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1시30분 코스피 2290포인트. 드디어 국장에서도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진입할 시점이 다가왔다는 판단이 섰다. A 증권사 MTS를 통해 코스피 레버리지 ETF를 매수 주문을 넣었지만 실패했다.
레버리지 상품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금융투자협회의 금융투자교육원에서 진행하는 '레버리지 ETF/ETN 교육'을 수료한 후 수료번호를 등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수료 명목의 3000원과 교육 이수 시간 1시간을 소비했다.

오후 3시 코스피 2289.34포인트.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주문을 넣었다. 또다시 실패였다. 이유는 기본예탁금(1000만원) 부족. 정규 주식시장 시간이 30분 남은 시점에서 기본예탁금 규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분명 계좌에는 1000만원이 들어있는데 왜 결제가 안 되는 것일까. 다급하게 고객센터에 문의했다. 고객센터 상담원의 대답은 "기본예탁금에는 달러가 포함되지 않음에 따라 달러를 제외한 원화 예탁금이 1000만원 미만"이라는 것이었다. 아뿔싸. 트럼프 풋을 기대하며 원·달러 환율이 낮아질 때마다 원화를 달러로 바꿔놓은 내 실수였다.
남은 주식거래 가능 시간은 단 5분. 다른 계좌에 있는 원화를 끌어모으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주식시장은 폐장하고 밤사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0일간 상호관세 유예'를 선언했다. 간밤 미국 주식시장은 폭등했고, 국내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의 프리마켓도 들썩였다.
10일 오전 9시30분 코스피 2395.13포인트. 전날보다 4.42%(191.43) 상승 출발한 후 오후 1시30분 2421.65포인트(전날 대비 5.53% 상승)까지 치솟았다. 하루 간 코스피 레버리지 ETF 상승률은 11%를 웃돌았다. 같은 시간 KODEX 레버리지는 전날보다 11.6% 오른 1만4190원, TIGER 레버리지는 11.26% 오른 1만4035원, ACE 레버리지는 11.61% 오른 5770원에 거래 중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누구를 탓하랴. 해외 상장 ETF는 '허들 없는데'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0년 5월 'ETF·ETN 시장 건전화 방안'을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레버리지 ETF로의 과도한 쏠림 현상이 발생했다는 이유였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ETF 중 2020년 1월 레버리지 ETF 거래 비중은 38.1%, 2월 51.1%, 3월 65.5%에 달했다.
상품 위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투자자들의 추종 매매가 급증하자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레버리지 ETF·ETN을 매입할 때 기본예탁금 1000만원을 예치토록 하고 상품 특성에 관한 금융투자협회의 온라인 교육 이수를 의무화했다.
기본예탁금은 파생상품을 거래할 때 투자자의 무분별한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허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다. 기본예탁금은 파생상품 거래 시 증거금으로도 활용된다. 증거금은 선물거래 이후 결제를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을 대비해 미리 받아두는 일종의 보증금 성격의 금액이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파생상품 기본예탁금 제도를 차용해 레버리지 ETF 시장에 적용했다. 그러면서 "원본초과 손실 가능성이 있는 파생상품에 비해 거래방식이 단순하고 상대적으로 투자 위험이 낮은 만큼, 모의거래는 실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제는 해외에 상장된 ETF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국내 투자자가 해외 상장 ETF를 매입하는 데는 아무런 규제가 따르지 않는다. 이에 국내 투자자들의 시선이 해외 상장 ETF로 쏠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으로 한 달간 개인 순매수 결제가 가장 많은 해외 투자상품은 'SOXL(디렉션 데일리 세미 컨덕터스 불)'이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상품으로 한 달간 개인 순매수액이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입장이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1000만원을 예탁하지 못하는 투자자는 국내 레버리지 ETF를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외국 상장 ETF는 매입할 수 있는데 국내만 안되는 것도 타당성이 부족하다"며 "관련 규제를 손질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레버리지로 쏠리는 서학개미
단일종목 ETF가 관심을 끄는 가운데 금융당국에서 관련 레버리지 상품 출시를 금지하면서 시류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규정에 따르면 ETF가 추종하는 지수는 10종목 이상이어야 하며 한 종목이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이면 안 된다. 또 2배를 초과하는 레버리지 발행도 금지된다.
반면 미국에서는 단일주식 가격을 2배로 추종하는 ETP(상장지수증권) 상장이 가능한 가운데 지수를 추종하는 3배 ETF도 상장돼 있다. 영국에서는 단일주식 가격을 3배로 추종하는 ETP를 상장할 수 있는 가운데 지수를 추종하는 경우 5배 레버리지도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이에 국내 투자자들의 시선도 해외로 쏠리고 있다. 세이브로에 따르면 SOXL 외에도 테슬라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TSLL의 한 달간 개인 순매수액은 8100억원(3위), 나스닥100을 3배로 추종하는 TQQQ의 순매수액은 7800억원(4위), 엔비디아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NVDL 순매수액은 930억원(16위)에 달한다.
국내 레버리지 ETF 매입 규정이 까다로운 가운데, 상품 다양성도 떨어지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탈출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레버리지 ETF에 대한 규제가 엄격함에 따라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펀드 내에서 분산투자 요건을 충분히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해외 트렌드는 개별 ETF에 대한 레버리지 상품"이라며 "이 같은 상품을 국내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엄격한 제도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