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업계는 '나노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3㎚(나노미터) 양산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2㎚ 개발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죠. 하지만 전쟁을 하기 위해선 무기가 필요하듯, 반도체 업계 나노 전쟁에도 꼭 필요한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극자외선(EUV, Extreme Ultra-Violet) 노광(Photolithography) 기술입니다.
최근 TSMC, 삼성전자 등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EUV 장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오늘 테크따라잡기에서는 나노 반도체를 위해 꼭 필요한 EUV 노광 기술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빛으로 회로 새긴다
EUV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노광 공정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작은 반도체 속엔 전기가 흘러 다니는 수많은 회로가 있습니다. 우리 몸속 혈관과 같은 존재죠. 반도체 회로는 맨눈으로 볼 수 없고 현미경을 사용해야만 겨우 관찰할 수 있을 만큼 미세한 탓에 물리적으로 그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빛을 이용해 회로를 웨이퍼에 그리는 노광 기술을 사용하죠.
노광 공정은 설계된 회로 패턴을 빛을 이용해서 실리콘 웨이퍼 위에 복사해 내는 기술입니다. '마스크'라고 불리는 유리판에 미리 컴퓨터로 회로패턴을 설계해둡니다. 그다음 마스크를 감광액을 바른 웨이퍼 위에 올려 빛을 쬐면 사진을 찍듯 회로가 웨이퍼 위에 남는 방식이죠.
이때 EUV를 사용해 빛을 쬐는 것이 EUV 노광 기술입니다. EUV는 약 190~1㎚까지의 자외선을 말합니다. 반도체 장비에 사용되는 EUV는 13.5㎚ 단파장의 극자외선을 사용합니다. 기존 반도체 공장에 사용했던 광원은 193㎚ 파장을 가진 불화아르곤(ArF)인데요. EUV는 이보다 약 14분의 1 정도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하는 셈이죠.
그렇다면 반도체 업계에서는 왜 EUV에 주목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파장이 짧을수록 더 얇은 회로를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광 공정을 서예, 빛의 파장을 붓에 빗대어 표현하면 파장이 길수록 굵은 붓, 짧을수록 얇은 붓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얇은 붓일수록 더 얇은 선을 그리기 유리하겠죠? EUV는 기존 ArF 공정보다 14배 정도 얇은 회로를 그릴 수 있다고 합니다.
반도체는 얇고 미세하게 만들기 위해선 얼마나 더 작은 크기로 더 미세하기 회로를 새겨 넣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더 작은 칩을 만들수록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올 수 있는 칩의 개수도 많아지고, 전력 효율과 성능도 높아집니다.
반도체 업체들이 7㎚ 이하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선 EUV 장비가 필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파운드리 1위 TSMC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인텔, 마이크론 등 여러 반도체 업체가 EUV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 혈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이유는 다음 부분에서 설명할게요.
EUV 장비 분야 '원 앤 온리' ASML
반도체 업체들이 EUV 장비를 쉽게 도입할 수 없는 이유는 전 세계에서 이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단 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인데요. 생산 기간도 오래 걸려 1대당 5개월 정도가 필요해 1년에 최대 40~50대 정도밖엔 생산할 수 없습니다. 가격도 한 대당 2000억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사고 싶다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장비가 아닌거죠.
전 세계에서 ASML만 EUV 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 이유는 유일하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EUV 기술을 개발한 것이 이 회사뿐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니콘이나 캐논 등 다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쓰이지도 않은 기술을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할 수 없다며 EUV 기술 개발을 포기했습니다.
다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EUV 장비 개발을 포기한 건 EUV 기술이 굉장히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EUV는 파장이 짧아 공기에 닿으면 바로 흡수되는 성질을 가진 탓에 기술적으로 다루기 까다롭죠.
ASML은 렌즈 업체 '칼자이스', 광기술 업체 '실리콘 밸리 그룹' 등 여러 업체들과 협력해 독자적인 EUV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ASML은 EUV가 공기에 흡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들고 빛을 흡수하는 렌즈 대신 특수 제작된 '반사거울'을 여러 개 장치했습니다. 그다음 거울을 이용해 빛을 반사하는 방법으로 웨이퍼에 회로를 새겼죠.
결국 ASML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를 다룰 수 있는 업체가 됐습니다. 역시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일까요. 이젠 ASML의 장비를 사기 위해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줄을 선 상황이 됐습니다. 반도체 업계 '슈퍼 을(乙)'로 불리기까지 하니까요.
당분간은 EUV 장비 분야에서 ASML의 독주가 예상됩니다. 최근엔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EUV 장비 개발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아직 EUV 노광 장비는 개발하지 못하고 있지만, EUV를 통한 반도체 검사 장비는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안진호 한양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현재 EUV 노광장비를 ASML를 제외하고 어디서 나올 것 같냐고 묻는다면 중국 이라고 본다"면서 "아직은 EUV 검사장비를 만들고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향후 ASML에 버금가는 장비를 만들기 위해선 최소 15~20년은 봐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UV 장비 분야 '원 앤 온리' ASML이 한국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 호조 요인입니다. ASML은 내년 12월 완공이 목표로 2400억원을 투자해 경기도 화성에 신사옥과 부품 재제조시설 등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ASML이 한국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EUV 장비를 통해 초미세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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