처분 실태'를 보면 2020년 1월부터 2022년 5월 자기주식 취득 목적은 90% 이상이 주주환원이었지만 자사주 대부분은 임직원 보상과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처분됐다. 회사 분할과정에서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전략적 제휴를 위한 교환용으로도 활용됐다.
언젠간 다시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불신이 시장에 뿌리내린 가운데, 일부 기업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지난달 SK㈜도 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히면서 소각 시점을 못 박았다. 6개월간 시장에서 자사주를 사들인 뒤 이사회 승인을 거쳐 전량 소각한다는 내용이다. '6개월간 자사주 매입 뒤 소각'하는 금호석유화학 방식과 같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달 18년 만에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발행주식의 3%(261만5605주) 수준으로 시가로 보면 약 6722억원에 이른다. 포스코홀딩스는 2001년 290만주, 2002년 281만주, 2003년 181만주, 2004년 178만주를 끝으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았다. 대신 자사주를 틈틈이 사들여 지난 6월 기준 자사주는 1133만7658주에 이른다. 이번 자사주 소각 뒤에도 872만주가 넘는 자사주가 '회사 금고'에 남는다.
'반쪽짜리' 주주환원정책 개선될까
기업들이 잇달아 자사주 소각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자사주 매입 뒤 소각이 이뤄지지 않은 '반쪽짜리' 주주환원정책 탓에 회사금고에 여전히 많은 자사주가 남아 있어서다. 지난달 하이투자증권이 '자사주 매입 후 소각만이 주주환원 정책' 보고서를 통해 거론한 SK㈜와 삼성물산이 대표적이다.
지난 6월 기준 SK㈜의 자사주는 1802만5598주로 전체 발행주식 중 자사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24%가 넘는다. 주식 4주 중 1주는 자사주란 얘기다. 2015년 SK㈜가 SK C&C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사주 1101만주, 주가안정을 위해 2015년과 2019년에 각각 매입한 자사주 351만주, 352만주 등이 그대로 쌓여있다.
지난 3월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돌턴인베스트먼트와 라이프자산운용은 SK㈜에 자사주 일부 소각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6월 기준 삼성물산은 전체 발행주식의 13%(2487만7934주) 규모의 자사주를 갖고 있다. 2015년 삼성물산과 합병된 제일모직이 2012년부터 3년간 사들인 자사주가 삼성물산에 그대로 남아있다. 2020년 삼성물산은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인수합병(M&A) 등 투자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 금지, 자사주 의무소 등 자사주 관련 법안 9건이 발의됐지만 입법에 실패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이 자율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은 고무적으로 평가된다. 21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기업의 자사주가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합리적인 자사주 소각 방안을 열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