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집중투표 제안 늑장공시 논란...규제 허점 파고든 고려아연

  • 2024.12.30(월) 10:00

최윤범 회장 가족회사 '유미개발'이 주주제안
집중투표 제안했지만 이사 후보 추천은 안해
작년 금감원 '주주제안 수시공시' 검토후 보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임시주주총회에 앞서 가족회사 유미개발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제안한 것을 두고, 규제 사각지대를 활용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임시주총 안건 정정공시를 통해 2주 전 집중투표제 도입 관련 주주제안을 받은 사실을 밝혔다. 회사 측은 법적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고려아연이 의도적으로 주주명부 폐쇄일(12월 20일) 이후 공시했다고 본다. 이러한 행위는 주주 판단에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시장에선 고려아연이 공시 규제의 사각지대를 파고든 사례로 본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주주제안 수시공시' 방안을 검토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초안보다 규제 수위를 낮췄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집중투표 제안한 유미개발, 최 회장 가족회사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유미개발이 주주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을 다음달 23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한다고 밝혔다.

주주제안자인 유미개발은 최윤범 회장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부동산임대업체다. 최 회장의 모친인 유중근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경원문화재단(25.73%)이 최대주주이며, 최 회장을 비롯한 그의 직계가족과 삼촌·사촌 등 친척들이 지분 대부분을 갖고있다. 최 회장은 유미개발의 등기임원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최 회장이 사실상 유미개발의 이름을 빌려 주주제안한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고려아연은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안건이 주총을 통과한다는 것을 전제로한 이사 선임안까지 주총에 올렸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여러 명의 이사 후보가 있을 때 표를 몰아주거나 분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미개발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안만 제안하고 이사 후보를 따로 추천하지 않았다. 보통 행동주의펀드 등 주주들이 집중투표제를 제안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할 이사 후보까지 직접 추천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법적 절차 정당" vs "주주 판단에 영향"

이와관련 고려아연은 법적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설명에 따르면 유미개발은 임시주총이 열리기 6주 전인 12월 10일 주주제안을 했다. 상법상 주주제안은 주총 6주 전까지 회사에 제기할 수 있고, 회사는 주총 2주 전까지만 주총안건과 주총 날짜를 알리면 되기 때문에 절차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아연이 최 회장의 가족회사 유미개발의 주주제안 접수 이후 2주의 시간이 지나 뒤늦게 투자자들에게 알린 것도 사실이다. 2주의 시간에는 주주명부 폐쇄일(12월 20일)도 포함되어 있다.

경영권 분쟁 상대인 영풍·MBK 측은 "집중투표안건과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선임 안건 상정 사실을 몰랐던 주주들의 판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주주권 행사에도 제약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에 정통한 익명의 변호사는 "집중투표제를 직접 제안할 수 있지만 미리 공시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부딪힐 수 있어 유미개발을 거쳐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 수시공시 검토했다가 '톤다운'...규정 허점 이용

고려아연이 주주제안 내용을 늦게 공시한 것은 현행 공시규정의 사각지대를 활용한 것이다. 즉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금감원은 지난해 주주제안 접수시 거래소 수시공시를 통해 즉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주주 제안자와 내용, 취지 등 주요 내용도 기재하는 것을 함께 검토했다. 주주제안 시점(주총 6주 전)과 이 사실을 공시해야하는 시점(주총 2주 전) 사이 한 달의 시간 차가 있어 소수주주들이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관련 규정 손질을 검토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그대로 시행했다면, 고려아연은 유미개발의 집중투표 주주제안 사실을 적어도 주주명부 폐쇄일 이전에는 공시해야했다. 다만 금감원은 검토결과 기업 부담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해당 안을 보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작년에 소수주주권을 넓게 살펴보는 과정에서 (주주제안 수시공시도) 살펴봤다"며 "다만 회사가 주주제안을 받으면 요건이 충족하는지 법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금감원은 올해 4월 공시서식 작성기준을 개정, 주총에 앞서 제출하는 사업보고서에 주주제안 등 소수주주권 행사 현황을 충실히 기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금감원은 4월 당시 공시서식을 개정하면서 "소수주주권 행사에 대한 처리경과와 논의내용을 적시에 충실히 공시할 수 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사례는 이러한 규제 완화 허점을 파고든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아연 임시주총처럼 주총이 사업보고서 제출 일정과 가까이 있지 않다면 실효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주제안에 대한 공시 강화를 다시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주주제안을 즉시 공시하는 것을 포함해 회사가 주주제안을 거부하는 사유, 주총 표결 결과 등 투자자에게 유의미한 정보를 즉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