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스무 살이 넘은 건장한 청년이 있다. 불과 십수 년 사이 몰라보게 폭풍 성장했다. 얼굴은 검게 그을렸지만 눈에는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손에 쥔 과실은 차고 넘쳤다. 남들과 전혀 다른 길을 고집한 덕분이다.
미래에셋이 오는 7월 1일 창업 20주년을 맞는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미래에셋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시간을 초월하는 성장 속도다. '박현주 신화'로 대변되는 미래에셋이 걸어온 길은 더없이 화려하지만 끝이 아니란 점이 더욱 중요하다.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미래에셋의 금융 오디세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다만 박현주 회장 개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와 함께 박 회장의 개인회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등은 지배구조상 취약점으로 꼽힌다.
◇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의 신화
미래에셋대우를 포함한 미래에셋금융그룹 계열사의 전체 자본금은 14조원에 육박한다. 20년 전 자본금 규모가 100억원에 불과했던 걸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다. 미래에셋대우만 해도 지난해 미래에셋증권과 옛 대우증권의 합병을 통해 자기자본 1위 증권사로 우뚝 섰다. 미래에셋생명도 PCA생명을 흡수 합병하며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셋의 진짜 신화는 미래에셋운용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7년 이른바 '박현주 사단'으로 불리는 8명이 미래에셋벤처캐피털을 세운 뒤 이듬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탄생했고, 국내 최초 뮤추얼 펀드인 '박현주 1호'를 선보였다. 외환위기 직후 예금으로만 돈이 몰려들던 시기에서 나온 과감한 승부수였다.
'박현주 1호'는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며 미래에셋의 위상을 단번에 각인시켰다. 1999년 12월 9일 청산 당시 최종 수익률은 100%였다. 2004년 국내 최초로 적립식 개념의 펀드를 선보인 것도 엄청난 히트를 쳤다. 펀드 시장을 급팽창시키고 지각변동을 일으킨 주역인 셈이다.
◇ 인사이트 펀드의 아픈 기억
물론 1위도 아픈 기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미래에셋이 출범한 지 딱 10년 만인 2007년에도 미래에셋 돌풍은 계속되고 있었다. 미래에셋은 박현주 회장의 펀드 신화를 업고 창립 10주년에 맞춰 인사이트 펀드를 야심 차게 선보였다.
국내 최초로 자산과 지역 구분 없이 공격적인 자산 배분을 통해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펀드였다. 인사이트 펀드가 출시되자마자 미래에셋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은 열광했고 보름 만에 3조원어치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제아무리 박현주라 해도 2008년 금융위기를 피할 순 없었다. 출시 1년 만에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면서 인사이트펀드 역시 반 토막이 나는 굴욕을 맛봤다. 투자자는 물론 미래에셋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일간지 광고에 박현주 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인사이트 펀드의 좌절에도 미래에셋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미래에셋은 일찌감치 국내에서 전 세계로 눈을 돌렸다. 2006년 9월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베트남 하노이 사무소 설립을 시작으로 글로벌 영토 확장에 시동을 걸었다. 이듬해 인도와 중국, 영국, 홍콩에 해외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 거점을 빠른 속도로 확대했고, 해외에서 직접 운용하는 해외펀드도 내놨다
미래에셋은 현재 15개국에서 27개의 법인과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안에는 유럽 아일랜드 더블린에 글로벌 트레이딩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해외 인수합병(M&A)도 벼르고 있다.
미래에셋은 2006년 중국 본토의 미래에셋상해타워 인수를 시작으로 부동산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08년에는 부동산114를 인수했다. 2004년 설립한 국내 최초 사모투자펀드(PEF)는 2011년 세계 1위 골프공 업체인 타이틀리스트 인수 성과로 이어진다. 한국 토종 사모펀드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난 순간이었다.
◇ 초대형 IB 시대의 획을 긋다
국내 증권사 자기자본 1위 미래에셋대우의 탄생도 미래에셋의 발자취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역작이다. 박현주 회장은 초대형 투자은행(IB)을 기치로 내걸고 옛 대우증권 인수가격으로 2조4000억원을 서슴없이 써내는 통 큰 베팅을 했다.
자기자본 4위였던 미래에셋증권은 단숨에 1위로 뛰어올랐다. 6조7000억원의 자본금은 경쟁사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규모다.
미래에셋대우가 올해 하반기 초대형 IB 인가를 받으면 발행어음 업무를 할 수 있고, 자기자본 규모를 8조원까지 확대하면 종합투자계좌(IMA) 운용과 부동산담보신탁 등도 가능해진다. IMA는 고객이 예탁한 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으로 미래에셋대우 입장에선 기업금융 등에 필요한 재원을 대규모로 조달할 수 있다.
최근 네이버와의 자사주 교환으로 자기자본이 7조원을 넘어선 미래에셋대우는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을 고려할 때 8조원 돌파도 시간문제가 될 전망이다.
◇ 업(業)을 초월하는 도전
미래에셋은 최근까지도 업을 뛰어넘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6일 미래에셋대우는 네이버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맞교환에 나섰다. 금융과 정보기술(IT) 거물이 맞손을 잡자 이들이 함께 일궈낼 혁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네이버와의 제휴의 표면적인 목적은 국내외 디지털금융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제 막 본격화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려는 박현주 회장의 의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실제로 미래에셋대우는 금융 인공지능(AI) 연구와 국내외 첨단 스타트업 기업 발굴 등도 네이버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네이버 제휴에 앞서 미래에셋대우는 셀트리온과도 대규모 펀드를 결성하는 등 신성장 벤처 산업 투자에 부쩍 공을 쏟고 있다.
◇ 성공신화 계속 이어가려면
미래에셋이 앞으로도 성공 신화를 계속 써갈 것이라는 데는 거의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롯이 박현주 회장 중심으로 거대 금융그룹이 운영되면서 지배구조상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데다 거침없는 성장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래에셋의 성공 출발점이었던 '박현주 1호'만 해도 시기를 잘 타서 성공했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실제로 '박현주 1호' 운용이 시작된 1998년 12월 500선에 불과했던 코스피지수는 1년 뒤에는 1000선을 돌파하며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박현주 1호' 출시 후 석 달 만에 옛 현대투신운용의 바이코리아펀드가 초유의 인기몰이를 하면서 반사 이익을 누렸다는 분석도 있다. 정반대로 인사이트 펀드는 시장의 부진으로 고배를 마신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주회사 규제를 피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미래에셋캐피털이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꼼수를 동원해 지주회사 전환을 늦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내놓은 보고서에 미래에셋의 소유 구조가 비정상적이며 이를 지속할 수 없다고 꼬집은 바 있다.
박 회장의 개인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이 자산운용 계열사들의 펀드가 투자한 호텔 등 부동산 관리 업무를 도맡으면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함께 펀드 투자자들과의 이해상충 가능성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