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Biz북터뷰'는 경제를 비롯한 전문 도서의 저자와 만나 책에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나눈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한 핵심을 비롯해 미처 말하지 못한 생각들을 쉽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독자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로봇은 반도체 이상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입니다."
유진투자증권 양승윤 연구원은 지난 7일 비즈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로봇 산업의 잠재력에 대해 이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로봇 전문 애널리스트로서 올해 4월 투자입문서 '최고의 성장주 로봇 산업에 투자하라'를 저술했습니다.
로봇 산업이 앞으로 한국의 핵심 산업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요 증가 때문입니다.
한국의 로봇 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제조업 중심인데다 전기전자, 자동차 산업 규모가 크기 때문입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발표한 2023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 인구 1만 명당 로봇 사용 대수는 1112대입니다. 이는 2위인 싱가포르(770대)와 3위인 중국(470대)을 크게 앞서는 수치인데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가 향후 로봇 수요를 더욱 키울 것이란 전망입니다.
로봇에 대한 수요는 높아도 제조를 담당하는 기업들의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우선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좋지 않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내수 규모가 작은 국내 로봇 시장 보다 해외 수출에 주력하고 있는데요.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로 해외 수출 성적이 부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주요 로봇 기업들의 실적 성장세가 꺾였거나 감소세로 접어들었습니다.
중국 로봇산업의 가파른 성장세 또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로봇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중국 로봇의 기술력이 매년 개선되고 있으며 가격 경쟁력도 갖춰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외국산 로봇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았는데요. 최근 2~3년 사이에 눈에 띄게 자국산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 로봇 시장 내 자국산 점유율은 절반에 육박한 47%까지 올랐습니다. 중국의 내수 시장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산 로봇의 경쟁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다시 국내 로봇 산업으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 연구원은 "내년부터 국내 로봇산업의 위기감을 해소할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며 "이는 K-로봇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미국 대선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금리 인하로 투자 환경이 개선되면서 정체됐던 로봇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인재육성, R&D투자…정부의 전방위적 투자 필요
양 연구원은 시급한 해결 과제로 '인재 육성'을 꼽았습니다. 양 연구원은 "매년 발표되는 로봇·AI 분야 논문을 보면 저자나 연구원 중 20~30%의 비중이 중국 국적이고, 한국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국내 교육기관에서 산학 연계를 활성화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부품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도 관건입니다. 산업연구원(KIET)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도 기준 제조용 로봇의 구조부·제어부 부품 국산화율은 30~40% 수준에 불과하죠.
정부는 올해 제4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를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로봇 핵심부품 국산화율을 8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개선안을 제시했는데요. 양 연구원은 "중국이 부품 국산화율면에서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KIRIA)이 지난 5월에 발표한 동향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첨단 센서 국산화율은 2016년 13%에서 2020년 31%를 기록했는데요. 이는 연평균 24%의 성장세에 해당합니다.
“IPO 추진만?” 벤처자본도 좋은 대안
양 연구원은 로봇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IPO 말고도 다양한 자금조달 방식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벤처투자 활성화'를 꼽았죠.
"로봇 산업은 지속적인 R&D 투자가 필수적인 분야입니다. 특히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들은 당장의 수익성보다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하는 특성이 있죠. 이러한 산업 특성상 분기별로 수익을 증명해야 하는 증권시장 시스템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상장한 로봇기업들은 올초까지만 해도 높은 성장세를 보였지만 현재는 실적 압박에 직면해 있습니다. 두산로보틱스나 레인보우로보틱스 등 주요 로봇 기업들은 최근 적자 전환이 되거나 영업손실 폭이 커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죠.
양 연구원은 "현재 국내 벤처캐피탈이 투자하고 있는 스타트업 중 로봇 기업의 비중은 1%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및 벤처캐피탈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R&D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미국에선 로봇·AI 기업들에 대한 막대한 벤처자본이 투입되면서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로봇AI 스타트업인 '피지컬 인텔리전스(Physical Intelligence)'의 사가 대표적입니다. 지난 5일, 아마존 창립자인 제프 베조스, 빅테크인 오픈AI, 그외 벤처캐피탈 두 곳이 참여하며 4억달러(약 5511억원)의 투자 자금을 유치한 바 있죠.
"틈새 시장 발굴하라"
양 연구원은 한국 로봇 산업이 '협동로봇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협동로봇은 최근 글로벌 로봇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무인 자동화 중심의 전통 산업로봇과 달리, 협동로봇은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세계 협동로봇 시장은 2022년 기준 13억 달러 규모로, 2030년까지 연평균 30%대가 넘는 성장률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협동로봇 시장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죠. 협동로봇을 운용하려면 복잡한 프로그래밍과 엔지니어링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양 연구원은 "이 부분을 해결하는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부문은 비교적 블루오션에 해당한다"며 "이는 한국이 공략해야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틈새시장 공략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 로봇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전통 산업로봇이나 협동로봇 하드웨어 기술력 분야에서는 이미 일본 '화낙(FANUC)', 덴마크의 '유니버설 로봇(Universal Robots)'이 시장을 선점했고, 가격 경쟁력은 중국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소프트웨어 특화 전략으로 하나둘씩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봇 푸드테크 '로보아르테'의 튀김조리 로봇 '롸버트-E'를 꼽을 수 있습니다. 치킨을 비롯한 튀김요리 소비가 많고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정확히 공략한 결과물이죠. 미국 치킨 브랜드 누리치킨을 시작으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 로봇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해외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양 연구원은 "소프트웨어 기술은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한번 시장을 선점하면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며 "정부와 기업의 집중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