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배터리 산업 전시회인 ‘인터배터리 2023’의 막이 올랐다.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인터배터리엔 462개사, 1359부스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가장 큰 관심이 쏠린 곳은 역시 국내 배터리 산업을 이끄는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K배터리 3사의 부스였다. 이들은 각사의 배터리를 장착한 다양한 전기차를 선보였다. 이들의 각축전은 마치 전기차 미니 모터쇼를 연상케 했다.
LG엔솔 “국내 미출시, 美 최고 인기 모델 첫선”
‘인터배터리 2023’이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등이 주관하는 해당 행사는 이날부터 사흘간 열린다.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와 소재·부품·장비 관련 기업들이 참가했다.
이날 K배터리 3사의 부스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특히 포드(Ford)의 '머스탱 마하-E', 루시드모터스의 '루시드에어', BMW의 'i7',현대차의 제네시스 'GV70' 등 각사의 대표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들이 각 부스에 배치되면서 특색을 뽐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전시공간 중앙에는 포드의 머스탱 마하-E와 미국 전기차 기업 루시드모터스의 프리미엄 세단인 루시드 에어가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모델들인 만큼 사진 촬영을 하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머스탱 마하-E는 포드의 전기차 전환을 이끄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파우치형 배터리 300여 개가 탑재된 해당 모델은 미국·유럽·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지난해엔 미국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리포트에서 최고 전기차로 선정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날 LG에너지솔루션은 원통형 배터리 6000여 개가 탑재된 루시드 에어를 국내 최초로 소개했다. 루시드 에어는 전기차 시장서 슈퍼 루키로 불리는 미국 신생 전기차 기업 루시드 모터스가 선보인 럭셔리 세단이다. 뛰어난 성능과 높은 출력이 특징이다.
지난해 10월 LG에너지솔루션 사내기업으로 출범한 KooRoo는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BSS·Battery Swapping Station)을 선보였다. BSS는 전기이륜차용 배터리팩을 충전이 아닌 교환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편의성을 한층 높였다. 올해 사업화가 목표다.
KooRoo 관계자는 “편의점 GS25에 BSS 충전기를 마련할 예정이고 상반기 중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할 것”이라며 “향후 사업부문이 좀 더 확장되면 배달서비스 등과의 협업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삼성SDI “회장이 사고 대표가 타는 i7 전시”
삼성SDI는 각형 배터리를 탑재한 BMW의 ‘i7’을 내놨다. 삼성SDI는 'i4'와 'ix'에 이어 같은 모델에 배터리를 납품하며 BMW와 끈끈한 동맹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i7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올리버 집세 BMW 회장을 만났을 당시 계열사 사장용 법인차로 구입한 모델로 알려진다. 현재 최윤호 삼성SDI 대표가 해당 차량을 타고 있다.
볼보의 대형 전기트럭인 ‘FM 일렉트릭’도 처음 전시돼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삼성SDI는 볼보의 상용차 부문인 볼보트럭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트럭을 비롯한 상용차는 승용차 대비 규격이 커 탑재되는 배터리 개수가 많다. 기존 승용차 대비 4~6배 이상 차이가 난다. 때문에 배터리 기업에겐 큰 고객사다. 이번에 전시된 모델엔 원통형 배터리 2만8000여 개가 들어간다.
이날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모형을 전시하며 관련 '초격차 기술'도 함께 소개했다.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는 독자 조성의 고체 전해질 소재와 리튬 음극재로 수명을 개선한 무음극 기술이 도입된 것이 특징이다.
삼성SDI는 올해 상반기 중 국내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 준공을 앞두고 있다. 준공과 동시에 시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양산은 오는 2027년으로 계획하고 있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는 이날 정기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저가형 배터리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LFP도 중요한 플랫폼 중 하나”라며 “향후 사업과 고객의 다양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가 해당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FP 배터리는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주력하는 시장이다. 그간 국내 업체들은 주로 니켈·코발트·망간(NCM)의 삼원계 배터리를 생산해 왔다. 하지만 LFP 배터리가 NCM 배터리 대비 가격이 저렴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K배터리 3사가 해당 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SK온 “중형 럭셔리 전동화 SUV 선봬”
SK온은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GV70’ 전기차 모델을 전시했다. 해당 모델엔 SK온의 파우치형 배터리가 탑재된다. SK온이 해당 모델을 전시한 것은 현대차와의 파트너십을 알리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양사는 지난해 11월 북미 전기차 배터리 공급 협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오는 2025년부터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주요 전기차 공장에 SK온 배터리가 납품된다.
SK온은 각형 배터리 실물도 최초로 공개했다. 그간 파우치형만 생산하던 SK온이 다양한 폼팩터 개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이 경우 배터리 업계와 완성차 업계 간 합종연횡은 가속 페달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등에 따르면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은 지난 14일 짐 로완(Jim Rowan) 볼보 CEO와 만나 사업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구체적인 회동 내용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았지만 SK온의 각형 배터리 개발과 관련된 논의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독일의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80%를 각형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SK온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완성차 기업마다 선호하는 배터리 폼팩터가 있기 때문에 각형 배터리 개발은 고객사를 더욱 다양화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아직은 각형 배터리 시제품이 나오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향후 사업적으로 유의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온의 각형 배터리는 올해 초 국제 전자품박람회(CES)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급속충전(SF) 배터리보다 충전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SF배터리는 18분 동안 80%까지 충전 가능하다.
정부 “배터리는 국가 육성사업, 39조 붓는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참석했다. 장 차관은 최근 국내 배터리 업계를 향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거세진 동시 압박에 대한 대안 마련을 언급했다.
장 차관은 “민관이 합심해 배터리 관련 핵심 광물 확보와 통상문제에 대응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기회로 활용하고 EU의 핵심원자재법(CRMA) 등에 대해서도 민관이 협심해 대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고 이날 대통령주재 민생회의서 첨단사업 육성전략 발표 시 배터리를 포함해 총 55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며 “배터리 분야에 2026년까지 39조원을 투자해 2030년경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정부는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전국에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를 새롭게 지정해 반도체·미래차·우주산업 등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340조원) △디스플레이(62조원) △이차전지(39조원) △바이오(13조원) △미래차(95조원) △로봇(1조7000억원) 등 6대 첨단산업에 걸쳐 2026년까지 550조원 규모의 민간 주도 투자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지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