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환과 함께 한미 통상 질서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는 결이 다른 압박이 예고되고 있다. 고율 관세에 이어 환율과 금리 심지어 디지털 화폐까지. 무기화되는 전선은 넓어지고 수위는 더 정교해질 전망이다. "법의 외피를 쓴 정치의 확장"이란 평가도 나온다. △수출 경쟁력 약화 △통화주권 침해 △실물경제 위축이 맞물릴 경우, 한국 산업은 복합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글로벌 통상 패러다임 재편의 한복판에서 한국 차기 정부가 세워야 할 전략의 윤곽을 탐색한다. [편집자]
"트럼프가 협상의 룰을 바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오며 글로벌 통상질서를 다시 뒤흔들고 있다. 단순 무역보복 차원이 아니다. 터무니없이 높은 요구 조건을 먼저 내걸어 상대를 압박하는 '하이볼(highball)' 전략, 다자협정을 무력화하고 양자협상으로 질서를 리셋하려는 시도,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을 위한 관세 협상의 도구화까지. 트럼프 2기의 통상 전략은 1기보다 훨씬 구조적이고 전술적이다.
특히 IEEPA(국제비상경제권한법)를 관세 부과의 법적 근거로 활용한 방식은 28일(현지시각) 미 연방법원으로부터 "의회의 고유 권한을 침해했다"는 위법 판단을 받으며 정치적·법적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는 항소 방침을 밝혔지만, 사법부 제동에 더해 의회의 비준 거부 가능성과 공화당 내부 반발까지 맞물리며 관세 정책의 추진력은 흔들리고 있다.
미국 내부의 반발도 변수다. 고율 관세는 제조업 원가 상승과 소비자 물가 인상, 수입 부담 확대 등으로 지역경제에 부담을 준다. 지역구 경제를 중시하는 미국 의원들 입장에선 민주·공화 구분 없이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식 관세 전쟁'이 조기 종료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한국 산업이 맞는 직격탄은 상당하다. 자동차와 전기·전자 등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업종이 관세 타깃이 됐고 수출 경쟁력 약화 우려도 현실화하고 있다. 협상의 무게 중심이 '국가 대 국가'가 아닌 '기업 대 미국 정부'로 이동하면서 개별 기업이 정치·외교적 부담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결국 한국 정부의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 전면에 나서기보다 산업 맞춤형 전략을 설계하고 기업들의 직거래 협상에 조율자로 개입하는 백 채널 체계가 필수다. 실전형 협상 인력과 시스템, 산업 중심 대응 조직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상기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은 "트럼프의 진짜 목표는 관세가 아니라 기술과 생산기지 회수다. 이제 '통상'이 아니라 '산업 협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한국 차기 정부는 백 채널을 설계할 실전형 전략 조직부터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박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클린턴 이후 20년, 트럼프의 리셋 버튼
-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관세 정책은 어떤 점에서 1기와 다른가?
▲ 트럼프 2기의 관세 정책은 단순히 '세게 나간다'는 수준이 아니다. 핵심은 '하이볼(highball)' 전략이다. 터무니없이 높은 요구 조건을 먼저 제시해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협상 의지를 꺾는 비즈니스 협상 기법이 통상 정책에 적용된 것이다. 외교 협상은 현실 가능한 합의점을 던지는 반면 트럼프식 협상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과도한 조건을 던져 상대가 양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보편적 관세'라는 표현을 붙여 상품처럼 포장, 국제 통상 질서를 흔드는 이슈를 '강한 쇼잉(showing)'으로 전환한다. 마치 광고하듯 이슈를 디자인하는 감각은 트럼프의 건설업 시절과 맞닿아 있다.
- 관세 품목 구성을 보면 단순한 무역불균형 시정을 넘어서 협상 테이블의 규칙 자체를 바꾸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협상학적으로 어떠한 '전술적 전환'으로 보이는지?
▲ 트럼프의 전략은 단순 관세 품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협상의 룰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이 흐름은 과거 미국 정책과 연결된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도입된 '메가 서플라이어' 전략, 즉 자원과 환경은 미국이 보호하고 제조업은 아시아 등 해외에 맡기자는 구상이 20여 년간 유지돼 왔다.
그 결과 제조업 기반이 약화되고 고용이 무너졌다는 반성이 미국 내에서 제기됐다. 트럼프는 바로 그 구조를 리셋하려는 것이다. 전 세계에 퍼진 공급망을 미국으로 되돌리기 위해 관세를 협상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곧 미국이 '룰 메이커'로 다시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다자 협상을 무너뜨리고 일대일 양자 협상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런 구조 속에서야 비로소 미국의 국력 우위가 협상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리쇼어링과 표심, 미국의 관세 계산법
-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개별 협상할 수 있는 여지는 있을까.
▲ 여지는 분명히 있다. 실제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완제품 가격이 올라 미국 시장서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미국 정부와의 직접 협상이 필요해진다. 다만 문제는 '누가 협상하느냐'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개별 기업이 직접 채널을 뚫어야 하는 구조는 한계가 크다.
- 이번 관세 품목 중 한국 산업에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는?
▲ 단연 자동차다. 규모가 크고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가 분명한 산업이기에 트럼프의 타깃이 되기 쉽다. 반도체도 영향을 받겠지만 고용 측면에서 자동차만큼은 아니다. 자동차 산업은 그 주변 수많은 밴더사가 함께 딸려 들어간다. 가령 현대차가 미국에서 30만대를 조립하면, 실제론 세 배에서 다섯 배에 달하는 고용 효과가 발생한다. 트럼프는 이것을 노리는 것이다. 정치인이기 때문에 즉각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산업을 선호한다.
같은 맥락서 볼 때, 지난해 말 현대차가 호세 무뇨스 사장을 첫 외국인 CEO로 앉히고 성김 전 주한미국대사를 북미권 사장으로 기용한 것도 단순 인사가 아니다. 미국 시장과의 정치적·외교적 연결고리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 자동차를 비롯 전기·전자 품목이 관세 타깃으로 지정된 배경은 산업적 이유일까 혹은 정치적 계산일까.
▲ 두 가지 모두 작용했다. 산업 측면에서는 제조업 부활을, 정치적 측면에서는 고용 창출 효과를 겨냥한 조치다. 트럼프는 '디스트릭트 기반 고용 효과'를 매우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디스트릭트'란 미 의회의 선거구를 의미하는데 트럼프는 특정 지역구에서 실제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유권자들의 체감을 끌어내려 한다. 이러한 관세 품목들은 미국이 제조업을 자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려는 '리쇼어링(reshoring)' 전략의 상징적 대상이기도 하다.
규범은 무력화, 힘만 남은 협상 시대
-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 인도 등 제3국에 생산거점을 둔 경우에도 관세 리스크는 여전히 유효할까?
▲ 미국의 '메이드 인 USA' 유도 전략이 본질이다. 하지만 베트남과 인도 등은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상 쉽게 관세를 부과하기 어려운 정치적 보호막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대중 견제를 위해 전략적으로 우호적인 위치에 둔 국가들이다. 한국 입장선 주요한 차선책이 될 수 있겠다.
- 정부와 기업이 공동 협상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처럼 '개별 기업 vs 미국 정부'의 협상 구도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선 한국 정부가 뒤에서 조율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른바 '백 채널(비공식 외교 경로)'을 통해 정부가 협상 판을 설계하고, 기업들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외교적 부담을 나눠야 한다.
일본은 이 부분에서 훨씬 노련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일본제철의 미국 US스틸 인수 과정*이다. 일본 정부의 고위 관료가 직접 협상에 개입해 전체 판을 짜고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냈다. 반면 지금의 한국은 이러한 '프로페셔널 백 채널' 역량이 여전히 부족하다. 구조적 체계를 갖추는 게 시급한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안을 조건부 승인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각) 트럼프는 SNS를 통해 "7만 개 일자리, 140억 달러 투자 효과"를 언급하며 사실상 인수에 긍정 신호를 보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불허한 기존 결정을 뒤집는 것으로 향후 미일 G7 정상회의에서 최종 조율이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트럼프는 "US스틸은 미국이 통제할 것"이라며 완전 자회사화를 부정했고, CNN은 "일부 지분만 허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제철은 미국 정부에 황금주(golden share) 부여를 검토 중이다. 황금주는 소수 지분만으로도 CEO 임명 등 핵심 경영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1901년 설립된 US스틸은 한때 미국 산업의 상징이었지만, 최근 경쟁력 약화로 매각에 나섰고 일본제철이 인수자로 결정됐다. 인수가 성사될 경우 미국 시장 내 생산기지 확보와 원자재 수급이 가능해진다. 일본제철은 로비스트를 동원해 미 정계와 여론을 설득해 왔으며 140억달러의 제철소 투자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 양자협상에 집중해야 할까? 아니면 다자협상이 여전히 유효할까?
▲ 현실적으로는 양자협상이 중심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건 WTO 같은 다자 틀이 아니라 미국의 국력 우위를 극대화할 수 있는 '1대1 힘의 협상'이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상대국보다 10배 이상 큰 상황에선 다자 협상보다 양자 협상이 훨씬 강한 압박 수단이 된다. 한국도 이 구조에 맞춰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실제 미국은 단지 공장을 지으라는 수준을 넘어 기술 이전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는 WTO 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되지만, 트럼프는 그런 규범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 정부와 기업은 단기적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협상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조율자 없는 협상판…정부가 '뒤에서' 설계해야
- 품목별 예외 적용 협상을 위해 한국 정부가 준비해야 할 사전 포인트는?
▲ 가장 먼저 필요한 건 협상팀의 전면 교체다. 지금까지는 '교수 중심의 통상 교섭팀'이 주를 이뤘다면, 앞으로는 '산업 현장형 협상가'로 구성된 실전형 조직이 필요하다. 특히 차기 정부 출범 직후는 협상 인력과 전략을 동시에 쇄신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다.
둘째는 시스템 대비다. 미국은 하나의 협상에 수백 명, 많게는 600명까지 투입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소수의 인원으로 대응한다. 협상은 전략이라는 과학과 현장 연출이라는 예술이 동시에 요구되는 영역이다.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시스템, 이를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는 협상가가 있어야 미국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 지금처럼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는 예외 조항 하나 얻기도 어렵다.
- 중장기 협상 아젠다는 어떻게 설정해야 유리할까.
▲ 지금 트럼프는 기존 통상 체계를 리셋하고 있다. 과거의 규범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시기지만 동시에 미국도 여전히 WTO와 FTA 체제에 묶여 있다. 완전한 권력 기반 구조로 전환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한국은 '이중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겉으론 다자 협상과 규범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실제론 산업별 실익 중심의 전략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
트럼프의 진짜 목적은 관세 자체가 아니라 기술과 생산기지 회수에 있다. 한국도 통상 교섭이 아니라 '산업 협상'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건 고용 창출이기 때문에 해당 효과를 정량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예외를 얻어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국 관건은 백 채널이다. 트럼프 시대 협상은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미국 정부와 개별 기업 간 '직거래'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이런 구조에선 한국 정부가 전면에 나서기보단 조율자이자 설계자로서 기업들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 이슈와 직접 연결된 디테일한 협상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팀을 미리 갖춰야 대응이 가능하다.
'고율 관세' 내부서 무너지나…미국 내 제동 메커니즘
- 28일(현지시각) 트럼프의 관세 조치에 대해 미 연방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측도 항소 의사를 밝혔다. 해당 사안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 미국에서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일 뿐 입법이나 사법 권한은 없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한 조치가 법률상 권한을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 관세 부과는 원칙적으로 의회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려는 시도가 사법부에서 제동에 걸린 셈이다.
앞으로 당분간 행정부와 사법부 간 공방이 이어지겠지만 실질적인 쟁점은 의회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통해 정책을 추진한다 해도 의회의 입법이나 비준 없이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공화당 내부에도 반(反)트럼프 기류가 존재해 입법적 동력 확보는 녹록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정치인과는 다르다. 의원이나 주지사 경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통령이 됐으며 행정부 요직을 개인적 충성심 위주로 인사 구성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 내에서도 그를 당의 대표라기보다는 별개의 정치 세력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정당 기반 정치에 익숙한 의회 인사들과의 충돌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미국 내에서도 반발을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 고율 관세는 미국 내 경제에 되레 부담을 준다. 제조업 원가 상승·소비재 가격 인상·수입 부담 확대 등으로 인해 각 주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는다. 지역구 경제를 중시하는 미 의원들 입장에선 자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민주·공화 양당 모두 마찬가지다.
- 이번 판결이 향후 트럼프 2기의 관세 정책 추진에 미칠 영향은?
▲ 영향이 적진 않을 것이다. 법원이 위법성을 명확히 지적한 데다 의회의 비준 가능성도 낮다. 트럼프가 다시 행정명령으로 밀어붙일 순 있겠지만 이는 정치적 자산을 빠르게 소진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그의 '트위터식 정치'는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제도 정치권 내에선 지속성과 정당성 확보에 한계가 분명하다.
트럼프의 레임덕은 예정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 △정치적 동지보다 견제 세력이 더 많은 구조 △행정권 남용에 대한 피로감 △정책 추진의 정당성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내 제도와 여론은 단기 강경책에 오래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관세 정책이 그 대표적 사례다.
박상기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협상전략AI 네고메이트(Negomate) 개발자
⦁국제협상 칼럼니스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국제협상 겸임교수
⦁연세대 협상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