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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개미 중간결산]②원유 개미, 승부사인가 불나방인가

  • 2020.06.15(월) 13:33

한탕 노린 원유 개미 ETP 시장 쇄도⋯부분 손실 가능성 확대
전산장애·소송전 비화 등 곳곳서 잡음⋯금융당국 대수술 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올해 1분기 중순, 국내에서는 개인 투자자들(개미)의 유례없는 증시 진입이 이어졌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다. 전통적으로 개미들은 '큰 손'인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에 비해 자금 동원력, 투자 지식, 관련 정보 등이 취약해 증시에서는 '필패자'로 통했다. 그러나 코로나 폭락장에서는 양대 투자 세력 없이도 코스피를 2000선 위로 끌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신드롬에 가까운 동학개미운동의 배경과 지난달 말까지 그들의 투자 행적을 쫓으며 중간 결산을 해봤다.[편집자]

주식시장에서 준수한 성과를 올린 동학 개미들이 모든 시장에서 승전보를 울린 것은 아니다. 파생상품시장에서는 패배가 속출하며 참담한 손실이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유례없는 낙폭을 기록한 원유 선물 가격은 개미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했다.

막연한 반등 기대감은 투기적 수요로 이어졌고, 비정상적인 괴리율을 초래했다. 결국 개미들이 몰린 상장지수상품(ETP, ETF·ETN)은 동전주로 전락했고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널 뛰는 원유 가격으로 인해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원유 선물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대로 추락하면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전산 장애를 일으키는가 하면, 이를 기초자산으로 담는 상장지수펀드(ETF)의 월물 비중 조정 과정에서는 운용사와 투자자 간에 소송전까지 벌어졌다.

파생상품시장 전반에 잡음이 일자 금융당국은 결국 메스를 꺼내들었다. 시장 진입 장벽을 대폭 높이고 상품을 발행하고 판매하는 증권·운용사의 책임도 부과했다.

◇ 변질된 동학개미⋯노름판 온상된 원유 ETP 상품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ETP 상품의 거래량은 1분기 말을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ETN의 경우 올해 2월 평균 거래대금이 357억6700만원에 불과했지만 3월에는 1242억6700만원까지 늘었다. 증가폭만 247.4%에 달한다. 4월에도 재차 늘어 약 4126억4000만원 규모의 거래금액을 기록했다.

ETF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내내 월 평균 거래대금이 2조원 수준을 넘지 못했지만 3월에는 6조8500억원까지 뛰어 올랐고, 4월에도 5조4400만원 수준을 나타냈다.

ETN, ETF 모두 5월 들어 진정세를 보이며 거래 규모가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원유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P 상품에 돈이 몰리면서 거래 대금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원유 수요가 줄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경쟁적으로 감산에 돌입하면서 국제 유가 수준을 낮췄다.

사상 유례없이 떨어진 유가가 개미들의 독이 됐다. 레버리지 및 레버리지 인버스(곱버스) 상품에 개미들이 몰려들자 비정상적인 괴리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괴리율이란 시장가격과 지표가치 간 차이를 말한다. 즉, ETN의 시장가격은 실제 지표가치에 비례해 움직여야 한다.

기초자산의 지표가치가 하락하면 ETN의 시장가격도 떨어져야 하고, 오르면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괴리율이 확대되면 적절한 지표가치가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 괴리율이라는 거품이 낀 가격에도 매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의 경우 괴리율이 한때 800%에 육박했고,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은 2000%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나마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괴리율이 비슷한 기간 200%를 넘지 않아 확대폭이 가장 적었다.

문제는 괴리율 확대로 인해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곱버스를 포함한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전액손실 가능성은 낮아도, 이에 준하는 부분손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품 구조 상 해당 상품이 추적하는 지표가치가 0원이 되는 순간 전액손실이 발생한다. 즉, 원유 선물 가격이 오르거나 떨어지면 2배의 수익률이 나도록 설계를 해놨기 때문에 0원에 2배가 되더라도 시장가격은 여전히 0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발생할 확률은 극히 낮다. 해당 상품이 기초자산으로 삼은 각각의 월물 가격이 모두 0원이 돼야 지표가치도 0원으로 떨어지지만 길게는 5~6개월 이후의 월물까지 기초자산으로 나눠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지표가치가 0원으로 맞춰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부분손실 가능성은 있다. 예를 들어 1만원 대를 유지하던 상품의 시장가격이 40% 떨어지면 6000원이 된다. 이 상황에서 원유 선물 가격이 반등해 20% 오르면 6000원의 40%가 오르게 된다. 떨어질 때는 1만원의 40%, 오를 때는 6000원의 40%의 구조이다 보니 시장가격이 큰 폭으로 추락하게 되면 이를 회복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동전주로 전락한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등 원유 선물 레버리지 상품들의 예년 수준 시장가격 회복이 어려운 이유다.

따라서 높은 괴리율 때문에 고점에서 진입한 투자자들의 경우 투자 원금이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3월 중·하순 이후 원유 연계 상품은 개인 매수세가 폭발하면서 사실상 투기판으로 변질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며 "당시 벌어진 괴리율이 금융당국의 조치로 인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기는 했지만 적어도 투자자 스스로 괴리율과 실시간 지표가치를 참고해 이성적으로 투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투자자-증권사·운용사 소송전 비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원유 선물 가격이 전례 없는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지면서 곳곳에서 잡음이 일었다.

지난 4월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37.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40달러를 돌파하기도 하기도 했다.

얘기치 못한 마이너스 유가에 키움증권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말썽을 일으켰다. 키움증권 시스템이 마이너스 호가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롤오버(월물교체)나 매도 청산을 못해 투자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 캐시콜까지 당하면서 소송 움직임도 일었다. 앞서 키움증권 시스템에서는 3월에만 네 차례에 걸쳐 서버 오류가 발생한 바 있다.

운용사와 투자자 간 소송전도 발생했다. 5월물 마이너스 대 폭락에 이어 6월물 가격도 비슷한 조짐을 보이자 해당 상품을 운용하는 삼성자산운용은 월물 비중을 갑작스레 조정했다.

기초 자산 비중이 커 펀드의 시장가격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근월물 비중을 줄이는 대신 원월물을 늘렸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사전고지 없이 기초 자산을 운용사 임의대로 교체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이 때문에 이후 나타난 유가 반등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내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 고강도 규제 칼 빼든 금융당국

이처럼 파생상품시장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나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고강도 규제를 꺼내들었다. 지난달 17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시장건전화 방안은 투자자뿐 아니라 상품을 발행하고, 판매하는 증권사, 운용사에게도 책임을 동시에 부과한 게 특징이다.

우선 투자자들에게는 기본 예탁금 및 신용거래 대상에서 ETP 상품을 제외했다. 이와 함께 온라인 교육도 의무화 했다.

빠르면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이 방안에는 투자자들에게 기본 예탁금 1000만원을 부과하고, 빛내서 ETP 상품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와 동시에 투자자들은 상품개요·특성, 거래방법, 파생형 ETP의 내재위험 등과 관련해 금융투자협회의 1시간 내외의 온라인 교육을 1회 수강해야 거래를 할 수 있다.

증권사와 운용사의 책임도 이르면 다음달부터 강화된다. 그간 ETP 상품에 투자 수요가 몰려 괴리율이 비이성적으로 확대돼도 발행 증권사(LP)에 대한 물량 확보 의무가 없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면 7월부터는 상장증권 총수의 일정비율 이상으로 유동성 공급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LP 평가항목에는 최소 보유물량(20%) 의무 준수 여부도 추가됐다.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신규 ETN 상품출시 기간 제한 등 불이익 조치도 부과된다. 투자자 보호에 필요할 경우 ETN의 조기청산도 7월부터 허용된다. 거래소가 조기청산요건을 심사한 후 제한적으로 실시한다.

이밖에 '일괄신고서 한도소진 전 신고서 제출 금지' 허용, '증권신고서 효력 발생일' 단축, ETN 액면분할, 액면병합 허용 등의 근거도 마련해 진입 장벽을 높이는 한편, 상품을 다루는 금융사의 관리의무도 대폭 강화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근본적인 원인은 '묻지마 투자'로 일관한 투기적 수요와 소극적으로 대처한 발행사에 복합적으로 있는 것 같다"며 "그렇다고 해도 금융당국이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극약처방 수준의 규제를 꺼내든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규제는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들이민 격'이라며 사태의 핵심이 과도한 괴리율에 있는 만큼 시장 전체를 위축시키는 방안보다 핀셋형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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