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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현대해상 정몽윤 처갓집의 부침(浮沈)

  • 2016.06.14(화) 11:10

[방계家 사람들] 시즌2 <1>부국
건축자재로 출발 1990년대 건설업으로 사세 확장
외환위기 파고 넘지 못해 주력 부국개발 등 명멸

1982년 12월,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27살의 정몽윤(61) 현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겨울방학을 이용해 귀국, 이화여대 출신의 다섯 살 연하인 김혜영(56)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47년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현대건설의 전신)’라는 간판을 내건 이래 전후(戰後) 복구와 1960~1970년대 경제개발 붐을 타고 건설, 자동차, 조선으로 무한 확장을 하던 ‘현대(現代)’와, 우연이겠지만 건설업으로 가업을 일궈낸 건실한 기업가 집안 ‘부국(富國)’의 만남이었다.

 


정몽윤 회장의 처가인 고(故) 김진형(1925~2013) 전(前) 부국물산 회장 가문은 건축자재를 시작으로 한 때 건설업으로 흥했던 집안이다. 김 회장은 1969년 6월 석면, 일명 ‘스레트(슬레이트·slate)’를 판매하는 근원산업을 설립, 기업가로 활동해온 것을 볼 수 있다. 스레트는 지금은 천대받고 있지만, 1970년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함께 “잘살아보세”가 국가적 구호였던 시절, 초가 지붕을 스레트 지붕으로 바꾸는 지붕개량사업이 활발했던 당시에는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다. 

김 회장은 종종 부국석면통상 회장이란 직함이 붙기도 하는데, 부국석면통상은 1972년 5월 근원산업이 새롭게 바꿔 단 간판이다. 이어 1984년 11월 부국물산으로 사명을 바꿨다. 한국패류건어물수출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 왕성하게 사업가로 활동해 온 김 회장은 1982년 12월 부국설비를 설립했다. 김 회장 집안의 주력회사라 할 수 있는 부국개발의 전신(前身)이다.

부국개발은 초기에는 주로 건축자재 판매사업을 비롯해 절삭·가공·시추 등에 사용되는 다이아몬드공구 및 복층유리 제조사업을 벌였다. 이어 전문건설업으로서 땅을 굴착하거나 토사 등으로 지반을 조성하는 토공사업에 진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1990년 4월 무렵이다. 사세 확장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때도 이쯤으로 부국개발은 1990년대에 부국물산, 부국산업, 부국유리, 부국인터내쇼날 등의 계열사를 뒀다.

김진형 회장의 시절 또한 지나가고 가업 승계도 이뤄져 1996년 12월 김 회장의 2남 1녀 중 장남인 김호영(61)씨가 불혹을 갓 넘긴 42세 때 부국개발의 대표를 맡아 경영 일선에 등장했다. 1999년 말 부국개발의 주주명부를 보면 김진형 회장이 21.0%, 김호영 대표가 20.7%의 지분을 소유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부국개발도 1997년 말 엄습한 외환위기의 거센 파고 앞에서 영 힘을 쓰지 못했다. 2000년의 재무상황이 말한다. 계속되는 건설경기 불황으로 인한 거래업체 부도와 자금조달 압박 등에 시달려온 부국개발은 2000년 342억원의 매출에도 불구하고 순익 적자가 47억6000만원에 달한다.

특히 2010년 말 총자산이 351억원 수준이던 부국개발은 유동부채(322억원)가 유동자산(217억원)보다 105억원이나 많았다. 자기자본은 16억3000만원에 불과, 67.7% 자본잠식(자본금 50억6000만원) 상태였다. 당시 부국개발이 처한 위기 상황을 잘 보여준다. 결국 부국개발은 2007년 해산했다.

현재 세간에 각인될 만한 김호영 대표의 이렇다 할 경영 행보는 이후로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 부국물산, 부국유리 등도 2000년대 초 폐업에 들어가는 등 다른 관계사들의 경우에도 지금에 와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있다. 김진형 회장의 차남인 김관영(60) 제이알투자운용 사장이 2000년대 들어 부동산 시장에 발을 들여 학자에서 경영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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