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산업의 길을 물었던 '신년 릴레이인터뷰'를 마감합니다. 전문가 9명에게 자동차·반도체·배터리 등 분야의 현안과 해결책을 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했던 현안 2가지를 추려내 인터뷰 '에필로그'를 준비했습니다. ▲반도체·로봇업계가 주목하는 모빌리티 ▲가성비 중국 물량 공세에 몰린 한국기업입니다.
"차 반도체에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결합, 파운드리 생산을 확 늘려야 한다"(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 교수)
"첨단 모빌리티는 일종의 첨단로봇으로 볼 수 있다"(박철완 한국로봇산업협회 상근부회장)
모빌리티로 진화하는 자동차가 반도체·로봇업계의 '금맥'으로 떠올랐다. 첨단로봇의 기술 기반이 전기차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두 분야는 떼려야 뗄 수 없고, 궁극의 자율주행을 위해선 연산속도와 저장능력을 끌어올린 AI 차량용 반도체가 필요해서다. 현대자동차가 로봇 전쟁에 참전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완전자율주행 전기차, 모양 바꾸면 휴머노이드"
자율주행 전기차는 사실상 바퀴달린 첨단로봇 휴머노이드이다. 고성능 센서·모터·배터리 등 로봇 성능을 고도화하고 움직임을 보다 자연스럽게 하는 장치가 자율주행 기반의 전기차에 들어가고 있어서다. "완전자율주행 전기차의 형태만 바꾸면 그것이 바로 휴머노이드"라는 전문가 평가도 나오는 이유다.
박철완 부회장은 "뉴럴 네트워크가 적용되는 슈퍼컴퓨터, 이미지 센서, 46파이(지름 46mm) 계열 고성능 배터리 등 고도자율주행 전기차에 적용되는 주요 기술 대부분이 휴머노이드 로봇에 탑재된다"며 "관절을 구부리고 펴는 일부 구동계 기술을 제외하곤 거의 동일한 기술이 쓰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가 휴머노이드 개발에 적극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독보적인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고도·완전자율주행 기술을 선도하는 회사는 크게 테슬라·엔비디아·화웨이 3곳인데 이러한 각 플랫폼에 기반해 테슬라뿐 아니라 중국 전기차 제조사인 니오(NIO)와 샤오펑도 휴머노이드를 선보이고 있다"며 "자율주행 자체가 굉장한 고난이도의 기술이다보니 이를 일정 레벨까지 개발한 기업들은 첨단 전동화 휴머노이드로 사업을 확장시키기에 용이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국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곳으로 현대차를 지목했다. 박 부회장은 "전통로봇이 발전해서 첨단로봇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차전지와 이차전지처럼 각 카테고리 영역을 유지하면서 시장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며 "결국 첨단로봇과 연속성이 있는 기술은 자율주행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은 현대차와 기아"라고 진단했다.
현대차는 지난 2021년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를 인수하며 일찌감치 로봇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엔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플랫폼인 아이작(Isaac)으로 AI 기반 로봇을 개발하기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통해 휴머노이드 제조 기술을 확보하고, 엔비디아와 협업을 통해 로봇의 지능을 고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황금알 낳는 자율주행, AI 차량용 반도체 뜬다"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은 반도체 업계에도 새로운 먹거리다. 자율주행 기술개발에 가속이 붙으면서 차량용 반도체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니아에 따르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23년 635억달러(91조2500억원)에서 2028년께 1298억달러(186조5000억원)로 2배가량 급증할 전망이다.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IVI(In-Vehicle Infotainment)** △다중 카메라 비전 처리(Multi-Vision Processing) 등 초고속 컴퓨팅 처리 능력은 자동차 산업의 필수 요건으로 꼽힌다. 향후 고도·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4·5단계부터는 2000~3000개 이상의 차량용 반도체가 탑재된다.
*ADAS :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 운전 중 발생하는 수많은 상황 가운데 일부를 차량 스스로 인지하고 상황을 판단, 기계장치를 제어하는 기술.
**IVI :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차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와 정보(information) 시스템을 총칭하는 용어.
특히 자율주행 레벨이 올라갈수록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은 급증한다. 현재 전동화 자동차에 탑재되는 기존 D램으로는 이를 처리하기에 부족하다. 업계에선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필수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환 교수는 "완전자율주행 시대에 다다를수록 저장된 데이터 처리량이 늘고 이를 계산하기 위한 AI 가속기가 필요하니 이를 저장할 HBM 수요가 급증할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자율주행차의 응용영역이 무궁무진한 만큼 AI 차량용 반도체는 반도체 사업영역 내 황금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7세대 HBM인 HBM4E 개발 계획을 공개했고, SK하이닉스는 구글 자회사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웨이모의 차량에 HBM2E(3세대)을 단독공급 중이다.
이 교수는 "조금은 먼 미래일 수 있지만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하나로 합친 개념인 지능형 반도체 '프로세싱인메모리(PIM)'가 차세대 반도체로 꼽히는데 이를 차량용 반도체에서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래 먹거리 관련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울러 국내외 완성차기업이 배터리 내재화를 공표했던 것처럼 반도체 내재화를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으니 반도체업계도 이에 대한 시장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거시적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년 릴레이인터뷰] 산업의 길을 묻다
①"제조업 로봇 밀도 1위, 실속없다…규제 철폐 시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