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최태원·구광모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이사회 진용을 새로이 갖춘다. 올해 정기 주주총회서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에 기술분야 인재를 영입, 리더십 재정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경험과 역량을 갖춘 인물을 중용해 글로벌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한 중장기 전략으로 읽힌다.
삼성, '반도체·AI' 인재 안팎으로 배치
삼성전자는 오는 19일 정기 주총을 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도 사내이사로 오르지 않는다. 최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관련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사법 족쇄에선 벗어났으나, 검찰 상고가 이어진 탓으로 보인다.
대신 이사회 내 반도체 전문가들을 늘린다. 우선 사내이사로는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과 송재혁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반도체연구소장(사장)이 내정됐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D램 시장서 글로벌 1위를 수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해 D램·플래시 개발, 전략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2014년부터는 메모리 사업부장을 역임하다 2017년 삼성SDI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약 6년 만인 지난해 5월 DS부문 회복을 위해 긴급 투입됐다. 지난 2월엔 '1b D램' 공정으로 제작한 HBM3E 8단 제품을 들고 직접 엔비디아를 방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송 사장은 낸드 개발 및 사업화를 이끈 반도체 전문가다. 2022년부터 DS부문 CTO 겸 반도체연구소장을 역임하며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신규 사외이사로도 반도체 전문가가 합류한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전자정보공학부 교수가 새롭게 발탁됐다. 현재 서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대학원 사업단장을 겸하는 그는 반도체 석학으로 꼽힌다.
SK, '에너지·국제통상'에 방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주사 SK㈜ 사내이사직을 이어가며 책임경영에 나선다. 지난해 8월 공시된 SK㈜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까지 9차례 열린 이사회에 최 회장은 2차례 불참에 그쳤다.
이번 주총에선 강동수 SK㈜ PM부문장의 사내이사 신규선임 안건도 상정할 예정이다. 그는 그룹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전문가로 알려진다.
아울러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조하는 만큼 기업인이나 교수 출신 사외이사를 영입, 이사회 전문성을 탄탄히 갖출 예정이다. SK㈜는 신임 사외이사로 이관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과 정종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내정했다.
이 후보는 에너지·화학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다. 해외 학술지 등에 350편 이상 논문을 게재하며 연구 역량을 인정받아 과학기술훈장을 받았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원장·연구부총장·한국에너지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정유·배터리·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에너지 사업 전반의 과제를 다루는 데 전문성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 후보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국제협력본부장·중국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국제관계 전문가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및 미·중 무역전쟁 격화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발생하는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LG, '믿을맨' 체제 강화…회계·경영전략 사외이사도
구광모 회장도 이사회 출석률 '100%'로 이사회 경영에 열심이다. 이번 주총에선 믿을맨 권봉석 부회장과 하범종 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한다. 그룹 내에서 권 부회장은 ‘전략통’, 하 사장은 ‘재무통’으로 평가된다. 이들 재선임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경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권 부회장은 구 회장 체제서 실질적 2인자로 불린다. 지난 2014년 구 회장이 경영수업을 받을 당시 직속 상사였던 그는 많은 조언을 건네며 신뢰를 쌓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간의 성과와 전문성도 돋보인다. 권 부회장은 LG전자에서 홈엔터테인먼트(HE)사업본부장·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본부장·최고경영자(CEO)를 거치며 주요 사업을 이끌었다. 2022년부터는 ㈜LG 부회장(대표이사)을 맡아 그룹의 미래 전략을 총괄해왔다.
권 부회장은 올해만 5개의 계열사 이사회 일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지주사를 비롯해 LG전자·LG화학·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이번에 통신 계열사인 LG유플러스 이사회에도 합류한다.
하 사장은 그룹 총수일가 재산관리를 맡으며 구 선대회장 사망 후 상속재산 분할 관련 실무를 다뤄왔다. LG화학과 ㈜LG에서 재무 및 경영관리 부문을 두루 역임, 2022년부터 ㈜LG 경영지원부문장으로 자리했다.
LG도 교수출신 사외이사를 통해 전문성을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LG는 회계분야 전문가인 정도진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경영학 교수를 영입, LG전자는 경영전략 및 인사제도 전문가인 강성춘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를 신규 내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