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다음달 23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을 추진한다. 아울러 정관변경 가결 즉시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선임을 진행하는 내용의 주총안건도 발표했다. 집중투표 가결을 전제조건으로 후속안건(이사선임)까지 동시에 제안하는 이른바 '조건부 집중투표'다.
MBK파트너스는 이러한 안건 제안은 상법과 자본시장법을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주주명부 폐쇄일(12월 20일) 이전 해당 안건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문제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3일 고려아연은 내년 1월 23일 열리는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추가했다. 이는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에 따른 안건 추가다. 고려아연 지분 1.63%를 가진 유미개발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 건물임대업체여서 사실상 최 회장 측이 제안한 안건이다.
고려아연은 집중투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 안건뿐만 아니라 정관변경 안건 가결을 조건으로 한 이사선임 안건도 추가했다. 집중투표제가 가능하도록 회사의 정관을 변경한 후 곧바로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겠다는 의미다.
고려아연이 추가한 해당 안건에 대해 MBK는 법률 위반이라는 법조계 의견을 제시했다.
MBK가 제시한 법조계 관계자는 "유미개발의 주주제안 중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한 정관변경을 내용으로 하는 주주제안은 유효하더라도, 집중투표제 방식의 이사 선임 청구를 내용으로 하는 주주제안은 효력이 없다"는 의견을 냈다.
현재 고려아연 정관에는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이 상황에서 유미개발이 임시주총에서 정관 변경(집중투표제 도입) 가결을 조건으로 바로 연이어 집중투표제 방식의 이사 선임을 청구했고, 고려아연이 이를 받아들여서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 선임 결의를 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집중투표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하는 '시점'에는 정관상 집중투표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해당 법조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 도입을 전제로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을 청구한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은 주주평등의원칙을 위반하고 의결권 행사의 결과를 조작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며 "이는 영풍의 임시주총소집청구권을 침해한 것으로 회사는 상법(제542조의7 제1항) 규정을 지키지 않은 주주의 집중투표청구를 받아들여 이를 전제로 한 의안을 상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적법한 절차라고 반박하고 있어 이를 두고 또다른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고려아연은 정관에서 집중투표를 배제하고 있는 경우에도 주주는 회사에 집중투표를 도입하는 내용의 정관변경 안건을 주총 목적 사항으로 할 것을 제안하는 것은 적법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관변경 가결을 조건으로 바뀐 정관에 따라 집중투표청구를 주주제안할 수 있고, 회사는 이를 주총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이라고 제시했다.
고려아연 측은 "법조계 해석과 실례 등에 따르면 주총에서 정관 변경 안건은 가결되는 즉시 정관 변경의 효력이 발생한다"며 "따라서 정관 변경이 가결되는 것을 조건으로 후속 안건을 제안하고 주총에 상정하는 것도 절차적으로나 실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MBK는 고려아연이 임시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주주를 정하는 주주명부 폐쇄일(12월 20일)까지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을 알리지 않은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중투표 도입 및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선임을 할 것을 몰랐던 주주의 판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주주권 행사에 제약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또 주주명부 폐쇄일 이전 최윤범 회장 및 특수관계인이 집중투표제를 대비해 지분을 매집했다면, 다른 투자자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채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정보를 본인들만 인지한 상태에서 거래한 것으로서 이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시장질서 교란행위 등의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