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더 견고하게 쌓은 대중(對中) '무역 장벽'이 국내 태양광 기업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될 것으로 분석됩니다. 미국 정부가 중국산에 이어 동남아산 태양광 제품까지 관세를 확대, 국내 업계의 반사이익이 기대되면서죠. 무역 장벽에 중국발 공급 과잉이 막히는 셈입니다.
업계 안팎에선 내년 초 미국 태양광 모듈 가격 반등을 기점으로, 이르면 내년 상반기 매출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변수도 있습니다. 내년 초 출범할 트럼프 2기의 '반(反) 친환경' 정책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기간 내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축소를 강조한 만큼 보조금 축소 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초강경 관세' 꺼낸 까닭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산 태양광 웨이퍼와 폴리실리콘에 부과하는 관세를 2배로 인상했습니다. 태양광 웨이퍼와 폴리실리콘은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주요 재료·부품인데요, 각 품목별 관세가 기존 25%에서 50%로 올랐죠.
대중 보복관세는 전임 트럼프 대통령에서 부터 바이든 대통령까지 줄곧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이후 보복관세를 유지한 채 '그린뉴딜(친환경 경제성장 정책)'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중국 때리기는 멈추지 않은 것이죠.
올 5월엔 중국산 태양광 전지를 비롯해 전기차·반도체·배터리 등에 대한 관세를 모두 인상했고요. 중국 우회로로 알려진 베트남·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 등 4개국의 태양광 패널 관세 유예를 종료하고, 태양광 전지에 상계관세도 부과했습니다. '상계관세'는 보조금을 받은 외국 기업이 저가 공세로 시장을 왜곡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정규관세 외 조치입니다.
중국의 덤핑 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조치였죠. 중국 기업들은 값싼 태양광 제품을 앞세워 미국 등 글로벌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습니다. 현재 중국 업계의 미국 태양광 시장 점유율은 70% 이상, 유럽에선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중국은 그간 미국의 반덤핑 상계관세를 피하기 위해 동남아를 통해 우회 수출했다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값싼 중국산 제품에 시장 내엔 공급 과잉이 발생했고, 다른 기업들의 재고 누적과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죠.
중국의 반발도 상당한데요.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지난 16일 "이번 관세 조치는 미국 무역 적자와 산업 경쟁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가중하고 미국 소비자의 이익을 훼손하며 국제 경제·무역 질서와 글로벌 산업·공급망의 안전·안정을 심각히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죠.
"美 모듈 가격 반등, 실적 개선 신호탄"
철퇴를 맞은 중국계 기업은 생존전략을 짜고 있죠. 비교적 몸집이 작은 중국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거친 후 기존 동남아 4국 외 또 다른 우회로를 찾을 가능성이 크고요. 대기업은 미국에 직접 진출할 것으로 분석되죠.
한화솔루션, OCI홀딩스 등 국내 태양광 업계의 반사이익도 기대됩니다. 한화솔루션은 '솔라허브' 구축에 3조원 이상을 투입, 미국 조지아에서 모듈·셀·잉곳·웨이퍼 등 태양광 밸류체인 전체를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추진 중입니다. 모든 체제가 갖춰지면 연간 1조원에 육박하는 IRA 세제 혜택을 받죠. 세제혜택은 △태양광 모듈 1W(와트)당 7센트 △셀 4센트 △잉곳·웨이퍼 4.69센트 등입니다.
OCI홀딩스도 분주합니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지난 3분기 실적발표 당시 "미국 현지 합작사 설립을 비롯, 수직계열화 체계를 구축하는 등 비(非)중국 태양광 밸류체인 확장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미국 내 텍사스를 거점으로 태양광 사업을 꾸준히 확대해나가고 있죠. 주력 부문인 태양광 셀 원료(폴리실리콘) 생산뿐 아니라 태양광 패널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중입니다.
중국·동남아 제품에 대한 관세로 미국 내 태양광 모듈 가격이 반등, 국내 태양광 기업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쌓였던 재고는 이르면 내년 1분기 또는 상반기 중 소진될 것으로 분석됩니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반덤핑관세 등에 힘입어 지난 2년여간 하락해 온 미국 태양광 모듈 가격은 방향 전환을 시도할 것"이라며 "올해 4분기 실적발표와 동시에 가격 반등을 확인할 수 있고 미국 내 과잉 재고 부담도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전했죠.
"트럼프, 보조금 버튼 끄더라도…"
내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은 복병입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바이든 행정부의 '그린뉴딜'은 사상 최대의 사기"라며 "집권시 이를 폐기하겠다"고 공언했죠.
업계는 "일부 정책 변화를 피할 순 없겠지만 부정적인 영향이 크진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정책적으로 화석 연료로 회귀할 수 있지만, 대중 봉쇄 기조는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어떠한 반발을 하더라도 트럼프는 보다 강경한 대중 통상정책을 펼칠 것"이라며 "이 경우 중국산 태양광 규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설사 IRA 보조금이 줄더라도 어느 정도 상쇄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IRA 축소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보조금 등에 대해서만 조정이 있을 것이란 분석인데요. 태양광 사업이 활발한 미국 지역이 주로 공화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IRA가 폐지되거나 AMPC가 축소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견해입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IRA는 대통령 행정명령이 아닌 의회를 통과한 법안인 만큼 공화당의 압도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며 "조지아와 텍사스는 공화당 강세지역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AMPC에 직접 손을 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역 투자와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공화당이 법안 폐지에 찬성할 확률이 크지 않다는 것이죠.
이어 "만일 트럼프가 IRA를 전면 폐지하더라도 껍데기만 바꾼 후 다른 명목의 보조금을 지원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며 "본인의 치적을 쌓기 위해 보조금 버튼을 잠시 껐다 켤 것이라는 얘기"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