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나은수 기자] 지난 20일 충청남도 보령시에 위치한 보령PG(Proving Ground)의 작업장. 궂은 빗줄기를 뚫고 도저 한대가 바닥 평탄화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후진 중인 도저에 작업자가 돌연 나타나자 스스로 멈춰섰다. 한편에선 자동화된 굴착기가 묵묵히 모래를 퍼나르고 있었다.
이 기술들은 HD현대사이트솔루션이 자체 개발한 무인·자동화 솔루션 'Concept-X2'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Concept-X 구현 과정에서 확보한 개별 기술들을 2025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동욱 HD현대사이트솔루션 사장은 "톱티어 기업들이 우리를 벤치마킹하려 하지만 따라하지 못하고 있다"며 "건설 기계의 무인·자동화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자부했다.
자동화로 생산·안전·효율 다 잡는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건설기계의 무인 자동화 분야에서 매번 최초 타이틀을 써 내려가고 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2018년 굴착기 원격 제어 기술을 최초 공개한데 이어 2019년 무인화·자동화 종합 관제 솔루션 시연에 최초 성공했다. 올해 열린 코넥스포(CONEXPO)에서 무인 자동화 종합 관제 솔루션 기술을 시연한 곳도 HD현대사이트솔루션이 유일했다. 코넥스포는 세계 3대 건설기계 전시회 중 하나다.
Concept-X는 이 같은 무인 자동화 기술을 총 집합시킨 '건설현장 종합관제 솔루션'이다. 2019년 'Concept-X'를 선보인데 이어 지난 3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업그레이드 버전인 'Concept-X2'를 공개했다. 4년 간의 기술 개발을 거치며 작업 속도와 효율성을 이전 모델 대비 13% 끌어올렸다. 굴착기에는 버킷(삽)을 다양한 각도로 기울이거나 회전할 수 있는 틸트로테이터도 추가 장착됐다.
김동목 HD현대사이트솔루션 수석은 "Concept-X를 시연해보니 시장에서 요구하는 또 다른 기능과 장비들이 있었다"며 "시연 장비 항목에서 도저를 추가했고 라이다, 열센서, 카메라 등을 탑재해 안전성을 추가 보강했다"고 말했다.
무인 자동화 기술이 적용되면 인간이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작업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예를 들어 원전 현장, 고산 지대 등에 자동화된 건설 장비가 투입되는 식이다. 이때 작업자는 관제 센터에서 장비의 이상 유무와 작업 상황만 확인하면 된다. 최종 목표는 각각의 자동화된 건설 기계 장비들이 한 몸이 된 듯 유기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김 수석은 "현재 지속적인 머신러닝을 거친 건설기계 장비들의 수행능력은 숙련 노동자의 약 95% 정도"며 "이를 통해 생산성, 안전성, 효율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날 원격제어 시스템이 탑재된 굴착기를 직접 조종해봤다. 실내에 위치한 운전자석에서 조이스틱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약 300m 떨어져 있는 굴착기가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격제어는 5G 통신망을 기반으로 조종되는데 통신망 구축이 어려운 현장에서는 와이파이(WI-FI)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윤기중 HD현대사이트솔루션 책임은 "도심에서 작업할 때는 5G를 이용하고 통신망이 구축되지 않는 광산에서는 와이파이를 이용해 원격제어가 이뤄진다"며 "조종과 실제 굴착기의 반응은 100mm/sec 차이로 움직이는데 이는 일반인이 인식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사우디가 원한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만큼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상용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자동화 건설 기계의 가격을 낮춰야 한다. 무인 자동화 건설 기계 장비의 눈 역할을 하는 라이다, 레이더, 열센서 감지, 카메라 등은 모두 고가다. 이 장치 가격이 낮아져야 장비 가격도 낮아질 수 있다.
김 수석은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라이더 센서 가격이 1억원 정도였다"며 "현재는 라이더 가격이 1000만원대로 하락한 상황이며 100~200달러 수준까지 떨어지면 거기에 맞춰 사용,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동화 기계 설비에 대한 법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현재는 건설 기계 장비 자동화에 대한 법이 전무하다. 예를 들어 작업자가 현장에서 굴착기를 운행하려면 굴착기 운전기능사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원격제어 작업은 운전 자격 요건이 명시돼 있지 않다. 사고 발생시, 책임 소재에 대한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윤기중 책임은 "건설 기계 자동화에 대한 법적 제도가 노베이스인 상태"라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국토교통부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무인 자동화 솔루션에 대한 글로벌 시장과 기업들의 관심은 많은 편이다. 이 사장은 "솔루션을 도입을 하기 위해 여러 건설사와 협의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이 솔루션을 도입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앞으로도 무인 자동화 기술력 확보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사장은 "매출의 3.5~4%를 매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수준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