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관세의 칼'을 빼 들었습니다. 오는 8일 상호관세 유예 종료 시점을 앞두고 주요 교역국에 최대 50%의 고율 관세를 통보하겠다는 경고장을 날렸죠. 일본에는 쌀, 한국에는 자동차와 철강 등 전략 품목을 정조준한 공세가 본격화되고 있는데요. 스마트폰과 반도체까지 '줄 세우기 관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베트남과의 합의를 전례로 '차등적 보상과 징벌'을 반복하는 전략 역시 노골화되는 분위기입니다.
문제는 이번 협상이 단순 무역 조정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감정과 여론을 자극하고 상대를 심리적으로 흔드는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죠. 전문가들은 "트럼프식 협상은 본질을 감춘 채 감정을 흔드는 '디코이(decoy)* 전략'에 가깝다"며 "한국도 정서적 이슈에 끌려가기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decoy: 사냥감을 유인하기 위한 모형용 새
베트남은 낮췄고, 일본은 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예고한 날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4월 9일 발효된 상호관세 조치의 유예기간은 오는 8일 종료됩니다. 미국 정부가 별도의 연장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이후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에 상호관세 부과가 자동 재개되죠.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일(현지시각) 베트남과의 무역 합의를 '성공 사례'로 부각하며 협상 동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에는 쌀과 자동차 문제를 정조준하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고요. 한국을 비롯한 50여개 교역국에 대해선 "25%·35%·50% 관세를 통보하는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며 공개 경고에 나서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당초 46%였던 상호관세율을 이번 합의로 20%까지 낮췄습니다. 트럼프는 "환적 수출에는 40% 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히며, 대신 미국산 SUV 수출 확대와 시장 접근 확대를 약속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1일 일본에 대해선 "미국 쌀도, 자동차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보복성 관세를 시사하기도 했죠.
한국 역시 결코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미국은 현재 한국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예고한 상태인데요. 모든 국가에 동일 부과되는 10% 보편관세 대신, 각국 사정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지는 방식이죠. 여기에 철강·자동차 등 일부 품목에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개별 품목 관세가 별도로 중첩 적용되고 있어요.
이번 조치의 법적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 다른 하나는 '무역확장법 232조'입니다. 우선 IEEPA는 일종의 경제 계엄령으로, 대통령이 국가 비상 상황 시 외국과의 무역이나 금융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합니다. 트럼프는 이를 근거로 국가별로 서로 다른 상호관세율을 설정했죠. 흔히 말하는 '줄 세우기 관세'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면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수입 품목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전 세계 모든 국가에 해당 품목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미 철강(50%)과 자동차(25%)가 이 법에 따라 관세를 적용받고 있죠.
두 법이 동시에 적용되는 경우엔 '품목 우선 원칙'에 따라 232조가 우선합니다. 가령 자동차는 어느 국가에서 수출하든 무조건 25% 관세가 붙는 구조입니다. 한국이 상호관세 협상을 통해 전체 세율을 낮추더라도, 자동차처럼 별도 품목으로 지정된 제품은 예외 없이 고율 관세가 적용돼요.
이처럼 국가별+품목별 이중 압박이 가능한 구조인 만큼 한국 정부와 기업도 단순 상호관세 유예 연장만으로는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관세 요술봉' 韓 기업 정조준
이미 자동차와 철강은 고율 관세가 부과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같은 제품도 국가별 상호관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요. 반도체와 기계류는 아직 품목 지정이 안 됐지만 향후 지정되면 고관세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어요.
이러한 무역 환경 변화는 통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올해 1~4월 기준 미국 수입시장 내 한국의 점유율은 7위에서 10위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수출액도 22억 달러 넘게 줄었어요.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품목도 계속 늘려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상무부는 50% 철강 관세 부과 대상에 냉장고와 세탁기 등 11개 가전제품을 새로 추가했고요. 자동차 부품도 엔진·변속기·파워트레인 등 핵심 부품을 줄줄이 관세 대상에 올렸어요. 업계가 특히 긴장하는 건 이 목록이 '살아 있는 리스트'라는 점인데요. 미국 내 기업이나 산업협회가 요청만 하면 60일 내 품목이 추가될 수 있어서 '요술봉 관세'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에 기업들은 △공급망 재편 △관세 시뮬레이션 △제품군 다변화 등 플랜B를 가동 중입니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 등 주요 대미 수출 기업들은 관세가 이중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 더해 베트남·멕시코 등 제3국 생산기지에까지 규제가 확대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삼성전자는 최근 임원진 중심의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반도체·가전·스마트폰 분야별 대응책을 총점검했습니다. 반도체는 기술력 강화와 생태계 연합을 추진하고, 스마트폰은 관세 부과 전에 출하 물량을 늘리는 한편 가격 전략도 조정하고 있죠. LG전자는 미국 내 세탁기 생산을 늘리는 동시에 베트남산 냉장고 수출을 줄이면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고요.
현대차·기아는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 가동률을 높이면서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완성차 업체들이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높이는 건 관세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지만, 문제는 핵심 부품을 여전히 한국 등에서 들여오는 구조라는 점인데요. 만약 관세가 부품까지 확대되면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장기적으로는 조달처를 미국 현지로 전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차 협력사 600여곳 중 미국에 생산기지를 둔 곳은 13%밖에 되지 않아 대응 여력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디스플레이나 카메라모듈처럼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중간재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삼성전기·LG이노텍 등도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에요. 이미 출하량을 늘려 재고를 확보해두긴 했지만, 관세가 장기화되면 하반기 실적엔 부담이 갈 수밖에 없어요.
정부도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을 중심으로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여 본부장은 "자동차와 철강 등 품목별 관세까지 모두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며 정부가 이를 최우선 외교 과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목각오리' 띄운 트럼프…쌀은 미끼, 제조업이 본심
문제는 트럼프의 강공 드라이브에 미국 재무당국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는 "이번 주에 각국에 관세율을 명시한 서한을 보낼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역시 "9월 1일 노동절 전까지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시한을 못 박았죠. "오는 9일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최대 50%의 고율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경고도 공개적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조건을 던지며 협상 상대국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정책의 일관성은 부족하고 전략적 혼선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백악관과 재무부가 동시에 압박을 가하고 메시지까지 뒤섞이는 상황에선 정부나 기업 모두 방어 전략을 세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은 단순 무역 마찰이 아니라 정치와 심리, 여론을 동시에 겨냥한 복합 게임"이라며 "더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특히 일본을 향한 고율 관세 공세는 한국에도 동일한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죠.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에 대한 공세는 한국에 대한 사전 경고의 성격이 짙다"고 진단했습니다. 황 교수는 "트럼프는 과거에도 일본과 한국을 무역적자 유발국으로 묶어 언급해왔다"며 "이번에 일본을 상대로 상호관세율을 30~35%까지 높일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사실상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어요.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단순 관세 협상을 넘어 감정과 여론을 겨냥한 전략적 '기싸움'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협상의 본질을 흐리는 전략에 휘말리지 않도록 데이터 기반의 치밀한 방어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박상기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은 "트럼프의 일본 쌀 시장 개방 압박은 표면적으로는 무역협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디코이(decoy)' 전략의 대표 사례"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실제로는 자동차나 제조업 관세가 본게임인데, 협상 초반에 쌀 같은 농산물 이슈를 던져 상대국의 감정을 건드리고 협상력을 흔드는 기만 방식"이라고 해석했어요.
"쌀 시장이 일본 무역수지에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미국 농업에도 큰 실익은 없어요. 그런데도 이걸 꺼내는 이유는 정서적 충격을 주기 위해서죠. 한미 FTA 당시 미국이 한국에 소고기 시장을 개방하라고 했던 그 방식 그대로예요."
박 부회장은 "이런 이슈는 감정적으로 민감하고 국민 정서에 쉽게 불이 붙기 때문에 협상 전반을 흔드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이슈를 일부러 던져 시선을 끌고, 나중에 '쌀은 우리가 양보할게'라는 식으로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미국식 협상술"이라고 짚었습니다.
"이게 바로 디코이죠. 목각오리를 띄워 놓고 진짜 원하는 건 뒤에서 챙기는 방식이에요. 미국은 상대방이 양보하기 가장 싫어하는 감정적 약점을 건드린 뒤 그걸 양보해주는 척하면서 실속은 다 챙기는 협상 패턴을 갖고 있어요. 지금 미국은 언론까지 활용해 협상 프레임을 짜고 있는데요. 한미 FTA 때도 미국 언론은 '한국이 너무 많이 가져갔다'고 했지만, 실상 미국이 지식재산권과 투자자 보호 등 핵심 이익을 챙겨갔죠."
박 부회장은 "이제 한국 정부도 이런 수법을 예상해야 한다"며 "곧 우리에게도 감정적으로 민감한 이슈 하나가 툭 던져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쌀, 소고기 등 농축산물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수 싸움에 대응하기 위해선 한국 역시 감정적인 이슈를 선제적으로 파악, 협상 데이터를 정리해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디코이에 현혹되면 본질은 감춰지고 아무것도 아닌 이슈가 마치 협상의 핵심처럼 부각된다"며 "'쌀을 지켜냈다'는 언론 플레이 뒤에 본질적인 것을 다 내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중 협상에 대해서도 "겉으론 미국이 강해 보이지만 실상은 미국이 중국산 소비재와 산업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중국은 이를 알기 때문에 트럼프의 체면을 살려주며 필요한 만큼만 맞춰주는 방식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간다"고 진단했습니다.
박 부회장은 "강한 상대와의 협상에서는 정면충돌보다 빠져나갈 틈을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며 "한국 정부와 기업도 감정이 아닌 논리 및 데이터로 설득력 있는 방어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