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최근 매일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갑작스럽게 지분을 늘리는 행보에 대한 배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업계 등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이달 3일부터 지난 17일까지 HD현대 주식 14만2537주를 장내 매수했다. 주당 취득 단가는 평균 약 7만4279원이다. 이로써 정 부회장의 지분율은 6.12%로, 1년 전보다 0.86%포인트 높아졌다.
정 부회장은 올해 5월부터 거의 매일 지분을 사 모으고 있다. 올해 자사주 매입에 쓴 자금만 400억원이 넘는다. 정 부회장이 그룹사 주식을 매수한 것은 2018년 3월 현대로보틱스 지분 5.1%를 3540억원에 사들인 이후 처음이다. 따라서 그 배경에 재계 안팎의 관심이 높다.
주주 불만 잠재우고 승계 자금 마련까지 '1석 3조'
오너 경영인의 자사주 매입은 책임 경영의 일환으로 보거나 주가 부양 효과, 지배력 강화 등 여러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번 정 부회장의 자사주 매입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HD현대는 주가 하락에 대한 방어책 마련이 필요했다. 지난 5월 HD현대마린솔루션이 상장하면서 주주들 사이에서 모회사와 자회사의 중복 상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의 자사주 취득이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주가 하락에 직접 대응해 책임 경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올해 초 HD현대 주가는 주당 7만원 초반을 웃돌다 HD현대마린솔루션 상장을 앞둔 지난 4월 한때 6만원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주식매수와 함께 이후 다시 상승, 현재 7만원 후반대까지 주가를 회복했다.
또 올해 계열사 실적에 대한 정 부회장의 자신감이 담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회사 경영현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영인의 자사주 취득은 기업의 성장성과 실적 개선 자신감을 보여주는 메시지다. 최근 조선업이 호황 사이클에 접어들며 HD현대그룹 산하 조선 3사는 모두 흑자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HD현대일렉트릭과 HD현대사이트솔루션 등 산업기계 부문에서의 실적 개선세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그룹 승계 구도의 핵심인 HD현대의 지분율을 충분히 확보해 그룹 지배력과 경영권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포석도 깔려있다. HD현대는 아직까지 권오갑 회장이라는 전문경영인과 정 부회장의 투톱 체제다. 정기선 부회장은 지난해 말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본격적인 '오너 3세' 경영 시대를 예고한 상태다.
HD현대의 최대 주주는 정 부회장의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다. 지분율은 26.6%다. 이 지분을 정 부회장이 상속이나 증여 받을 경우 정 부회장이 내야 하는 세금만 8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정 부회장이 총수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정 이사장의 지분을 증여·상속 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막대한 상속세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은 지분을 확보하는 '정공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본격적인 경영에 나선지 4년차가 된 만큼 서서히 지분 매입을 통해 지배력을 확대해 나가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렇게 확보한 지분을 통해 받는 배당금은 세금 납부 등 승계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이번 정기선 부회장의 주식 매입은 주가 흐름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책임경영의 뜻을 밝힌 것으로, 그 의지가 매우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