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마이크론이 소비자용 메모리 사업을 접고 HBM 중심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에는 14조 규모 HBM 새 공장을 짓기로 결정, 글로벌 AI 메모리 전쟁의 판을 다시 짜는 모양새인데요. SK하이닉스 독주와 삼성전자의 반격 사이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본격 행보로 해석됩니다.
저마진 버리고 고부가로
마이크론은 최근 크루셜(Crucial) 브랜드의 소비자용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고 밝혔습니다. 내년 2월까지만 제품을 출하하고 이후에는 소매 채널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방침인데요.
수밋 사다나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는 "AI 데이터센터가 메모리 수요를 폭증시키고 있다"며 "더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에서 전략 고객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수익성이 낮은 소비자용 제품을 정리하고 HBM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이미 지난 9월 실적 발표에서 예고된 흐름입니다. 당시 산제이 메흐로트라 최고경영자(CEO)는 HBM 매출이 분기 기준 20억달러에 근접했다고 밝혔는데요. 전체 매출의 약 18%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빠르게 커졌습니다. 당시 그는 "HBM 시장은 2030년 1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며 "내년에도 일반 D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사실상 회사의 중장기 성장축을 HBM으로 완전히 옮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입니다.
여기에 일본 정부의 지원까지 더해졌습니다. 마이크론은 히로시마 공장 부지에 1조5000억엔(약 14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HBM 생산라인을 구축하기로 했고요. 일본 정부는 최대 5000억엔의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내년 착공해 2028년 양산에 돌입할 계획인데요. 미중 갈등과 대만 리스크를 고려해 생산거점을 다변화하려는 전략적 판단도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외신들은 "히로시마 신규 라인이 세계적 차세대 HBM 생산기지가 될 것"이라며 "기술서 앞선 SK하이닉스를 추격하려는 포석"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일본 내 소재·장비 생태계를 활용해 안정적인 생산 능력을 확보하려는 의지로도 읽힙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내년 HBM4 출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마이크론의 'HBM 올인'은 시장 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점유율 60%대로 선두를 지키고 있고요. 마이크론은 20%대 초반 점유율로 2위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HBM4 개발 난도가 높아 속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받아온 상황입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내부 평가(PRA)를 통과하며 HBM4 경쟁력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죠. 업계 일각선 "내년 HBM 시장 점유율이 SK하이닉스 60%, 삼성전자 30% 이상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마이크론은 연례 보고서에서 "HBM4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내년 양산도 계획대로"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다만 시장의 관심은 '누가 더 빨리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고객 요구에 따른 맞춤형(Custom) HBM을 제공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AI 가속기별 요구 사양이 급격히 세분화된 만큼 초미세 공정 역량과 설계 유연성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HBM4' 난도 시험대…치열해질 삼파전
이러한 변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략에도 직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는 이미 조직과 기술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며 HBM4 시대에 대비하고 있는데요.
삼성전자는 메모리사업부 내 '메모리 개발 담당'을 신설, 황상준 부사장을 책임자로 세웠습니다. 그간 분리돼 있던 D램·플래시·솔루션 개발 조직을 하나로 묶어 HBM을 포함한 전반적인 메모리 개발을 통합 관리하려는 조치입니다.
지난해 비상조직이었던 'HBM개발팀'은 설계 조직으로 흡수되며 정상화 단계에 진입했죠. HBM3E로 기술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한 만큼 HBM4·HBM4E에 역량을 집중하려는 전략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HBM4에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적용해 경쟁사보다 더 미세한 공정을 선택했습니다. 베이스 다이는 파운드리의 초미세 로직 공정을 활용해 제작했는데요.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모두 보유한 삼성전자의 구조적 강점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SK하이닉스는 '현지 밀착형' 전략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미국에 HBM 전담 기술 조직을 꾸려 엔비디아 등 주요 빅테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요. 개발·양산·패키징·품질을 잇는 조직 재정비도 이미 마무리됐습니다. 인디애나 첨단 패키징 공장 역시 속도를 내면서 고객 요구를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는 대응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SK하이닉스는 TSMC와 협력해 HBM4의 베이스 다이를 로직 공정 기반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구글 TPU 8세대, 아마존 트레이니움 4세대 등 주문형반도체(ASIC) 가속기의 고성능·저전력 사양을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엔비디아 중심이던 HBM 시장이 빅테크 ASIC 수요로 확장되는 흐름에 선제 대응하는 전략으로도 풀이됩니다.
반면 마이크론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기존 D램 공정을 유지해 왔고요. 이 점은 커스텀 HBM 경쟁에서 구조적 약점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습니다. HBM4E부터 TSMC 공정 활용을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삼성·SK 대비 한 발 늦었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제 승부는 고객사 사양을 얼마나 빨리 구현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라며 "삼성은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통합 개발력이, SK하이닉스는 패키징과 TSMC 로직 생태계를 결합한 구조가 강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마이크론의 'HBM 올인'은 단순한 사업 재정비가 아니라 시장 판도를 바꾸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세 기업이 동시에 전략을 움직이기 시작한 만큼 내년 AI 메모리 시장은 점유율 경쟁을 넘어 기술·공정·맞춤화까지 3개 축이 맞붙는 다층적 구도로 빠르게 재편될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