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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Go]어색할듯한 '인문학-AI' 짜릿한 만남현장

  • 2018.03.13(화) 17:20

AI인문학연구단 출범, '위기' 돌파 노력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 재해석 눈길

'워치 Go'는 비즈니스워치 기자들이 취재 현장 외 색다르고 흥미로운 곳을 방문해 깨알 정보를 살뜰하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이번에 찾은 곳은 '인공지능 시대, 인간성의 재해석'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 중앙대 인공지능인문학 연구단의 발표회입니다. AI와 인문학의 특별한 만남의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편집자]
  


문과대 출신으로는 어울리지 않게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10여년간 취재해온 기자의 근원적 물음 가운데 하나, "왜 공대생만 인공지능(AI)을 연구하지?" 입니다. 물론 인공지능은 자연어 처리와 머신러닝 등 컴퓨터 전산 이론과 시스템 설계를 기반으로 한 첨단 기술이라 엔지니어들의 전공 영역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바라보는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사람입니다. AI와 인간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은 AI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공상과학(SF) 영화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성찰의 작업인 인문학이야말로 AI 연구의 적임 아니겠습니까. 역사학자, 철학자, 문학가들이 가열차게 파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인문학계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차이는 무엇이며, 인공지능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새로운 종(種)으로서 포스트 휴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마침 관련된 연구단이 출범한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중앙대는 지난 10일 서울 흑석동 캠퍼스에서 '인공지능인문학 연구단' 출범식 겸 학술대회를 개최했는데요. 어려운 주제라 발표 내용이 다소 딱딱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빠져 들었습니다.

 

◇ "무한질주 과학 제동걸 유일한 학문"


이날 기조강연에 나선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독학으로 바둑 신의 경지에 도달한 '알파고 제로'의 사례를 들었는데요. "인공지능이 인간을 추월한 것은 인본주의 종말의 징후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인본주의 토대, 즉 인간이 지구 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고는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무참히 깨졌다는 얘기죠.
 
김 교수는 지금의 인류와 포스트 휴먼을 놓고 어느 종이 우월하고 열등한지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인류가 우주 진화의 생물학적 돌연변이라면 인공지능은 인류 문화적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탄생한 포스트 휴먼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인류가 탄소 기반이라면 포스트 휴먼은 실리콘 기반의 생명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백인과 흑인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해선 안되는 것처럼 현 인류와 포스트 휴먼을 다른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 중앙대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단인 인공지능인문학 연구단(단장 이찬규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난 10일 서울 흑석동 캠퍼스에서 출범식 겸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오히려 새로운 인류의 출현을 앞둔 시점에서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확인하는 것이 의미있는 접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김 교수가 제시한 인간의 특징은 재미있게도 '이야기를 하는 존재'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만이 신을 상상하는 유일한 존재인데요.
  
우선 인간은 성교라는 가장 동물적인 행위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성교 이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겪게 되는데요.

 

최근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잘못 표현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사례라는 점에서 존재의 허무함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말하는 것도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죠. 

  

인문학은 포스트 휴먼의 등장으로 비로서 제 역할을 해야할 시기를 맞았는데요. 인본주의 종말과 함께 역사의 종말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과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는 인공지능 시대에 자칫 기계로 전락할 수 있는 인간성을 인문학을 통해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인류가 지도 밖의 길을 가야하는 전무후무한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은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AI 품은 인문학의 미래는?

 

이날 학술대회에선 기조강연과 함께 법적 주체로서의 인공지능과 로봇, 인공지능과 윤리, 인공지능 시대의 고전문학과 연구방법론의 모색, 인간과 기계의 협업 등 다양한 주제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석학들의 지적 향연을 제대로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는데요.  

 

의미있는 것은 현재 전국 대학에서 궤멸하다시피 한다는 순수 학문, 그 가운데 하나인 인문학이 인공지능이라는 낯선 영역과 화끈하게 접목하면서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앙대만 해도 정부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인문고전을 통한 인간성 재인식, 관계와 소통의 재정립, 데이터 해석, 인공지능과 관련한 윤리와 규범 등의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출범식을 계기로 국제학술대회 개최 및 국제학회 창립 등 국제적 연구교류 확대와 타학문 분야와의 협력을 통한 융합연구와 인재양성에 힘쓸 계획이라고 합니다. 

 

인문학과 인공지능은 의외로 케미가 잘 맞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지난해부터 인공지능 기반 고전문헌 자동번역 시스템 구축 과제를 추진하면서 기록 문화의 보물로 평가 받는 '승정원일기'의 한글 번역 작업에 나섰습니다.

 

사람 손으로 50여년이 걸릴 번역 작업을 AI 힘으로 거의 절반 가량 앞당긴다는 계획입니다. 인공지능이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역사 기록물에 숨결을 불어 넣어주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승정원일기 뿐만 아니라 인문학의 보고인 고전문학에도 하루 빨리 적용되길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생명 경외심의 상실 시대, 삶의 만족도가 갈수록 떨어지면서 팍팍해지는 지금, 인공지능을 품은 인문학이 어떤 활약을 할 지에도 관심이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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