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장비 1위 기업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의 차세대 공동 연구개발 거점 '에픽(EPIC) 센터'에 창립 멤버로 참여한다. 삼성전자가 장비사와 연구 초기 단계부터 공동 개발에 나선 것은 선단 공정 경쟁의 성격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개별 기업의 기술력 대결을 넘어 생태계 차원의 속도전으로 판이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2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과 인공지능(AI) 반도체 주도권을 겨냥한 전략적 협력으로 해석된다.
박광선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 대표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이 실리콘밸리 에픽 센터의 펀딩 멤버로 참여했다"며 "고객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단순 협력이 아니라 자금을 함께 투입하고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에픽 센터'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가 50억달러(한화 약 7조원)를 투입해 조성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동 연구개발 시설이다. 칩 제조사·대학·장비사가 한 공간에서 차세대 공정과 소재를 함께 연구한다. 초기 연구 단계부터 양산을 전제로 병행 개발을 추진, 기술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협업은 초미세 공정의 난도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효율이 핵심 지표로 떠오르면서, 원자 단위에서 재료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경쟁력을 가르는 변수로 부상했다. 미세화의 병목이 설계가 아니라 재료와 장비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양사는 첨단 노드 미세화와 차세대 메모리 구조, 3차원 적층 기술을 축으로 협력을 강화한다. 공정을 단계별로 나눠 개발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핵심 단계를 동시에 고도화해 성능과 비용을 함께 개선하겠다는 전략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 부회장은 "양사는 오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선단 장비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며 "에픽 센터를 계기로 기술 협력이 한층 강화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게리 디커슨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도 "AI 인프라 확대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칩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삼성과의 협업으로 차세대 제조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선단 장비 공개…한국 협업 거점도 확대
이날 어플라이드는 2나노 이하 공정에 적용될 신규 장비 3종도 공개했다. '프로듀서 비바 라디칼 처리 시스템'은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구조의 핵심인 나노시트 표면을 옹스트롬* 단위로 정밀 제어하는 장비다. 트랜지스터 성능을 좌우하는 표면 균일도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 옹스트롬은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다. 1옹스트롬은 0.1나노미터다. 원자 하나의 지름이 약 1옹스트롬 수준이다.
'Sym3 Z 매그넘' 식각 시스템은 마이크로초 단위로 이온을 정밀하게 조절해 반도체 표면을 깎아내는 장비다.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은 구조를 층층이 쌓아 올려야 하는 2나노 이하 공정에서 원하는 모양을 오차 없이 구현하는 데 쓰인다. 미세한 3차원 구조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배선 공정에서는 '센트리스 스펙트럴' 몰리브덴 ALD 시스템을 내세웠다. 반도체 내부 전기가 흐르는 길에 기존 텅스텐 대신 몰리브덴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전기가 지나갈 때 생기는 저항을 최대 15%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저항이 낮아지면 같은 연산을 하더라도 전력 소모가 줄어든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칩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직결되는 기술이다.
어플라이드는 한국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경기도 오산에 건설 중인 '어플라이드 컬래버레이션 센터 코리아'는 고객사·협력사·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기술 협업 거점이다. 박 대표는 "한국은 중요한 메모리 고객들이 위치한 핵심 시장"이라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최첨단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고 대학과 협업해 인재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