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게임은 지금이야 스마트폰의 핵심 콘텐츠로 꼽히고 있지만 일반폰(피처폰) 시절인 2000년대 후반까진 PC 온라인게임에 밀려 존재감이 적었던 장르였다. 당시 모바일게임은 이동통신사의 부가 서비스 가운데 하나로 제공됐는데 이용자가 많지 않았고 접근 방법도 다소 복잡했다.
게임빌과 컴투스는 모바일게임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1990년대 후반에 나란히 창업한 1세대 벤처기업이다. 두 회사는 정통 모바일 게임사이자 이 분야의 최대 맞수 상대이기도 했다. 각각 서초구 서초동과 금천구 가산동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지난 2013년 게임빌이 컴투스를 인수하면서 라이벌 관계에서 모-자회사 관계로 거듭났다. 같은 오너의 영향력에 있는 회사로 묶이면서 왕래가 잦아지고 자연스럽게 사옥도 하나로 통합할 법도 했으나 각각의 기반 지역을 고수했다. 각자의 개발 스타일과 조직 문화가 다르다보니 굳이 살림을 합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게임빌은 내년에 자회사인 컴투스가 입주한 가산동 건물로 들어갈 계획이다. 사옥 이전과 맞물려 두 회사 인력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달부터 통합 사보를 내기 시작했는데 상대방 기업 문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게임빌과 컴투스가 모-자회사 관계를 시작한지 6년만에 같은 건물에서 동거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 게임빌이 2011년에 하이트진로로부터 매입한 서초구 서초동 사옥 |
◇ 게임빌, 서초동 사옥 시대 막내려
게임빌은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전공한 송병준 대표가 지난 2000년 대학 전산실에서 피츠넷(2001년 게임빌로 변경)이란 이름으로 설립한 회사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창업한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학교 인근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송 대표는 학부생 시절인 1996년 서울대 최초의 벤처창업 동아리를 만들 정도로 창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10명의 동료들과 함께 실제로 회사를 창업하기에 이른 것이다. 창업 초기에는 웹보드와 모바일게임 두개의 장르를 동시에 다뤘으며 2003년부터 모바일에 집중했다.
당시 모바일게임은 이용자에게 생소한 장르였다. 피처폰의 조그마한 액정화면에서 구현하는 게임을 손가락 터치가 아닌 물리 버튼을 꾹꾹 눌러 조작하는 방식이었다. 게임을 내려받기 위해 이동통신사의 인터넷 서비스에 접속해야 하는 등 다소 복잡했다. 게임빌은 이때 세계 최초로 휴대폰을 돌려가며 즐기는 '놈(2003년 출시)'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독특한 플레이 방식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아울러 게임빌은 모바일게임 유통권을 쥐어진 이동통신 3사와의 긴밀한 관계 형성에 주력하는 동시에 공격적인 광고 마케팅으로 브랜드 알리기에 나서 컴투스와 함께 메이저 게임사로 부상하게 된다. 놈 시리즈 외에도 프로야구 시리즈와 물가에 돌튕기기, 제노니아 등을 히트치면서 매니아층을 확보했다.
회사가 본격적인 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까지 게임빌은 서울대 캠퍼스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게임빌은 인근 지역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출구 바로 앞의 한 건물에 입주하고 사세를 확장시켰다. 2006년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외형 성장세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코스닥 시장 상장(2009년) 무렵에 구로구 구로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가 2011년 하이트진로로부터 지금의 서초구 서초동 사옥 건물을 200억원에 사들이고 이듬해 이 건물에 입주했다.
우면삼거리에서 3호선 남부터미널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서초사옥은 지상 6층 지하 2층의 규모의 아담한 건물이다. 남부순환로 대로변에 인접해 있으나 한적한 주택가 초입에 있어서인지 시끄럽거나 복잡하지 않다. IT 기업들이 몰려 있는 테헤란로나 판교 테크노밸리의 고층 건물들과 달리 게임빌 사옥은 조용하고 차분한 인상을 준다.
서초동에 터를 잡은 이후 사세가 더욱 확대된다. 게임빌은 2013년 모바일게임 업계 최대 라이벌인 컴투스의 이영일, 박지영 등 주요 주주로부터 지분 21%와 경영권을 700억원에 사들였다. 그동안 조용한 사업 행보를 이어갔던 게임빌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벌였다는 점에서 다소 뜻밖의 일이었다. 더구나 인수 대상이 게임빌과 함께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던 컴투스라는 점에서 화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 컴투스, 가산동 사옥 이전후 사세 확장
컴투스는 박지영 전(前) 대표가 1998년에 동작구 사당동의 한 사무실에서 설립해 출발한 회사다. 박 전 대표는 고려대 컴퓨터학과 재학 시절인 1996년 벤처사업을 시작했으며 남편이자 동기인 이영일 부사장과 컴투스를 세우고 1999년 국내 최초로 휴대폰용 게임을 개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는 게임 업계 대표적인 여성 경영인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2007년 영국의 모바일콘텐츠 전문월간지 ‘엠이(ME)’가 선정한 ‘세계 톱50 경영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컴투스와 게임빌은 비슷한 시기에 설립했으며 30대 젊은 CEO가 대학생 벤처 형태로 설립했다는 점에서 닮은점이 많았다. 모바일 한 분야만 파온 전문 게임사이며 '맞수' 관계이기도 했다. 다만 사업 초기에는 컴투스가 외형 성장면에서 다소 앞섰다. 2003년에 매출 100억원대를 돌파했으며 2007년에 코스닥에 상장했다.
컴투스가 지금의 사옥 건물이 위치한 서울시 금천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2002년에 금천구 가산동 SK트윈테크빌딩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이 지역은 70~80년대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상징인 옛 구로공단 터이기도 하다. 당시 구로공단은 최신식 벤처 빌딩이 들어서면서 테헤란로와 함께 첨단 산업의 상징 지역으로 떠올랐다.
▲ 컴투스가 지난 2012년에 입주한 금천구 가산동 BYC하이시티 건물 |
컴투스는 게임빌에 피인수 직전인 2012년 지금의 가산동 BYC 하이시티 건물로 이전했다. SK트윈테크빌딩에서 직선 거리로 불과 150m 떨어진 곳에 있다. 수출의다리 고가차도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주위의 여느 고층 빌딩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건물로 이전하면서 컴투스로선 M&A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5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박지영 전 대표 등이 홀연 지분을 매각, 대주주가 경쟁사인 게임빌로 바뀌었다는 점이 큰 변화였다. 아울러 2014년에 출시한 모바일게임 '서머너즈워'가 이른바 대박을 터트린 것도 사사(社史)에 기록할 만한 일이다.
서머너즈워는 출시 이후 한달만에 1000만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흥행 지표를 기록하며 한국 모바일게임 역사의 새로운 획을 그은 게임이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냈다. 관련 매출 가운데 거의 80% 가량이 해외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컴투스는 이 게임 성공에 힘입어 2014년 매출이 전년(813억원)보다 무려 3배 이상 확대된 2347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매출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지난 2016년 50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서비스한지 4년이 지난 현재까지 흥행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서머너즈워의 글로벌 흥행 요인은 게임 자체의 높은 퀄리티와 재미 뿐만 아니라 컴투스와 게임빌이 피처폰 시절 부터 세계 각국에 촘촘히 세워놓은 인적 네트워킹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두 회사는 지분 관계로 얽힌 지난 2013년부터 업무 효율화를 위해 각 해외 법인 및 지사를 통합했다. 안정적인 글로벌 네트워킹 구축으로 게임 배급을 강화하고 세계 게이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컴투스가 입주한 BYC하이시티 건물이 IT기업과 유난히 궁합히 잘 맞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컴투스를 비롯해 이 빌딩에 입주했던 몇몇 기업이 공교롭게도 게임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면서 관련 업계에선 "터가 좋다"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빌딩에 입주한 한 중국계 게임사 관계자는 "오너가 중국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다"라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와 가산동 두곳을 놓고 저울질하다 결국 컴투스가 입주한 이 곳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게임빌은 7년간의 서초구 사옥 생활을 정리하고 내년 3월 경에 컴투스가 입주한 건물로 이전할 계획이다. 자회사와의 교류 확대와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 '한지붕 살이'를 시작한다는 설명이다.
BYC하이시티 건물은 A·B·C동 총 3개의 건물로 이뤄졌다. 게임빌은 이 가운데 컴투스가 입주한 A동으로 들어갈지 B와 C동으로 갈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게임빌이 컴투스 입주 건물 터의 상서로운 기운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시리즈 끝]