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조업용 로봇 밀도(근로자 1만명당 제조용 로봇 운용 대수)는 세계 1위다.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로봇 밀도는 1012대로, 글로벌 평균치의 6배를 웃도는 규모다.
최근 만난 박철완 한국로봇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이 지표에 대해 "실속 없는 1위"라고 꼬집었다. 제조업에 근간을 둔 한국이 전세계 최대 전통 로봇 수요처일뿐, 최대 로봇 생산국은 아니여서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첨단 로봇도 한국의 기술 수준은 '초급'에 머문다. 그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해 대기업군을 산업에 적극 뛰어들 수 있도록 하고, 테스트베드로 적격인 한국 시장 특성을 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래는 박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제조업용 로봇 밀도 1위의 민낯
- 최근 국내 로봇산업 현황은 어떠한지?
▲ 로봇의 개념을 '전통로봇'과 '첨단로봇'으로 구분했을 때 한국 기업들은 전통로봇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통로봇은 주로 '제조업용 로봇'을 뜻한다. 한국은 제조업에 근간을 둔 나라다.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바이오 등 주요 산업군 역시 제조업에 속한다. 공장 자동화가 중요했고, 제조용 로봇이 발전하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IFR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용 로봇 밀도는 세계 1위다. 하지만 그 민낯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사실상 실속 없는 1위다. 이 결과는 제조용 로봇 시장이 활성화됐다는 의미일 뿐, 최대 생산국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산업용 전력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는 국가 단위의 '직렬적 압축 성장' 결과다. 로봇산업 자체의 내재적 잠재력 때문이 아니기에 실상을 반영하지 못한 왜곡된 지표라 할 수 있다.
실제 제조용 로봇을 선도하는 나라는 일본이고, 중국 로봇시장도 깨어나고 있다. 전통로봇 수요처 1위에 만족해선 안되는 이유다.
IFR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월드 로보틱스 2024'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글로벌 제조용 로봇 신규 판매 대수는 54만1302대로 집계됐다.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연간 판매 실적이다. 자동차 및 전기·전자 산업이 제조용 로봇의 최대 수요처로 파악됐다.
중국·일본·미국·한국·독일 등 상위 5개 주요 국가에 전체 제조용 로봇의 77.6%가 설치됐다. 특히 중국에는 전 세계 판매량의 절반이 넘는 27만6288대가 설치, 2013년 이후 11년 연속 제조용 로봇 수요국 1위 자리를 이어갔다.
같은 기간 제조용 로봇밀도는 한국이 선두 국가에 올랐다. 중국의 로봇밀도는 470대로, 지난 2020년 9위(251대)에서 불과 3년 만에 여섯 계단을 뛰어올랐다. 전년 대비 성장률도 19.9%,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세계 제조용 로봇 생산을 주도하는 국가는 일본으로 파악됐다. 일본은 화낙(Fanuc)·가와사키(Kawasaki)·야스카와(Yaskawa) 등 첨단 제품과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 일본은 글로벌 제조용 로봇 공급량의 약 40%에 달하는 20만5764대를 생산했다.
"휴머노이드, 추진속도 늦은 편…5년 전 시작했어야"
- 부회장 취임 당시 공약인 '휴머노이드 로봇'의 국가첨단전략기술 선정이 4개월만 성사됐다. 전통로봇에 치우친 업계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 한국의 로봇산업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첨단로봇의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한국 첨단로봇 기술은 초급에 머문다. 인공지능(AI)·센서·액추에이터 등 핵심 요소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정책·산업·과학기술 전반서 많은 보완이 필요한 상황으로 진단했다.
사실 취임 직후 직원들과 업계 현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했으나, 과정 중 많은 저항과 난관에 부딪혔다. 업계 일부의 반발이 컸다. 국정원 등의 핵심 기술 심사를 '수출 규제'로 여겼고 전통로봇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지능형 로봇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원받았음에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배경이 짐작되는 대목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견해는 확고했다. 전통로봇의 성장도 필요하지만 '국가첨단전략기술'이라는 측면서 방향을 설정할 때는 첨단로봇이 우선시돼야만 했다. 로봇산업의 생존을 위해 제조분야의 자동화 장비 산업과 고도화로 특화된 첨단 제조·로봇·모빌리티를 나눠서 봐야할 때다.
-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에 주목하는 이유는?
▲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제조업 선진국으로서 피할 수 없는 전략이다. 더는 숙련된 인력이 제조업에서 일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전 세계적으로도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현상에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AI 개발과도 직결된다. AI에 '신체'를 부여함으로써 AI가 물리적 세계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 단순 자동화 설비를 넘어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감지·인식·상호작용이 가능한 로봇 기술이 개발돼야 하는 까닭이다.
국가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로봇기술 고도화의 중요성도 대두된다.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유럽이 이끌고 미국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중국 역시 따라붙고 있다. 중국 정부는 휴머노이드 발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 지방 정부도 다양한 지원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 지방 정부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직접 보조금까지 투입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추진 속도는 늦은 편이다. 적어도 5년 전부터 시작됐어야 할 움직임이었다고 본다.
"삼성, 로봇 인수 환영...현대차, 방향성 돋보인다"
- 지난해 말 삼성전자가 휴머노이드 로봇 회사를 편입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 상당히 환영한다. 삼성전자의 이번 결단은 '탑 다운(Top-down)' 방식으로 정해진 투자로 읽힌다. 아직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 전망과 비전에 따라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도 휴머노이드를 기반으로 하는 첨단로봇 산업은 명확하지 않다. 시장이 너무 초창기라 당장 내년, 내후년 매출이 어떻게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우 기업 내에서 바텀 업(Bottom-up)으로 투자를 끌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오너 레벨에서의 결단이 주요했을 것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삼성전자도 생존을 위한 미래 산업의 길을 뚫을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이 차세대 주요 기술이 될 것이란 전망을 거스를 순 없었을 것이다. 수년 후 시장이 확대된 후 뛰어들었다면 너무 늦은 감이 있었을 것이다.
- 휴머노이드 외 첨단로봇 분야서 주목하는 것이 있다면?
▲ '첨단 모빌리티'다. 이 자체를 일종의 첨단로봇으로 볼 수 있다. 전동화 휴머노이드 로봇 등 첨단로봇 기술에 초창기 자율주행이 포함된 배터리 전기차 기술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첨단로봇의 기술 기반이 배터리 전기차에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테슬라의 옵티머스*가 대표적인 예다. 테슬라 공식 영상에서도 전기차 기술이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옮겨간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에선 현대차그룹의 방향성이 돋보인다.
*현재 휴머노이드 분야서 가장 주목 받는 것은 테슬라의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다. 테슬라는 내년 말까지 1000대의 옵티머스를 테슬라 공장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테슬라의 미래 발전 방향은 자동차가 아닌 휴머노이드 로봇"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로봇·AI 영역을 핵심 미래 성장 분야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를 전담할 로보틱스팀을 신설했고, 이후 조직규모를 키워 로보틱스랩으로 확대했다. 2021년에는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를 인수했다.
"로봇기업도 주 52시간 예외 허용해야"
- 첨단로봇을 포함해 한국 로봇산업이 글로벌 선진국 대비 다소 뒤처진 이유는 무엇인지.
▲ 여태껏 대기업군의 적극적인 시장 진출이 없었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일부 대기업이 뛰어들긴 했으나 몇 년되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국내 로봇시장의 매출 규모도 아직 작은 편이다. 중소·중견기업 경우엔 자본이 충분치 않으니 제대로 된 기술개발이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로봇분야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독재·군정 때 육성된 산업 이외 제대로 성장한 산업은 한국서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엔 국가적 투자·지원에 힘입어 주요 산업의 대기업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민주화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선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국내 로봇기업 대부분이 1990년 이후에 들어섰으니 이러한 문제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한국 로봇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로봇기업은 2524개사로 이 가운데 98%(2480개사) 이상이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은 0.5%(12개사), 중견기업은 1.3%(32개사) 등에 그쳤다.
로봇기업 중 부설 연구소를 운영하는 회사는 절반 가량인 1296개사였으며, 이중 53.8%(697개사) 만이 로봇 관련 연구를 전담으로 하고 있었다.
이 기간 국내 로봇산업 매출은 총 5조980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제조업용 로봇의 매출 비중이 50%를 차지했다.
연도별 설립현황을 살폈을 때, 2015년 이후 설립된 사업체가 30.7%(775개사)로 가장 많았다. 이어 △2010~2014년 24.2%(612개사) △2005~2009년 16.0%(405개사) △2000~2004년 12.1%(305개사) 등 순이었다.
- 대기업군이 로봇에 매력을 느끼게 할만한 대안은 없을까.
▲ 가장 시급한 것은 규제 쳘폐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현재 시점에 맞지 않는 규제들이 상당하다. 보조금 지원도 선행돼야 하지만, 이러한 직접적 금융지원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물량전을 통해 미국과 중국을 따라가긴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규제 완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정부 차원의 규제 철페를 언급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제안할 수 있을지?
▲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제조의 규제'와 '시장의 규제'다. 제조에서의 규제 완화는 로봇기업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 예외를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로봇산업 육성을 위해서다. 국내 로봇산업 자체가 초기 수준이니 대기업군도 스타트업과 같은 환경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다.
한국 로봇 시장의 장점을 이용하기 위해선 시장 규제 완화도 필수다. 한국 시장은 절대적 규모가 크진 않지만 소비자 수준이 높아 질적으로 우수한 시장으로 꼽힌다. 이러한 시장의 특성은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시장 내 제도는 여전히 미흡하다. 서비스 로봇이 건물에 진입하더라도 층 간 이동은 불가하고, 자율주행과 관련해서도 카메라 스캐닝에 따른 사생활 보호 문제가 얽혀있다.
미국처럼 외국 첨단기업이 국내로 들어올 때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규제를 교묘하게 살려놓는 것은 장기적으로 현명하지 못하다. 규제 철폐를 통해 다양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우수한 기업들이 살아남게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극적인 제도 혁신 없이 보조금 등 금융 지원만 지원될 경우, 관료 친화적인 기업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기업들은 생존력이 길지 않아 결국 좀비 기업만 양성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인 지원은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의 사안에 지나지 않는다.
박철완
• 現 한국로봇산업협회 상근부회장
• 現 서정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 現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 산업 전환분과 민간위원
• 現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기업 전환 전문위원회 위원장
• 前 20대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