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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가처분 기각, 적절성 인정 어려워"

  • 2025.01.06(월) 07:20

상법 전문가 이상훈 저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주주충실의무 없는데 미국 유노칼 사례 원용할 수 없어"
"재판부, 경영진의 이해상충 해소 여부 문제삼지 않아"

지난해 10월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자사주 공개매수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한 것과 관련, 적절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상법 전문가의 해석이 나왔다. 

현행 상법에서는 경영진에게 주주간 이해상충을 해소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고려아연 측이 방어논리로 제시한 미국 유노칼 판례를 그대로 인용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작년 10월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고려아연 자사주 취득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발언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상훈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발표한 저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에서 작년 10월 영풍이 제기한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금지 가처분 신청 관련 법원의 결정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영풍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회사에 대한 배임 행위라며 절차를 중지해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은 자사주 소각을 전제하고 있어 자사주 공개매수를 배임으로 보긴 어렵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매입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한 행위'라는 명분을 제시했는데, 이는 1985년 미국 유노칼(Unocal) 판례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메사 페트로리움이 유노칼 주식 공개매수를 선언하자, 유노칼 이사회는 메사 페트로리움을 제외한 일반주주들을 대상으로 자사주 공개매수를 결정했다. MBK-영풍의 공개매수 선언 이후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수로 맞선 흐름과 같다.

당시 메사 페트로리움은 유노칼의 공개매수 대상에서 본인이 보유한 주식이 빠졌다며 자사주 매입을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델라웨어주 법원은 '공개매수로 회사에 실질적 위협이 가해졌는지',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의 수위가 적절했는지' 두 가지를 주요 쟁점으로 두고 심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델라웨어주 법원은 유노칼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독립이사 8인이 포함된 유노칼의 이사회 구성이 이해상충 우려를 해소했다고 본 것이다. 이해상충이란, 이사회 등 결정권자가 권한과 정보를 이용해 회사에 불리할 수 있는 거래를 체결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고려아연도 유사한 논리를 제시했다. MBK파트너스·영풍의 공개매수를 적대적 M&A로 취급하고, 이들의 지분을 뺀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을 사들이는 공개매수가 회사와 주주 이익에 적합하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상훈 교수는 고려아연 판결에서 유노칼 사례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봤다.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과 달리, 국내 상법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인정하지 않다는 것이 인식의 출발점이다.

이 교수는 주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주주 이익을 보호한다는 논리는 모순적이며, 경영진이 주주에 대한 이해상충 해소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 회사나 주주 이익을 위한 경영판단인지 검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은 전문경영인 체제인 반면 고려아연은 총수 체제이기 때문에 유노칼 사례의 논리를 인정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봤다. 

다만, 주주 충실의무가 없는 상황에서 MBK파트너스·영풍의 가처분을 인용하기도 힘들다는 한계도 있다. 이해상충 여부를 따질 수 없는 탓이다. 실제로 고려아연 건을 다룬 재판부는 이해상충 해소 여부를 문제삼지 않았다. 

이 교수는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판결과 관련 "경영진에게 주주에 대한 이해상충 해소를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으니 경영판단에 대한 기준과 유사한 형태로 접근한 판결의 논리 자체를 탓할 수 없다"면서도 "그 결론의 적절성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영진의 이해상충 해소를 강도 높게 요구할 수 있도록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조속히 도입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총수의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과도하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짚었다.

자사주매입은 매입 물량이나 지배주주의 지분율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지만 통상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특히 고려아연과 같은 지분경쟁 상황에서는 자사주매입이 적대적 인수시도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 만일 고려아연이 자사주매입 비용을 일반주주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로 메웠다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았던 주주들이 경영권 방어 비용을 떠안아 피해를 입는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한 뒤 이를 소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잠재적인 적대적 M&A 시도를 봉쇄하는 '포이즌 필'과 유사한 강력한 효과를 갖게 된다"며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한다면 이같은 행위들이 견제되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정립되겠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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