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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감원장 강조에도…여전히 부족한 운용사 의결권 공시

  • 2024.05.29(수) 10:30

미래에셋운용 가장 충실한 설명... 삼성·한투·키움 등 불친절
'대형사가 인력 부족 탓하나'... 금감원 공시충실도 살펴볼 것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공시 관리 체계를 개선해 '성실한 수탁자'를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올해 '성실한 수탁자'로 평가할 만한 운용사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의결권 사용 이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기재하지 않는 등 부족한 모습이 보였으며, 변한 공시 체계를 여전히 적용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미래에셋운용' 가장 충실한 설명…삼성·한투·키움 '불친절'

29일 비즈워치가 지난해말 기준 주식형펀드 운용자산(AUM) 상위 20개사에 속하는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사용 공시를 확인해본 결과 대부분의 운용사가 구체적인 의결권 사용 근거를 기재하지 않았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자산운용사 의결권 공시 서식을 표준화하고, 자산운용사 의결권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이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국내 23개 자산운용사 대표와 간담회를 열고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강조했다.

간담회에서 이복현 원장은 "최근 개정한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개정을 바탕으로 CEO들이 적극적인 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관련 내규, 프로세스와 조직운영 등의 미비점과 차이점을 살펴봐 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원장의 당부에도 올해 운용사 의결권 행사 운영에 부족한 모습이 보인 것이다.

대표적으로 JB금융지주 주주총회 안건 중 '기타비상무이사를 1인으로 유지'(회사측 안)하는 안건을 들 수 있다. 해당 안건은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제안한 안건(기타비상무이사 2인으로 확대)과 상반되는 내용으로, 이사회 안과 주주제안이 맞붙는 상황이었다.

회사측 안건에 찬성한 운용사는 삼성·미래에셋·삼성액티브·키움·한국투자·한화자산운용이었다. 그러나 판단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회사마다 달랐다.

JB금융지주 주주총회 2-1호 안건에 찬성한 자산운용사별 의결권 판단 사유

미래에셋운용은 의결권 판단에 대한 근거를 가장 충실하게 기재했다. 주요주주(얼라인파트너스)에 의한 경영진과 대주주 감시는 의미있다면서도 주주제안자의 이사를 선임하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 보이고, 대주주가 비상임이사(기타비상무이사)를 지명했다고 다른 주주도 지명해야할 당위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반면 삼성·삼성액티브·한국투자신탁운용은 회사측 안건이 주주권리 침해 가능성이 없다는 단순하고 짤막한 설명만 내놓았다. 주주권리 침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논리는 설명하지 않았다.

키움투자운용은 가장 불친절했다. 운용사 의결권행사 지침 가이드라인에 따랐다고만 언급했다. 키움운용이 언급한 해당 지침을 찾아보면 '이사회 내 위원회의 활동을 제약할 만큼 이사의 숫자를 제한하거나, 개별 이사의 영향력을 무력화할 정도로 많은 이사를 두려는 안에 대해서는 반대 투표한다'고 쓰여있다. 다만 이 지침을 굳이 찾아보더라도 키움운용의 판단근거가 무엇에 기반한 것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핵심 피해가는 모호한 설명…"대형사가 인력 부족탓하나"

찬성이 아닌 반대의견을 냈을 때도 설명의 질적인 내용이 달랐다.

DB하이텍 주총 안건 중 이사의 수를 '4인 이상'에서 '4인 이상~8인 이하'로 상한을 제한하는 정관변경에 대한 의결권 사용 내역을 살펴봤다.

올해 DB하이텍 주총에서는 KCGI와 소액주주연대가 주주제안으로 2명의 이사후보 선임 안건을 올렸다. 현재 이사회 구성원은 총 6명인데 회사측은 한명의 이사를 추가 선임하는 안건을 제시했다. 만약 이사의 수를 8인 이하로 제한하면, 회사 측 후보 1명을 먼저 선임시 주주제안 후보는 2명중 1명만 선임해야 한다.

회사 측은 효율적 경영을 위해 이사의 수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안건 통과시 KCGI와 소액주주연대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하기 어렵게 될 수 있었다.

이 안건에는 삼성·미래에셋·신한·KB자산운용 등 모든 운용사가 반대했다. 하지만 의결권 행사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역시나 제각각이었다.

DB하이텍 주주총회 2-2호 안건에 반대한 자산운용사별 판단 사유

미래에셋운용은 JB금융지주 사례와 마찬가지로 DB하이텍 안건에서도 다른 운용사와 달리 가장 상세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장기간 이사회 규모를 4인이상으로 규정해온 회사(DB하이텍)가 작년에 이어 이사선임 주주제안이 제출된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 규모의 상한을 두려는 것은 주주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KB운용과 신한운용은 미래에셋운용만큼 충실하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취지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반면 삼성운용은 이사의 수가 과소 또는 과도하면 이사회 활동이 제약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설명만 내놓았다. 현재 DB하이텍 이사회 정원이 과소하단건지 과도하단건지 파악하기 어렵다. 핵심을 피해가는 모호하고 불친절한 설명이다. 

지난해 금감원이 표준화한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공시 서식 및 방법은 금융투자업규정시행세칙으로 정하고 있다. 세칙에 따르면 자산운용사는 의결권행사 및 불행사 사유에 대한 판단근거를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

다만 앞선 사례처럼 운용사별 사유 기재에서 상세한 정도는 모두 달랐다. 이에 최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국내 자산운용사가 의결권을 행사한 내역을 상세히 고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버넌스포럼은 "이사회안과 주주제안이 맞붙는 상황은 1년에 몇 건 되지 않음에도 의결권 행사 사유가 불분명하고 부족하다"며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인력이 부족해서 몇 건 되지 않는 주주제안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상세 근거를 공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에서는 의결권 행사 사유의 충실도를 살펴보겠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시장에 의결권 사용 내용을 충실히 기재하면서 운용사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으로 별다른 조치 사항은 없다"며 "다만 지난해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구체적인 공시를 요구한 만큼 공시를 살펴보고, 판단 사유를 충실하게 기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수정을 유도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올해부터 적용한 공시 서식…실제 적용은 혼란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개정한 금융투자업규정시행세칙 중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공시 서식은 크게 2가지가 바뀌었다.

먼저 표 서식이 변경됐다. '의안'을 '의안 유형'과 '의안명'으로 나눠 공시를 확인하는 투자자가 의안에 대해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쉽도록 바꿨다.

또 단순히 서식만 있었다면, 개정 이후에는 구체적인 기재 방법론을 설명했다. 안건제목이 자세하게 적혀있지 않아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는 정관변경 내용, 이사회 및 감사위원 후보자의 이름 등을 기재하도록 한 것이다.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및 공시 관련 공시서식 개정 전 후 비교

다만 일부 운용사는 이처럼 개정된 서식을 반영하지 않았다. 기존처럼 의안만을 적고, 자세한 내용을 표시하지 않아 공시를 통해 어떤 안건을 다룬 건지 알기 어렵게 했다.

JB금융지주 주총을 예시로 보면 정재식 사외이사 후보를 선임하는 안건에 대해 삼성자산운용은 '제 3-1-2호 의안 : 사외이사 선임 (정재식)'으로 적었다. 그러나 키움운용은 '3-1-2. 사외이사 선임'으로 적었으며, 한투운용은 안건번호도 없이 '사외이사 선임'으로만 기재했다.

서식에서 규정하지 않았지만 의안 내용을 파악하기 쉽게 상세히 적은 사례도 있었다.

같은 안건에 대해 미래에셋운용은 '제2-1호 의안 가결시: 이사 선임의 건 (5명선임, 집중투표) - 사외이사 후보 정재식 선임의 건'으로 명시했다. 먼저 앞선 안건이 통과할 때 투표가 가능하다는 정보를 추가했으며, 집중투표로 5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안건이라는 내용도 함께 담았다.

같은안건에 대해 자산운용사별로 서로 다른 공시 양식

대부분 운용사는 개편된 공시 서식을 반영하지 않았다. 집중투표를 공시할 때는 보유주식수는 동일하게 기재하되, 표를 행사한 후보에 대해서는 실제 찬성주식수를, 행사하지 않은 후보에 대해서는 보유주식수 만큼 반대주식수에 기재하도록 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서식에 따라 공시한 미래에셋·한화운용 외 대부분의 운용사는 표를 행사하지 않은 후보에 대해 '불행사'라고 공시했다. '불행사'로 공시할 때도 보유주식수를 적은 운용사도 있었으나, 공란으로 기재한 곳도 있는 등 공시 방식이 혼재됐다.

집중투표 안건을 반영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집중투표제는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주주에게 추가 의결권을 주고, 보유한 의결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3명의 후보 중 2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면 보유한 의결권의 2배만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KB운용은 올해 집중투표를 실시한 KT&G 주총에서 보유한 주식 22만4631주를 3명 후보에 모두 동일하게 사용했다고 공시했다. 실제 사용 가능한 의결권은 보유 주식수의 2배인 44만9262주인데 총 67만3893주를 사용했다고 공시한 것이다. 이는 공시 작성을 실수한 것으로, 이에 KB운용은 공시를 정정해 해당 내용을 고쳤다.

다만 개정한 집중투표 공시 방식에 대해 일부에선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운용사가 특정후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단 1주도 찬성표를 내지 않았다면 '반대'로 기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용사의 판단에 대해 투자자가 혼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KT&G 주총에서 트러스톤운용은 3명 중 2명의 후보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이사회 견제 차원에서 주주제안 후보에게 표를 몰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공시에서 '반대주식수'에 표기하지 않고 의결권 내역을 모두 공란으로 남겨뒀으나 서식에 따르면 반대에 보유주식수를 적었어야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 정보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의 편의성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반대주식수에 보유한 주식수를 적어 실제 보유한 주식수를 계산하기 쉽게끔 서식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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