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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남은 고려아연 임시주총...최윤범 '노림수'와 MBK '경우의수'

  • 2024.12.25(수) 09:30

임시주총 안건 변경…집중투표 도입·이사수 상한 제한
'3% 룰' 적용하는 집중투표 도입…가결 가능성 있어
가결시 영풍·MBK 연합 단번에 이사회 장악 불가능
고려아연측 이사 5명 임기만료…정기주총에서 연장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인 임시주주총회(2025년 1월 23일)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주총 안건 정정공시를 통해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회 정원을 19명으로 제한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추가했다. 집중투표를 실시하면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MBK파트너스(이하 MBK)측 이사 후보 14명 모두 이사회로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겨냥한 전략적 판단이다.

그렇다고 영풍·MBK측 이사진 진입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경영권 분쟁은 이번 임시주총을 너머 정기주총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임시주총 이후 양측의 합의가 없다면, 내년 3월 열릴 정기주총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측 이사진 5명이 임기만료여서 또한번 이사선임을 놓고 표대결을 펼쳐야 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최윤범 회장이 집중투표로 노리는 것?...'영풍·MBK 이사회 최소 진입'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3일 고려아연은 임시주총 안건을 정정한다고 공시했다.

고려아연은 정정 공시를 통해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의 수 상한 설정, 주식 액면분할, 배당기준일 변경, 회사측 추천 사외이사 후보 등을 추가했다. 주목할 안건은 영풍·MBK와의 경영권 분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집중투표제 도입 및 이사수 상한 설정이다. 모두 정관을 바꿔야하는 안건이다.

집중투표제는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투표권을 주고, 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구도는 영풍·MBK 측 46.71%(자사주 제외 의결권 지분 기준), 최윤범 회장 측 19.96%(기타 우호지분 제외)다. 이를 단순화해서 영풍·MBK가 47주, 최 회장측 20주를 가지고 있고, 10명의 이사를 선임한다고 가정해보자. 

집중투표 방식이므로 의결권은 영풍·MBK 470개, 최 회장측은 200개가 된다. 양측의 후보가 몇 명이든 한 번의 투표로 동시에 10명을 다득표 순으로 선출한다. 

영풍·MBK가 만약 10명 모두 자기사람으로 선임하려 한다면 의결권을 각 1명당 47개씩 분산 투표해야한다. 반면 이미 기존 이사진 다수를 확보중인 최 회장 측은 예컨대 전략적으로 단 4명의 자기사람만 신규 선임하고자 할 수 있다. 이때는 각 1명에게 50개씩 투표하면 된다. 자신들이 추천한 나머지 후보에는 표를 행사하지 않는다. 이렇게하면 최 회장 측은 다득표로 신규 이사를 추가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영풍·MBK측 이사진 중 적어도 몇 명은 선임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최윤범 회장이 집중투표 도입을 통해 노리는 것은 영풍·MBK측 이사진의 진입을 현실적으로 모두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대한의 방어를 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경영권 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가면서 여론전을 지속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를 보호하고 최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다. 그동안 영풍·MBK를 향해 경영자의 입장에서 '적대적 M&A'란 표현을 써온 최윤범 회장 측은 역설적으로 본인이 소수주주임을 인정한 셈이기도 하다. 집중투표 도입 '통과' 가능성...이사수 상한 제한 '부결' 가능성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려면, 먼저 집중투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 안건이 통과돼야 한다.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뒤 곧바로 이를 활용해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법적 논란은 있다. ▷관련기사: 임시주총 조건부 집중투표…고려아연 '적법' vs MBK '법률 위반'(12월 24일)

다만 법적 논란은 논외로 치고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 통과가 가능한지 따져보면, 3%룰 적용이 변수다. 3%룰은 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주주별로 최대 3%(의결권없는 지분 제외한 주식총수의 3%를 의미)까지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의결 방식이다.

비즈워치가 3%룰 적용시 의결권을 파악한 결과, 영풍·MBK는 이 안건 표결만큼은 의결권을 대량 잃게 된다. 영풍·MBK는 보유주식(848만1234주) 가운데 251만2708주만 사용할 수 있다. 최윤범 회장 측은 보유주식(361만6129주)은 더 적지만, 이 주식 전부를 사용할 수 있다.

3%룰 적용시 '분모'에 해당하는 발행주식총수 역시 3% 초과분은 제외한다. 따라서 지분율 기준으로는 대략 영풍·MBK는 26%, 최윤범 회장 측은 37% 의결권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일시적인 전세 역전구도가 펼쳐지는건 영풍·MBK 측은 개별지분율 3%를 초과하는 주주(영풍, MBK, 장형진)가 많은 반면 최윤범 회장 측은 단 한명의 주주도 3%를 넘지 않고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윤범 회장 측은 한화 등 우호세력의 도움 없이도 단독으로 영풍·MBK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확보한다.

다만 정관변경 자체는 특별결의 사항이어서 출석주식수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최 회장 측 단독으로는 이를 넘지 못한다. 안건 가결을 위해서는 다른 주주들도 집중투표 도입에 찬성해야한다는 얘기다. 캐스팅보트 중 한 곳인 국민연금은 '찬성' 가능성이 있다.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원칙을 보면, 집중투표 배제에 반대하고 도입에 찬성한다. 따라서 국민연금과 함께 다른 주주들도 호응한다면 안건은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집중투표제 도입과 달리 이사회 정원을 19명으로 제한하는 정관변경 안건은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안건은 3%룰 적용을 하지않는 일반적인 특별결의로 결정한다. 출석주식수의 3분의2가 찬성해야한다. 바꿔말하면 3분의1 이상이 반대하면 부결이다.

최윤범 회장 중심의 현 고려아연 이사회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영풍·MBK는 일단 다수의 이사를 이사회로 진입시켜야한다. 따라서 이번 주총에서는 이사수 상한 제한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영풍·MBK의 지분만으로도 3분의 1은 물론이고 과반에 육박하는 47%에 달하기 때문에 즉시 부결될 안건이다.이사선임 방식 '경우의수' 네가지…누구에게 무엇이 유리?

이번 임시주총은 집중투표 도입, 이사수 상한 제한을 위한 정관변경을 먼저 진행하지만 역시나 핵심은 이사선임 안건이다. 누가 더 많은 이사를 선임하는지, 그에 따라 최종적으로 이사회의 과반을 누가 장악하느냐가 경영권 분쟁의 승패를 가른다.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뒤 곧바로 이를 활용해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란은 분명히 있지만, 다시한번 논외로 하고 '경우의수'만 따져보기로 한다.

영풍·MBK는 이미 14명의 이사후보를 제안했고, 최윤범 회장 측은 새롭게 7명을 추가로 올렸다. 총 21명의 이사 후보를 놓고 표대결을 진행하는데 집중투표, 이사수 상한을 위한 정관변경 통과 여부에 따라 표결 방식은 네 가지로 나뉜다.

주총안건 순서상 2호 안건이다. 집중투표 도입, 이사수 상한(19명) 모두 통과를 전제로 한다. 이때는 21명에 달하는 양측 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다득표자 7명을 선임한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13명이지만, 임시주총일 1명의 사외이사가 사임할 예정이라 7명을 추가 선임하는 것이다. 최윤범 회장이 가장 선호할 방식이지만, 이사수 상한 안건 부결이 예상되므로 이 안건은 자동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주총안건 순서상 3호 안건이다. 정관변경 중 집중투표 도입 가결, 이사수 상한 부결을 전제로 한다. 이때는 이사선임에 앞서 이번 임시주총에 한해 몇 명의 이사를 뽑을지 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집중투표가 표를 많이 얻은 순서에 따라 차례로 이사를 선임하는 방식이어서 '몇명'을 선임할지를 먼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사 후보에 오른 모든 사람이 선임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번 주총에서 이사를 7명(3-1-1호 안건) 선임할 지, 또는 14명(3-1-2호 안건) 선임할지 투표한다. 투표를 통해 많이 나온 방식으로 이사 선임을 진행한다. 현실적으로 가능성 높은 방식이다. 

 주총안건 순서상 4호 안건이다. 정관변경 중 집중투표 도입 부결, 이사수 상한(19명) 가결을 전제로 한다. 현실 가능성이 매우 낮아 자동 폐기 유력 안건이다.

 주총안건 순서상 5호 안건이다. 집중투표 도입, 이사수 상한 모두 부결 상황을 전제로 한다. 이 경우 일반적인 보통결의 방식, 말 그대로 100% '찐' 표대결 상황이다. 영풍·MBK가 가장 원하는 상황이자, 최윤범 회장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경우의수'이다.

결론적으로 최윤범 회장은 최대한의 방어를 위해 집중투표, 이사수 상한이라는 두 가지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경우의수'를 결정하는건 다른주주, 특히 영풍·MBK 몫이다.

영풍·MBK 입장에서는 최윤범 회장 측이 주총 안건을 수정하기 전, 원안대로 집중투표 및 이사수 상한 모두 없이 오직 표대결로만 승부하는 '네번째 경우의수'(5호 안건)를 가장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출석주주 과반 동의를 얻는 보통결의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방식이다. 

현재 영풍·MBK는 의결권 47% 가량을 확보하고 있어 주총 참석률에 따라 최윤범 회장 측 이사 후보를 배제한 채 자신들의 후보 14명을 모두 선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임시주총 직후 곧바로 이사회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가장 기피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이사수 상한 정관변경은 영풍·MBK가 단독으로 가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집중투표 도입은 3%룰에 따라 영풍·MBK 손을 떠난 사안이다. 특히 국민연금 등이 이사선임 투표 방향과는 별개로 집중투표 도입 자체는 찬성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번 임시주총에서 이사선임 방식은 '두번째 경우의수'(3호안건)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이번 임시주총에 한해 이사 7명을 선임할 지, 14명을 선임할 지 먼저 정한 후 투표에 들어가야 한다. 이는 둘 중 많은 표를 얻은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이어서 의결권 47%를 가진 영풍·MBK가 선택의 '키'를 쥐고 있다.

'네번째 경우의수'(5호 안건)를 제외하면, 이번 임시주총에서 영풍·MBK 측 후보가 모두 선임되고, 최윤범 회장 측 후보는 모두 부결되는 '모 아니면 도' 상황은 나타나기 어려워 보인다. 경영권 분쟁이 끝나지 않고 장기전으로 접어드는 상황이다.장기전 접어드나...양측 합의 없다면 정기주총서 재대결

물론 어떤 '경우의수'라도 영풍·MBK측 이사진이 일부 고려아연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도 필연적인 수순이다. '불편한 동거'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고려아연 측이 최근 공식적으로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MBK·영풍이 이번 임시주총을 계기로 회사의 미래와 발전을 고민하는 파트너로서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하는 '행간의 의미'도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읽힌다.

임시주총이 끝나면 곧바로 3월 정기주총이 열린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측 이사진 가운데 5명(박기덕, 최내현, 김보영, 권순범, 서대원)의 임기가 끝난다. 1월 임시주총과 3월 정기주총의 개최 시점은 두달 정도 차이가 있지만, 주주명부 폐쇄일은 불과 닷새 차이(주식거래일 기준)로 실질적인 의결권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1월 임시주총에서 영풍·MBK 측 이사 중 일부가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이 필연적인 상황에서 양측의 대승적 합의가 없다면, 3월 정기주총에서 또한번 표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집중투표를 경영권 방어에 쓰는 사례...국민연금 판단은?

한편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해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보호하려고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최윤범 회장이 의결권 기준 지분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집중투표제를 활용하려 한다"며 "겉으로는 주주 보호를 운운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본인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제도를 남용하는 것과 동일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회사와 주주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이든 수용하겠다는 것이 고려아연 이사회와 경영진의 진심"이라며 "영풍·MBK의 집중투표제 비난은 주총에서 이사회를 장악하는 데 장애라는 판단에 기인하는 듯하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가 가능하도록 회사의 정관을 변경한 후 곧바로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영풍·MBK는 이러한 안건 처리는 상법과 자본시장법을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주주명부 폐쇄일(12월 20일) 이전 해당 안건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문제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정관 변경이 가결되는 것을 조건으로 후속 안건을 제안하고 주총에 상정하는 것은 절차적·실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제안한 주주는 유미개발이다. 그러나 고려아연 지분 1.63%를 가진 유미개발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 건물임대업체여서 사실상 최 회장이 유미개발 이름으로 상정한 안건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집중투표제 배제에 반대하고 도입에 찬성한다고 했지만,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단서조항도 있다.

이번 고려아연 임시주총은 우리 자본시장 역사에서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집중투표 제도를 경영권 방어에 쓰는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정당한' 사유인지 아닌지 국민연금의 최종 판단도 주목할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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